별장에서 부 씨 본가까지 차로는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이 한 시간 동안 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육시연 뱃속의 아이, 그리고 떠날 때 나를 보던 부진호의 눈빛. 이 모든 것이 나를 짓눌러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 차가 막 부 씨네 본가에 도착해 멈춰 서자 위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와 그대로 차를 박차고 나와 화단에 엎드려 한참을 헛구역질했으나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했다.
“어머, 부 씨집안 사모님이 되고 나니 사람이 많이 귀해졌나 봐, 차 좀 탔다고 이지경으로 토를 다하고.”
본가 문 앞에서 날카롭게 들려오는 신랄한 목소리는 보지 않아도 누군지 뻔했다.
부 씨 가문 어르신의 슬하에는 자식이 둘이 있었다. 큰 아들 부영준은 일찍이 교통사고로 외동아들인 부진호를 남기고 부부가 함께 사망했다. 남은 하나는 바로 둘째 아들 부창준이었다.
지금 본가 앞에서 나를 향해 빈정대고 있는 사람은 삼촌 부창준의 아내 서혜영으로 나의 숙모였다. 재벌가엔 늘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아 이런 것들은 진작에 익숙해졌다.
속에서 올라오는 괴로움을 내리누르며 서혜영을 향해 공손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숙모, 안녕하세요.”
서혜영은 늘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출신이 미천함에도 불구하고 어르신의 예쁨을 받아 그녀 마음속에서 질투가 피어올랐을 수도 있었고, 어쩌면 어르신이 생전에 부진호를 귀하게 여겨 전체 부 씨 집안을 부진호에게 넘겨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화풀이를 나에게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차가운 시선이 나를 향하다 차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서혜영은 안색이 돌변해서는 말했다.
“뭐야? 어르신 장례식에 부 씨 집안 큰 도련님께서는 오지 않는다니?”
오늘 방문할 사람들이 많은데 부진호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 난 그저 미소를 지으며 둘러댔다.
“진호 씨가 급한 일이 좀 있어서 아마 바로 오지는 못하고 좀 늦을 것 같아요.”
“하하.”
서혜영이 조소를 날렸다.
“어르신 눈에 들었다는 사람이, 고작 이 정도라니.”
재벌들이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어 비록 날 달갑게 여기지 않은 서혜영이었지만 그래도 체면을 봐 더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같이 본가 안으로 들어가자 어르신의 위패가 홀 중앙에 세워져있었고 시신은 이미 화장을 해 유골함에 담겨 위패 뒤에 놓여있었다.
홀에는 제사에 쓰일 적지 않은 수의 흰 꽃이 놓여있었고 영정 앞에는 향을 피울 향당과 공물이 놓여있었다.
잇달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생전 부 씨 가문 어르신의 명성을 보여줬다. 조문을 하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분이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라 부창준과 서혜영은 안팎으로 응대를 하고 있었고 나는 영정 옆에서 인사를 했다.
“사모님.”
한쪽에서 단향 나무 상자를 들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말을 건넸다.
“왜 그러세요, 아주머니?”
부 씨 가문은 비록 재벌가였지만 자식이 많지 않아 딸린 식구가 적었다. 게다가 부 씨 가문의 어르신은 평소 조용한 것을 좋아해 어르신의 곁에는 그저 아주머니 한 분만이 옆에서 수발을 들었었다.
아주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단향 나무 상자를 나의 손에 쥐여주며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이건 어르신께서 생전에 사모님께 남겨주신 거예요, 잘 챙겨두세요.”
잠시 말을 멈추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르신께서는 본인이 그렇게 가시면 대표님께서 사모님께 이혼을 하자고 밀어붙이실걸 알고 계셨어요. 만약 사모님께서 이혼을 하고 싶지 않으시면 이 상자를 대표님께 보여주세요. 대표님께서 보시면 조금 더 생각해 보시고 쉽게 이혼 얘기 꺼내시지 않으실 거예요.”
나는 시선을 떨궈 손안의 단향 나무 상자를 쳐다봤다. 네모 반듯한 상자는 자물쇠가 잠겨있어 의아한 기색으로 아주머니를 향해 물었다.
“열쇠는요?”
“열쇠는 어르신께서 이미 대표님께 드렸어요.”
아주머니는 나를 슬쩍 보더니 마저 말을 이었다.
“요즘 많이 초췌해지신 것 같은데 건강을 챙기셔야 해요. 생전 어르신께서 사모님과 대표님이 하루빨리 튼실한 아들 하나 낳아 대를 이으시길 그렇게 바라셨는데. 어르신께서 이리 가시게 되셨으니 부디 사모님 대에서 부 씨 가문의 뒤를 끊으시면 안 되세요.”
아이가 화제에 오르자 저도 모르게 잠시 멈칫하다 아주머니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조문이 끝난 후, 어르신의 유골은 영구차로 묘지로 가 안장을 할 예정이었다. 한바탕 지나고 묘지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가 다 되었지만 부진호는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고도 부진호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부창준은 서혜영의 팔짱을 낀 채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주희야,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법이야. 돌아가면 진호에게 잘 좀 말해봐. 더는 어르신께 화풀이하지 말라고, 어르신 이 한평생 그 애한테 빚진 거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