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오늘부터 내가 널 키울게
- “뭐? 차정안?”
- 강병준은 신기한 얘기를 들은 것처럼 배문종을 향해 눈썹을 찌푸린다.
- “준일이 만났던 그 여자 말이야?”
- 문종은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걸치고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했다.
- “그래...”
- '차정안은 장정아한테 안된 다라. 당연한 일이긴 해.'
- 정아는 한때 외모와 능력을 골고루 갖춘 여자였다. 차정안은 집안도 학력도 배경도 어느 것 하나 장정아보다 못했다. 유일하게 비교할만한 점은 아마도 그 순진무구한 얼굴이었지.
- 반면 정아는 너무 잘나서 항상 도도하게 내려다보는 재벌 집 따님이었다. 단 한 번도 해맑은 눈빛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차정안은 항상 불쌍한 표정으로 남자의 소유욕을 끌어당겼다.
- 차정안은 단지 이것만으로 장정아를 이겼다...
- 배문종은 멀어져가는 정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장현우는 집안의 하인을 도와 거실 청소도 하고 꽃병도 닦는 착한 아이다. 하인들 모두 바짝 긴장하여 작은 도련님이라고 연신 부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 현우가 말했다.
- “작은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이 집에서 지내지 않을 거니까요.”
- 아주머니는 가여워하며 말했다.
- “작은 도련님. 여기가 도련님 집이에요.”
- “아니요.”
- 현우는 철벽을 치며 말했다.
- “여긴 제집이 아니에요.”
- 사실이다.
- 전혜주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들어오다가 마침 현우가 단정한 옷차림으로 문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자신을 기다리는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현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정아가 데리러 온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기 때문이다.
- '엄마...나 데리러 언제 와?'
- “현우야, 왜 밖에 나와 있어?”
- 혜주는 기쁜 얼굴로 현우한테 다가가 말했다.
- “아빠 퇴근하려면 한참 있어야 해. 들어가자.”
- 현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말없이 혜주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하인이 혜주한테 말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참해서 떠들어대지도 않고 집안일도 도와 했다고 말이다.
- 하지만 참해서 그런게 아니라 정아가 데리러 와주길 기다린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 '이런 곳에는 한순간도 있기 싫어...'
- 준일이 돌아올 때 즈음 현우는 책방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혜주가 관심 어조로 묻자 준일은 대답하지 않고 한마디만 했다.
- “어디 갔어요?”
- 현우가 어디 갔느냐고 묻는 말이다.
- 혜주가 대답했다.
- “현우가 오늘 말도 너무 잘 듣고 지금은 책방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어. 너도 화내지 마. 네 아들이잖아...”
- 이제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꼬맹이가 벌써 집안 식구들의 마음을 꽉 잡았다!
- '말을 잘 듣는다고? 흥. 나한테는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굴더니!'
- 2층 책방으로 올라가 문을 열어보니 현우가 재빨리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 준일은 현우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 “뭐 보고 있었어?”
- 현우는 울트라맨 창을 보여주며 말했다.
- “울트라맨이요...”
- '역시 애는 애야. 이런 유치 한걸 보다니….'
- 준일은 눈썹을 찌푸렸다가 자신과 닮은 현우의 작은 얼굴을 보더니 조금은 온화해진 태도로 말했다.
- “오늘부터 넌 내가 키울 거야. 시간 될 때 나랑 이름 바꾸러 가자. 내 성을 따라야지.”
- 현우는 무덤덤한 태도로 준일을 보며 말했다.
- “박 회장님, 수속 밟으셨어요? 저를 키우려면 저희 엄마와 소송하셔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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