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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아이를 빼앗다!

  • 장정혁은 동생과 조카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일하러 작업실로 돌아갈 거라며 그 길로 떠났다.
  • 정아가 냉장고에서 도시락을 꺼내어주며 말했다.
  • “너무 무리하지 마.”
  • 정혁이 말했다.
  • “무리하긴 했어. 내 마누라는 어느 별에 살고 있는 걸까?”
  • 문을 확 닫아버리는 정아, 그리고 소파에서 꺄르르 웃어대는 현우.
  • “노총각 외삼촌!”
  • 그 말에 정아도 웃었다.
  • “오늘 좋았어?”
  • 현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아주 좋았어!!”
  • “좋으면 됐어. 나중에...”
  • “나중에 외삼촌한테 고맙다고 말해라는 거지?”
  • 현우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 “알겠어. 엄마.”
  • 정아는 이토록 똑똑한 아이를 낳은 것이 로또에 당첨된 것만 같았다!
  • 이제 집 청소를 하고 잠을 자려는데 누군가 벨을 눌러댔다.
  • 아직 바닥을 닦고 있던 정아는 현우에게 문을 열라고 시켰다. 현우는 소파에서 폴짝 뛰어내려 총총총 달려가 문을 열었다.
  • “외삼촌이 뭘 두고 간 건가...”
  • 문이 열리고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현우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 이 아이가 문을 열어줄 거라고는 준일 역시 생각조차 못 했다. 5년이 지났으니 정아가 차가운 얼굴로 맞이할 수도 있고 낯선 눈빛으로 맞이할 수도 있고 아직도 미움과 분노가 가득한 얼굴일 수도 있겠다면서 만남의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었는데, 생각과 달리 문을 열어준 건 그의 아들이었다.
  • 준일의 얼굴을 본 현우는 잠시 긴장하더니 곧바로 문을 쾅하고 닫아버렸다.
  • 젠장! 준일은 처음으로 방문하는 집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해버린 것이다!
  • 게다가 상대가 어린애라니!
  • 하지만 자신과 사뭇 닮은 성격이라니, 흐뭇할 수밖에 없는 준일은 바보같이 웃으며 또 한 번 문을 두들겼다.
  • 그리고 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엄마, 밖에 사람 없어. 이웃이 지나가면서 장난쳤나 봐!”
  • 준일은 화가 났다. 어린애가 저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다니!!
  • 그는 홧김에 발로 문을 걷어찼다. 깜짝 놀란 현우는 문을 가로막으며 방에 있는 정아를 향해 말했다.
  • “엄마...문밖에 나쁜 사람이 있어...”
  • “왜 그래?”
  • '얘가 왜 이런 표정이지?'
  • 정아는 다가가 현우를 안았다. 두 모자가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범법자를 건드렸던 걸까? 뒤로 물러서는 정아와 달리 현우는 그녀의 품에 안겨 오히려 정아를 꼬옥 안아줬다.
  • “엄마. 무서워하지 마. 박 회장님이야.”
  • 정아의 마음이 순간 싸늘해진다!
  • '박준일이 어떻게 여길? 나와 현우에 대해 어떻게 알고? 설마...애를 빼앗으러 온 건가?'
  •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아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를 꽉 악물었다.
  • “걱정하지 마. 엄마는 널 절대 나쁜 사람한테 넘기지 않아.”
  • 이 말을 들은 현우는 바닥으로 내려와 당당히 문을 열어젖혔다. 준일이 다시금 문을 걷어차려던 순간 문이 다시 열렸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어린애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 “저한테 볼일 있어요?”
  • '허! 바로 밝혀주네!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눈치인데!'
  • 준일도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왜, 아빠 들어가면 안 돼?”
  • “난 아빠 없어요.”
  • 바로 반격하는 현우였다.
  • “5년간 엄마랑 저랑 둘뿐이었어요. 나한텐 아빠가 없고 필요하지도 않아요.”
  • 철이 들 대로 든 아이의 말에 정아는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 준일은 문앞에 서서 현우를 마주 보고 되물었다.
  • “아빠가 필요 없다고?”
  • “박 회장님. 저와 엄마는 항상 본분을 지키며 살아왔고 잘못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용건만 간단히 하고 돌아가시길 바랄게요.”
  • 다른 사람들처럼 박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현우의 말이 그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 '정아가 이렇게 버릇없는 애로 키운 건가?'
  • 화가 난 준일은 집 안으로 들어갔고 거실에 서 있는 정아와 마주했다. 5년간의 이별이 가져다준 감정들이 순식간에 솟구쳐올랐다. 자신을 보는 정아의 눈빛에 담긴 가슴속 깊이 느껴지는 두려움과 아픔에 그는 본인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입을 열었다.
  • “오랜만이야.”
  • 정아는 대답하지 않았고 준일을 막을 수 없었던 현우는 아예 엄마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고 말했다.
  • “엄마. 무서워하지 마. 우리 코 자러 가.”
  • 두 모자가 준일을 무시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화난듯한 목소리.
  • “거기 서!”
  • 정아는 깜짝 놀라며 부르르 떨었고 현우마저 그녀의 손 떨림을 느꼈다.
  • 화가 난 준일은 되려 웃으며 물었다.
  • “이 아이, 나한테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
  • “설명하다니 뭘?”
  • 정아는 준일을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감옥살이만 5년을 했어. 대체 왜 날 놓아주지 않는 거야?”
  • 5년의 감옥살이가 이 남자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기대를 전부 박살 내버렸다!
  • 준일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불만을 보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 “당신이 죄를 지어서 감옥살이를 한 거지. 뭐가 억울해?”
  • 정아는 눈시울이 붉어져 되돌아서서 준일을 향해 말했다.
  • “그래? 그럼 지금은 왜 또 나를 찾아온 거지? 전과자의 집에 대체 왜 온 건데? 그럴 가치가 없지 않나?”
  • “물론 가치는 없어.”
  • 준일은 현우의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 “하지만 이 아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 눈물을 애써 참는 정아와 달리 현우는 냉정한 태도로 준일을 바라보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 “박 회장님. 제 손 놔주시죠.”
  • 따박따박 정중히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준일은 가슴에 가시가 꽂히듯 아파졌다.
  • “아빠라고 불러.”
  • “저는 아빠가 없어요.”
  • 현우는 고개를 들어 웃어 보였다.
  • “저한테는 5년간의 감옥살이를 한 엄마 한 분만 계셔요.”
  • 그 순간, 준일은 자신이 한낱 어린아이한테 졌다는 걸 깨달았다.
  • 정아가 입을 열기도 전, 현우의 말 한마디에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 '고작 5년간의 감옥살이일 뿐이잖아. 내 아이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쳤으면서 왜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며 날 책문하는 거지?!'
  • 그 순간 5년 전 정아가 끌려가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박준일. 언젠가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면...
  • 잠시 뜨끔하던 준일은 현우를 보다가 갑자기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 “아이는 언제 낳은 거야?”
  •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당연히 감옥에서 낳았지.”
  • 정아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 “당신은 차정안 한 사람만 바라봤잖아. 내가 임신했는지 관심조차 없었잖아. 하긴, 현우가 당신 자식이 아닐 수도 있겠네. 당신 눈에는 내가 하찮은 걸레로 보일 거 아니야!”
  • 준일은 버럭 화를 내며 현우의 손을 놔버리고 정아의 목을 졸랐다.
  • “5년이 지나도 주둥아리는 여전하네!”
  • 정아는 왼손으로 준일을 밀쳐냈고 그런 그녀의 왼손에 박힌 굳은살을 본 준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정아는 항상 오른손을 사용했는데 왜...
  • 준일은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정아는 갑자기 흥분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 “이거 놔!”
  • 현우도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 “엄마 손 놔요!”
  • 옷소매를 잡자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이 가녀린 그녀의 손목이 드러났다. 한때는 정아의 자랑이었던 그 손으로 디자인 작업을 할 때면 세상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었는데. 이제는...
  • 손목에 여러 갈래로 새겨진 흉터가 준일의 눈에 들어왔고 그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