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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무릎을 꿇어라 사랑한게 죄이니라!

  •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 차정안의 장례식 날에도 보슬비가 내렸고 많은 사람이 와있었다. 어떻게든 장정아를 차정안의 무덤 앞에 무릎 꿇게 하려는 이 남자. 박준일은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것만 같다.
  • 발버둥 치는 정아의 뺨을 거세게 내려친다.
  • “억울한 척 연기하지 마. 당신은 그럴 자격 없어!”
  • 아픔을 참던 정아가 갑자기 웃었다.
  • 보슬보슬 내리는 빗속에서 그녀는 절망에 잠긴 미소를 보였다. 준일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발로 그녀의 입가를 걷어찼고 정아는 굴러가면서 피를 토해냈다.
  • 준일의 구두가 그녀의 시선에 나타나고 그녀의 마음에서 이제 애틋한 감정이 사그라졌다.
  • 정말 독하디독한 이 남자. 역시 그녀의 잘못이 크다...
  • 이 남자를 사랑하면 안 되는 거였다!
  • 정아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 “난 꿇지 않아! 꿈도 꾸지 마!”
  • “당신의 죄는 꿇는 것만으로 부족해!”
  • 남자는 분노하며 그녀를 들어 한 번 더 바닥에 내다 꽂았다. 정아는 아프다는 소리 한번을 안하고 오히려 웃었다.
  • “당신이 밖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려도 난 눈감았고 매일같이 신문에 당신 스캔들이 올라와도 난 못 본 척 했어. 난 충성하는 개처럼 당신의 아내로 살아왔다고. 당신은 일말의 양심도 없는 거야? 내가 차정안을 죽게 만들었다고? 고작 차정안 따위를 내가? 집안이든 학력이든 스펙이든! 내 손톱의 때만큼도 못한 여자한테 내가 대체 왜?”
  • “이제야 이빨을 드러내는 구나 당신...”
  • 준일이 구두 끝으로 그녀의 얼굴을 치켜세운다.
  • “내가 당신을 위해 큰 선물을 준비했는데 당신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앞에 경찰들이 쫙 깔려있었고 정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달려와 제압하여 그녀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을 보더니 정아는 갑자기 발악했다.
  • “이거 놔! 무슨 근거로 날 잡는 건데?!”
  • “살인자야! 살인자!”
  •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저렇게 지독해서야 원!”
  • “박 회장님이 저런 사람을 아내로 들이다니, 지지리 운도 없지!”
  •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그녀의 실성한 모습을 포착했다. 정아는 넋을 잃은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 “누가 날 잡으라고 한 거야? 대체 누가?”
  • “내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당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을 것 같아?”
  •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고급 맞춤 양복을 입고 손에 유골함을 든 훤칠한 남자가 정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 정아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 “박준일, 당신이 사람을 시켜 날 잡은 거야?”
  • 준일이 피식 웃었다.
  • “난 차정안에게 사건의 진실을 되찾아준 것 뿐이야. 이미 경찰과 함께 CCTV를 돌려봤다고.”
  • “진실? 진실이라고?”
  • 웃긴 얘기라도 들은 것처럼 미친 듯이 웃어대는 정아와 그런 그녀를 두려워하며 손찌검을 하는 사람들. 생방송 중인 카메라 렌즈가 악마 같은 그녀의 모습을 전부 담아냈다. 그녀가 무려 전국민에게 악마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 그녀의 발악과 함께 수갑이 챙챙거리며 소리를 냈다. 정아는 준일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 “박준일! 너라는 인간은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지?! 5년을 부부로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굴욕을 줄 수가 있어? 개보다도 못한 인간아!”
  • “굴욕이라고?”
  • 준일은 앞으로 걸어가 정아의 턱을 꽉 잡았다.
  • “죄는 네가 저질렀는데 이게 어떻게 굴욕이라는 거지?”
  • “내가 한게 아니라니까! 왜 날 잡아넣는 거냐고!”
  • 처참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지막 발악을 해보지만 결국 변하는 건 없었다. 뭘 하든 그저 그의 눈에 한심한 모습만 비칠 뿐이다.
  • “짜악”하고 뺨을 갈기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아픔이 느껴진다. 정아는 옥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더니 갑자기 두 손을 내밀어 준일의 손에 쥐어진 유골함을 빼앗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던져버렸다!
  • “박준일, 똑똑히 말해줄게. 난 그런 짓은 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해! 못 믿는다고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죽은 사람이 내 머리 꼭대기에 기어오르는 건 죽어도 못 봐! 넌 언젠가 벌 받을 거야!”
  • 준일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더니 정아의 목을 꽉 졸랐다.
  • “네가 어떻게! 어떻게 감히!!”
  • “죽여봐!”
  • 정아는 처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넌 내 결백까지 짓밟으며 그 여자를 믿잖아. 그런 네가 못해낼게 뭐가 있을까? 내가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내 마음을 짓밟으려는 거잖아! 죽여봐 어디. 어차피 수없이 구멍 난 가슴에 칼 한 자루 더 꽂는 것뿐이니까!”
  • 경찰이 다가가 정아를 힘껏 잡아 경찰차로 끌고 갔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일그러져서 모두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 준일은 정아의 뒷모습을 쏘아보며 말했다.
  • “장정아. 넌 평생을 바쳐도 전부 속죄할 수 없을 거야!”
  • 정아는 크게 웃으며 눈물을 쏟아부었다.
  • “박준일. 당신도 분명 후회하는 날이 올 거야! 차정안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당신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당신이 오늘 나한테 했던 모든 짓을 후회하는 날이 온다면...”
  • 당신이 오늘 나한테 했던 모든 짓을 후회하는 날이 온다면...
  • 하늘에서 갑자기 큰 비가 쏟아지고 차가운 빗방울이 사람들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하늘이 화가 난 것인지, 비는 점점 더 거세져 갔다!
  • 억수로 쏟아지는 큰비를 맞으며 정아는 구속된 채 차에 들어갔다. 소름 돋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져 장례식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귓속에 틀어박혔다!
  • “박준일. 내가 살아남는다면 절대 당신을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내가 죽는다면 그건 내 최고의 행운일 거야!”
  • 아무리 사랑하고 진심을 다 바쳐도 돌아오는 건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 정아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준일이 그녀에게 살길 따위는 남겨주지 않았다. 이혼하고 감옥에 가둬두었으니 말이다. 미련하게 평생을 바쳐 사랑한 것이 그녀의 잘못이다!
  • 경찰차의 창문이 스르릉 내려지고, 피를 토하며 웃는 정아의 미친듯한 모습이 수많은 카메라에 담겨졌다.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마음이 없는 그녀는 그저 준일을 쏘아보았다.
  • “내가 잘못했어.”
  • 지칠 대로 지친 정아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박준일. 내가 진짜 잘못한 것 같아...”
  • 준일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들어 넋 놓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온 세상이 부서져 가는 것만 같았다.
  • “준일 씨. 내가 가장 잘못한 일이 바로 당신을 사랑한 거야...”
  • 5년간의 결혼 생활과 5년간의 짝사랑.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 그녀에게 약간의 믿음도 주지 않았던 이 남자는 잔인하게 그녀를 지옥으로 내동댕이쳤고 그녀가 바친 모든 걸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 박준일. 당신은 나한테 너무 많은걸 빚진 거야!!
  • 경찰차가 폭우 속에서 지나가고 정아의 한숨 소리도 곧 빗물과 함께 공기 중에서 사라졌다. 희미하고 절망적인 그녀의 마지막 눈빛은 마치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과도 같았다.
  • 차정안을 대신해 복수했으니 분명 기뻐야 하거늘... 오히려 뒷걸음치는 이 남자.
  • 등 뒤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고 차가운 빗방울이 그의 어깨에 내려앉아 마음에 내다 꽂힌다.
  • 복수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 뭔가 빠진 것만 같았다. 그녀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슴에 가시가 돋친 듯 아픈 건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