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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다른 사람과의 키스, 터질 것 같은 내 마음

  • 5년 전의 정아는 준일과 단둘이 있을 때 떨림도 있었고 조심스러움도 있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변했다. 무감각 그 자체였다.
  •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고 준일은 정아의 옆모습을 보고 있었다.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이 남자가 정아를 보고 있으니 정아는 그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5년 전이었다면 준일은 이런 표정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정아가 멀리 떠나가길 바랐고 평생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
  • 하지만 지금은 늑대가 사냥감을 지켜보는 것처럼 정아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정아가 먼저 나갔다. 준일은 뒤에서 그녀의 늘씬한 뒷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침묵에 잠기더니 이내 뒤를 따랐다. V2 룸 어구에 도착하자 정아가 발길을 멈췄다.
  • 준일은 웃으며 물었다.
  • “안 들어가고 뭐 해?”
  • 정아는 이를 악물더니 룸의 문을 열었다.
  • 들어가는 순간 주위에 휘파람 소리도 들려오고 술 냄새와 함께 담배 연기가 진동했다. 정아는 싫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눈썹만 살짝 찌푸렸다.
  • 곧이어 소파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 “완전 예쁜데! 누가 데려왔어?!”
  • 준일이 뒤에서 웃으며 물었다.
  • “왜요? 백은선 씨, 갖고 싶어요?”
  • 고개를 들어 보는 정아의 시선을 따라가면 강병준도 보인다. 모두 소파에 앉아있었고 주위에 술 따르는 아가씨들이 하나같이 짧은 치마에 어깨를 내놓고 앉아있었다.
  • 그런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아였다.
  • 백은선은 술을 한잔 따르고 정아를 향해 말했다.
  • “준일 씨가 데려왔어요? 예쁜 언니, 나랑 한잔할래요?”
  • “이봐요, 백은선 씨. 적당히 해요.”
  • 병준이 뒤에서 귀띔해주는 것 같았지만 이 분은 이미 취하신 상태라 정아를 안고 한쪽 편에 앉았다. 그리고 준일을 향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 “준일 씨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 내가 또 이런 언니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 준일의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은선은 계속하여 술을 마시고 수박 하나를 정아의 입가에 갖다 댔다. 정아는 눈썹을 찌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결국 받아먹었고 주위는 난리가 났다.
  • “하하하! 백은선 씨! 수박까지 먹이다니요!”
  • “그래도 받아먹었잖아요! 백은선 씨 오늘 한 건 하시겠어요!”
  • 백은선은 정아를 안고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대며 물었다.
  • “예쁜 언니, 나랑 게임할래요?”
  • 곁에서 보고 있는 준일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술잔을 꽈악 잡았다. 병준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 “준일아. 내가 은선 씨한테 말할게...”
  • “됐어.”
  • 준일의 목소리는 떨림조차 없이 차가웠다.
  • '고작 여자일 뿐인데 왜...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 정아는 은선을 향해 웃었다.
  • “박준일 씨와 비즈니스 하시는 분 맞죠?”
  • “에이, 언니. 놀 때는 비즈니스 얘기 하지 맙시다.”
  • 백은선은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준일을 향해 말했다.
  • “박 회장, 뭐라고 얘기했기에 이렇게 오자마자 비즈니스 얘기부터 꺼내는 겁니까? 분위기 망치면 안 되죠.”
  • 이 사람이 맞나 보다.
  • 정아는 술잔을 들었다. 준일이 그녀를 데려온 목적이 고객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것이니 그녀는 백은선의 기분을 맞춰줘야 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 “제가 늦게 왔으니 벌주 한잔할게요. 게임할 때 저만 공격하시면 안 되는 거 알죠?”
  • 백은선은 웃으면서 그녀를 안았다.
  • “아이, 귀여워라.”
  • 정아는 그의 품에 안겨 미소를 지었다. 빨간 입술이 알코올에 의해 유독 빛났다.
  • “그래요? 백 도련님도 귀여우시네요.”
  • 백은선이라는 이름이 그녀에게는 낯설지가 않았다. 5년 전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도 상류사회에서 이름을 날린 재벌 집 따님이었으니 그 바닥에서 이름난 도련님들의 이름을 자주 들었다. 백은선이 그중 한 명이다.
  • 옆도시에서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기에 이곳에서 그와 친구를 맺으려는 사람이 많다.
  • 준일은 다른 사람을 향해 예쁜 미소를 짓는 정아의 모습을 보면서 이유 모를 화가 치밀어올랐다.
  • 술자리에 데려왔던 건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는데 의외로 준일이 먼저 화가 났던 것이다.
  • 병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 “준일아... 괜찮아?”
  • 아무리 전처라고 해도 자신의 전처를 다른 남자와 술잔을 부딪치게 놔둘 남자는 없다. 아무런 감정도 없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 준일은 이를 악물고 차가운 눈빛으로 정아를 쏘아보면서도 겉으로는 다르게 말했다.
  • “아무렇지도 않아. 마음대로 하라 그래.”
  • '그래. 백은선만 꼬실 수 있다면야 술잔 부딪히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 둘이 잠자리를 한다고 해도...'
  •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 갈 때 즈음 주위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번쩍 들어 보았을 때 은선과 정아의 입술이 떼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준일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 옆에서 박수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 언니 너무 멋있잖아! 대박이야!”
  •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사람이 제일 멋있죠!”
  • “한 판 더 할까요?”
  • 당장에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만 같은 준일의 표정에 병준은 얼른 그쪽을 향해 소리쳤다.
  • “무슨 게임이에요?!”
  • “진실게임이요. 말할 수 없거나 못하겠으면 지정된 사람과 뽀뽀하기.”
  • 누군가 웃으며 답했다.
  • “함께 할래요?”
  • '뽀뽀를 해?'
  • 준일은 정아를 쏘아보았다. 섹시한 입술을 살짝 벌리고 은선의 목을 감싸 안은 여우 같은 그녀의 모습과 수시로 그녀의 몸에 꽂히는 모든 남자의 시선...
  • 그는 억제할 수 없는 화가 자꾸만 치밀어 올라왔다. 대체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릿속 가득 이상한 생각들만 가득 차 있었다. 정아를 집에 데려가 가둬두고 평생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하고 싶었다. 그의 소유물이니까! 건드리는 자는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다!
  • 분노에 섞인 눈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 마침 자신을 향해 웃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 물론 5년 전에도 알았지만, 정아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정아가 싫었고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토록 요염한 여자를 집에 데려오면 한낱 꽃병에 불과할 것이고 가식만 떨 것으로 생각했다. 차정안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 차정안과 비교할 가치도 없는 여자인데... 왜... 대체 왜...'
  • 더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준일은 정아와 은선이 키스하는 모습을 본 순간 당장 정아의 목을 졸라매고 싶었다.
  • '이 여자가 감히 다른 남자에게 입술을 줘?!'
  • 은선은 그런 준일의 표정을 못 본 건지 여전히 정아를 안고 있었다. 턱을 살짝 들어 올린 정아의 가녀린 목선과 그녀의 목걸이가 어우러져 지나치게 요염하고 가여웠다.
  • 몸매가 너무 가늘어 안으면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 은선은 그녀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혀버렸다. 깜짝 놀란 정아는 수치스러움을 가까스레 참았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피어올랐다.
  • 은선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 “이따가 나랑 나갈래요?”
  • 정아는 침착하게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순진한 표정으로 은선에게 물었다.
  • “도련님, 지금 저를 놀리시는 거예요?”
  • 은선은 그녀의 머릿결 사이에 얼굴을 묻으며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 “그럴 리가요. 이름이 뭐예요?”
  • 이름...?
  • 정아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 “왜 그래요?”
  • 그녀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더니 은선이 농담조로 말했다.
  • “설마 어디서 무서운 일이라도 하는 거 아니죠? 표정이 살벌한데요.”
  • 정아는 곧바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 “저 머리가 어지러워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다녀와서 알려드릴게요.”
  • 은선은 휘파람을 불며 물었다.
  • “같이 가줄까요?”
  • “잠깐인데요. 뭘.”
  • 정아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 “여기서 기다리시면 돼요.”
  • “아이고! 쯧쯧쯧!”
  • “미인이라 상대하기 쉽지 않네요! 오늘 밤 즐거우시겠어요!”
  • “역시 얼굴이 아름다우니 말도 예쁘게 하네요!”
  • 정아는 화장실 싱크대 옆에 곧게 서서 손을 내밀어 얼굴을 지탱하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술을 급하게 마셨더니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얼굴에 홍조가 피어있었다. 그녀는 싱크대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백은선이 이름을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 장정아예요.
  • 이 도시에 장정아라는 이름은 5년 전의 장 씨 집안 따님 단 하나뿐이었다.
  • '룸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볼까?'
  • 5년 뒤의 장 씨 집안 따님이 술이나 따르고 남자의 기분을 맞춰주고 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녀가 지켜왔던 고결함과 강한 의지가 모두 웃음거리로 될 게 뻔했다.
  • 정아는 그 자리에 서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당장 도망가고 싶었지만, 현우를 위해 참았다.
  • 정아는 준일이 접근하는 것도 몰랐다. 그가 그녀를 끌고 여자 화장실의 마지막 칸에 들어가 문을 확 닫는 순간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
  • 고개를 들어보니 남자의 얼굴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 “꼬실 재주는 되면서 이름까지 말할 용기는 없었나 봐?”
  • 정아는 사색이 되어 웃었다.
  • “박 회장님, 여기 여자 화장실이거든요.”
  • 그런 것 따위 대수롭지 않은 준일은 그 칸의 문을 걸어 잠그고 정아를 구석으로 몰아넣어 손으로 그녀의 빨간 입술을 힘껏 문질렀다.
  • 립스틱이 그녀의 입술에 번졌고 준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백은선과 키스를 해?”
  • 정아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게임이라 어쩔 수가 없었어.”
  • “게임인데 그 정도로 스킨십을 해?”
  • 준일은 점점 숙여지는 그녀의 턱을 홱 들어 올렸다.
  • “장정아. 5년이 지난 지금 더 심해졌잖아?!”
  • 정아는 너무 황당해서 눈물을 뿜어내며 웃어댔다.
  • “당신이 뭔데 날 지적해?! 박준일 당신이 날 여기로 데려왔잖아! 술접대 하라며? 그래서 하고 있잖아!”
  • 준일은 그녀의 목을 조르며 물었다.
  • “그 사람과 잠자리를 가지라 그러면 어쩔 건데??”
  • “그럼 해야지 뭐. 어차피 난 당신한테 장난감이잖아!”
  • 정아는 붉어진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 “당신이 아무렇지 않다는데 내가 걱정할 게 뭐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