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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모두의 앞에서 죽이려 들다!

  • “장정아, 너 이렇게 비천한 여자였어?!”
  • 준일은 화가 치밀어올라 정아를 화장실 벽에 밀어붙인 채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그는 피가 마구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 “날 여기까지 불러오면서 내가 그렇게 당할 거란 걸 생각 못했나 봐?”
  • 정아는 웃으며 말했다.
  •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모욕당하는 걸 원했잖아. 왜? 원하는걸 못 봐서 불쾌해?”
  • 준일은 그녀를 벽에 힘껏 밀어붙이고 짙은 눈동자로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 그녀가 격렬히 밀어내던 찰나,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준일이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 “소리쳐. 소리치라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네.”
  • '나쁜 놈!'
  • 준일을 쏘아보는 정아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 “나한테 왜 이래?”
  • 준일은 아무 말 없이 다시 그녀의 입술에 거칠게 키스를 했다. 이상하게도 너무 달콤하게 느껴졌다. 5년 전 부부였던 시기에 준일은 그녀와의 잠자리가 미션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싫어했지만, 그녀의 좋은 몸매 덕분에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 하지만 그녀가 덜컥 임신했을 줄 몰랐고 아이를 낳았을 줄도 몰랐다.
  • 기억을 따라 거슬러가니 그 문제가 떠올랐다.
  • '5년 전 차정안이 죽었을 때 정아도 임신했던 걸까?'
  • 하지만 말해주지 않았으니 몰랐었다. 차정안의 무덤 앞에서 발로 걷어차고 감옥에 보내버리고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 그런데도 아이가 살아있었다니.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 여기까지 생각하니 온몸이 떨려왔다.
  • 그때는 정아가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 텐데 교도소에서 임신한 몸으로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 정아는 그를 힘껏 밀어냈다. 문밖의 사람들은 이미 나갔고 화장실 마지막 칸에 두 사람이 있는 걸 아무도 몰랐다. 그녀는 눈을 붉히며 흐느껴 울었다.
  • “나한테 왜 이래?”
  • '왜? 장난감처럼 갖고 싶으면 가지고 있다가 싫어지면 아무한테나 보내버리고!'
  • '박준일. 5년 전에 나한테 그런 상처를 줬으면 된 거 아니야?!'
  • '내가 얼마나 처참한 대가를 치렀는데 왜 아직도 당신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 준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동공만 수축하였다. 정아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이 남자도 그녀의 슬픔이 느껴졌다.
  • 정아는 그를 밀쳐내고 어깨를 들썩이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힘껏 입술을 닦아냈다. 준일의 강렬한 키스로 인해 립스틱이 모두 지워져 다시 립스틱을 발랐다.
  • 준일은 자신이 미친게 아닌가 싶었다. 분명 취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5년 뒤 돌아온 정아한테 그런 마음을 품게 될 리 없는 데 말이다.
  • 정아는 얼굴을 감싸고 화장실을 나섰다. 떠나가는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을 여자 화장실에 서 있던 준일은 안 좋은 안색으로 걸어 나오다 마침 들어가려는 여자들과 마주쳤다.
  • “헐. 여기 여자 화장실 아니야?”
  • 술에 취한 여자들이 표지판과 준일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 “너무 잘생겼잖아. 아니 그런데 왜 여자 화장실에서 나와?”
  • “조용히 해. 변태일지도 몰라...”
  • “쯧쯧. 멀쩡하게 생겨서는 여자 화장실을 좋아하다니...”
  • 여자들이 준일을 몇 번이고 더 보더니 남자의 신비한 분위기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
  • ******
  • 정아가 돌아가니 은선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품에 안고 애인처럼 익숙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준일이 그 광경을 보고는 소리 없이 실눈을 떴다.
  • '대체 왜 이런 거지? 내 물건에 다른 남자의 손이 닿는 순간...참을 수 없는 짜증이 몰려온다.'
  • 그는 마음속 떨리는 분노를 전부 참아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백은선은 이미 정아의 어깨에 기대어 웃으며 그녀의 몸매를 눈으로 만끽했다.
  • 은선이 정아에게 다가가 이름을 물으며 귓가에 대고 웃었다.
  • “박 회장과 사이가 남다른 것 같던데요?”
  • '이 사람이 어떻게 눈치를 챈 거지?'
  • 정아는 깜짝 놀라더니 승인하지 않으며 순간 미소를 띠며 말했다.
  • “그럴 리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 은선이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 “화장실에 간다고 나가더니 박 회장도 뒤에서 따라 나가던데요.”
  • '관찰력이 좋네!'
  • 다들 바보는 아니었나 보다. 정아가 준일을 따라왔으니 두 사람 사이에 대해 다들 궁금해할 텐데 화장실마저 함께 나갔으니...
  • 백은선이 의심할 만 했다.
  • 정아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더니 한참 지나서야 물었다.
  • “백 도련님. 진짜 제가 누군지 궁금하세요?”
  • 그녀의 심오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은선은 자기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 “그래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 정아가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 5년 전 A도시의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갖고 싶어 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눈매와 도도한 분위기를 뿜었던 이 여자가 저 높은 세상으로부터 굴러떨어져 이제 남자들의 마음에 가시를 꽂았다.
  • 정아는 그의 귓가에 대고 연인처럼 달콤한 소리로 말했다.
  • “...제 이름은 장정아랍니다.”
  • A도시에 장정아라는 이름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장 씨 집안 따님이다!
  • 은선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정아의 영혼까지 꿰뚫을 정도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 아쉽게도 정아는 영혼을 버린 지 오래다.
  • 그녀는 웃으면서 그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
  • “믿기 어렵죠? 그래요. 제가 장정아예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5년 전의 살인자, 장 씨 집안의 딸... 박준일의 전처예요.”
  • 진상을 알게 된 순간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그녀를 안고 있는 은선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 “지금... 장난치는 거죠?”
  • “제가 장난을 왜 치겠어요?”
  • 정아는 갑자기 침착하게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잔에 술을 부으며 웃었다.
  • “저를 모른다고 해도 제 얼굴을 몰라보진 않겠죠? 백은선 씨, 저 5년 전까지만 해도 그 바닥에서 은선 씨 이름 많이 들었어요.”
  • 5년 전... 그녀는 감옥살이를 했었다.
  • 은선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혼을 당한 데다 교도소까지 다녀온 여자가 이러고 있으면 절대 흥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흉진 여자를 좋아할 남자는 없었다.
  •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5년 전 상류사회를 뒤흔들었던 명문대가의 딸이다!
  • 은선은 그녀를 보며 갑자기 무엇 때문인지 목이 말라왔다.
  • “박 회장이... 왜 정아 씨를 여기로 보낸 거예요?”
  • 이 모든게 진짜라면 장정아가 박준일의 전처라는 말인데. 그럼 박준일은 대체 왜 전처를 이곳까지 불러와서... 이런 일을 시키는 거지?
  • 정아는 웃으며 은선에게 윙크했다.
  • “우리가 이혼했으니 이제 저는 박준일과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 그렇다. 그녀는 박준일과 아무 관계도 아니다. 5년 전이든 지금이든 준일의 마음에는 항상 그녀의 자리가 없다.
  • 얘기가 끝나지 않았건만 준일은 갑자기 앞으로 걸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아를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 정아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라 움찔하더니 그의 어깨를 팡팡 내리쳤다.
  • “뭐하는 짓이야! 내려줘!”
  • 준일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내려달라고? 다른 사람과 스킨십하는걸 계속 보고만 있으라고?”
  • 모두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은선이 소파에 앉아 정아를 데려가는 준일을 보며 버벅거렸다.
  • “저, 저기... 말, 말로 해요!”
  • “미안해요, 백 회장. 오늘은 이 여자를 데려가야겠어요. 약속은 다시 잡읍시다!”
  • 은선은 술잔을 잡고 소리쳤다.
  • “박 회장! 이러는게 어디 있어요! 자기가 직접 데려와 놓고 이제 다시 데려가려 하다니!”
  • 정아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다. 그녀는 떨리는 감정을 참으며 말했다.
  • “박준일. 이거 놔!”
  • “싫다면?”
  • “너 취했지?”
  • “그래. 나 취했다!”
  • 준일은 관중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정아를 어깨에 메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 “이거 놔! 나쁜 놈아! 쓰레기 새끼! 죽어버려!”
  • “욕 한번 잘하네. 재주가 있어. 아이비 대학 출신이라 어휘가 풍부하단 말이야.”
  • “나한테 술접대를 시키더니 이제 와서 후회해?!”
  • 정아가 소리쳤다.
  • “다른 사람더러 데려가라 그러지 왜! 쓰레기 같은 놈! 저질! 내가 너 때문에 5년이나 감옥에서 살아왔는데 이제 나한테서 뭘 더 바라!”
  • 그 말을 듣자 모두 안색이 변했다.
  • 정아의 5년 감옥살이 얘기가 가시마냥 모두의 귀에 들어갔다. 다들 동작을 멈추었다. 그 순간 다들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났다.
  • 외모나 재주가 모두 뛰어난 장 씨 집안 따님, 장정아!
  • 5년 전 잡혀 들어간 살인범, 장정아!
  • 갑자기 웃어대는 정아. 곧이어 눈물이 흘러내려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운명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철저히 도망 나온 줄 알았는데 크게 한 방 먹이며 ‘넌 절대 도망갈 수 없어’라고 잔인하게 말해준다.
  • 준일은 정아를 내려놓고 다시 품에 안고는 벽으로 밀어붙이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턱을 눌렀다.
  • “억울해?”
  • 정아는 눈웃음을 치며 미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 “억울? 내가 억울할게 뭐가 있겠어!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 준일은 그녀의 그런 말투가 싫었다. 그녀의 목을 꽉 조르자 뒤에서 누군가 소리 질렀다.
  • “박 회장... 그, 그만해요!”
  • 은선은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뒤에서 소리쳤다.
  • “박 회장! 진정해요!”
  • 병준은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 “준일이가 취했어... 사람 데려와.”
  • 정아는 그의 힘에 억눌려 숨을 가쁘게 쉬더니 결국 두 눈을 감고 그의 손에서 쓰러졌다.
  • “어머! 죽었어... 죽었나 봐!”
  • 준일은 깜짝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 '이럴 수가. 내 손으로 죽인 거야? 그럴 리가 없어!'
  • 준일은 다만 화가 나서 모두가 보는 앞임에도 불구하고 모욕을 줬던 거지 죽이려던 게 아니었다...
  • 정신을 잃기 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 주위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 모든 것이 점점... 점점 그녀의 귓가에서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