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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집 한 채 드릴게요

  • “한율씨, 뭐든 필요하시면 말만 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도와드릴게요.”
  • 서준표가 황급히 말했다.
  • “여기에 적은 붓과 진사는 어디에 쓰려는 거야?”
  • 이때 서유진이 질문을 건넸다. 필경 붓과 진사는 병 치료에 쓰이는 물건 같지도 않았고 게다가 이 두 가지는 시중에 잔뜩 널려있었으니까.
  • “유진아, 한율씨가 적은 건 다 그럴만한 도리가 있는 거야. 함부로 말하지 마.”
  • 서준표는 딸을 힐끔 째려보며 말했다.
  • “괜찮아요.”
  • 한율이 웃으며 대답했다.
  • “이 두 가지도 병 치료에 쓰이는 물건이에요. 다만 평범한 붓과 진사가 아니라 에너지가 깃든 붓과 진사여야만 하죠.”
  • “에너지가 깃들어야 한다고?”
  • 서유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서준표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에너지가 깃들었다는 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 두 사람의 멍한 표정에 한율은 재빨리 설명해주었다.
  • “세상 만물은 모두 생명이 있고 멸망하기 마련이죠. 그리고 모든 물건에 에너지가 깃들어있어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비생명체, 예를 들어 책상과 걸상에도 에너지가 있을 수 있죠. 다만 그러려면 엄청 까다로운 조건과 계기가 필요해요. 지금 제가 앉아있는 의자를 놓고 말해도 만약 제가 수년간 이 의자에 앉아 기를 다스린다면 10년 뒤 혹은 50년 뒤, 심지어 100년 뒤에 이 의자는 서서히 에너지가 생길 거에요.”
  • 한율은 어리둥절한 두 사람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 “나 알 것 같아.”
  • 이때, 서유진이 문득 놀란 듯 소리쳤다.
  • “그러니까 네 말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신선 굴의 나무 한 그루가 오랜 시간을 거쳐 에너지가 생기고 심지어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뭐 그런 뜻 아니야?”
  • “유진아, 허튼소리 하지 마!”
  • 서준표는 딸의 말을 듣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같은 시대에 신선이 웬 말이냐고 여겼다.
  • “따님의 해석이 아주 정확해요. 바로 그 뜻이에요...”
  • 한율은 웃으며 대답했다.
  • 예전 같았으면 한율도 믿지 않았겠지만, 용우와 함께 한 3년 시간 동안 그는 이 세상을 다시 접하게 됐고 전에 몰랐던 수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 용우가 그에게 전해준 콘데세션 스킬처럼 처음엔 분명 일종의 도를 닦는 스킬이었지만 한율이 수련에 성공하자 이는 곧 신선으로 거듭났다.
  • 서준표는 난처한 듯 미소를 지었다. 딸의 해석이 정확하다니, 만약 다른 사람이 에너지며 신선 등과 같은 단어를 말했다면 그는 무조건 코웃음 치며 새겨듣지 않았겠지만 한율이 직접 얘기하자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 한율과 서준표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훈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훈은 비록 심성이 너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과감히 책임을 떠맡을 그릇도 못됐다. 한율은 그를 제자로 들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용우의 허락 없이 그는 아무나 제자로 들일 수 없었다.
  • 십여 분 남짓 대화를 나눈 뒤 한율도 서준표가 다친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가 젊었을 때 비지니스 라이벌에게 뺨을 한 대 맞은 적이 있는데 딱히 외상을 입지 않았고 검사를 해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 하지만 얼마 못 가 서준표는 자신의 몸이 점점 더 약해진다는 걸 느꼈다. 그는 늘 호흡곤란 때문에 몸에 좋다는 약을 한가득 먹으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표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이 사실을 줄곧 숨겨왔고 바로 이 때문에 서유진도 아버지의 병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그의 말을 들은 한율은 바로 알아챘다. 그때 서준표의 뺨을 때린 사람은 틀림없이 무인일 것이다. 보아하니 그는 내공을 수련하여 서준표를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 다만 서준표는 엄청난 부자였기에 거액을 들여 약을 구했고 여태까지 버텨왔다. 오늘 한율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서준표는 아마 숨지고 말았을 것이다.
  • “명의님,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 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이훈이 또 한 번 높이 외쳤다.
  • 그는 이미 두 다리가 저리고 고통이 밀려와 잔뜩 괴로웠다. 한율은 이훈을 힐긋 바라보았다.
  • “얼른 일어나세요. 저는 제자를 맞을 생각이 없어요. 다만 닥터 훈께서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가르쳐드리죠.”
  • 한율은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는 이훈이 안쓰러워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는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제자로 받아드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 한율의 말을 듣자 이훈은 기쁜 마음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 “고마워요, 한율씨. 정말 너무 고마워요...”
  • 이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다리가 너무 저려 제대로 설 수 없었다.
  • 그 모습을 본 한율은 손을 뻗어 이훈의 다리를 꾹 눌러주었는데 금세 다리의 고통이 사라졌다. 이훈은 놀란 마음에 입이 쩍 벌어졌다.
  • “서 회장님, 집에 부모님이 계시니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 약재를 다 구하시면 저에게 전화해 주세요.”
  • 한율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 그의 어머니는 홀로 집에 계셨기에 실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 “한율씨, 실례지만 혹시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시나요?”
  • 서준표가 물었다.
  • “베일 구역에 살고 있는데, 왜 그러시죠?”
  • 한율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아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실 저에게 집 한 채가 텅 비어있어 이참에 한율씨한테 선물로 드릴게요. 그곳은 요양하기 아주 좋은 곳이니 한율씨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 서준표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며 말했다.
  • “정말 고맙습니다, 서 회장님!”
  • 사실 한율은 무언가 바라고 서준표를 구해준 게 아니었기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부모님이 살고 계신 낡은 집을 떠올리니, 자신이 돈을 벌어 새집을 마련한다 해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아 아예 동의해버렸다.
  • 정작 열쇠를 건네받은 한율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드래곤 아일 별장 구역의 전체 열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