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6화 넌 사기꾼이야

  • 드디어 한율이 나타나자 서준표는 흥분을 금치 못하며 재빨리 그에게 달려갔다.
  • “젊은이, 드디어 왔군. 어서 안으로 들어가...”
  • 서준표는 한율의 손을 꼭 잡으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서 회장님, 저는 약속을 꼭 지킵니다.”
  • 사실 서준표는 한율이 자신을 바람 맞힐까 봐 너무 두려웠다. 한율도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서준표는 살짝 뻘쭘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젊은이, 어서 들어가지...”
  • 서준표는 자세를 한껏 낮추었고 그 모습에 호텔의 사람들은 저마다 한율의 신분을 추측했다.
  • 서유진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한율과 고개를 푹 숙인 자신의 아버지를 번갈아 보더니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렸다.
  •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우리 아빠가 문 앞에서 너를 반 시간이나 기다렸어. 게다가 지금 우리 아빠 얼굴을 좀 봐.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잖아. 너 정말 병을 치료할 줄 알기나 해?”
  • 서유진은 애초부터 한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엔 아빠의 병을 억제해주어 그녀도 무척 놀라면서 속으로 한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고 바로 이 때문에 서유진은 한율이 사기꾼일 거라 생각됐다. 괜히 아빠의 돈을 사기 치려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 “유진아, 그만해. 얼른 사과하지 않고...”
  • 서준표는 차가운 표정으로 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 “제가 왜 사과해요? 이 사람 꼴을 좀 봐요. 어딜 봐서 의사예요? 틀림없이 사기꾼일 거라고요...”
  • 서유진은 차가운 시선으로 한율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왠지 아빠가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가 한율 때문인 것 같았다.
  • 서유진이 도통 말을 듣지 않자 서준표는 화가 나서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더니 호흡까지 가빠졌다.
  • “쿨럭쿨럭...”
  • 서준표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못 한 채 심한 기침을 해댔다!
  • “아빠...”
  • 서유진은 재빨리 다가가 서준표를 부축했다.
  • 이때 서준표가 시커먼 피를 한 모금 내뱉었고 그 모습에 서유진은 화들짝 놀라서 표정이 굳었다.
  • 검은 피를 토하는 서준표의 모습에 한율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서준표의 병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한율은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서준표는 이토록 심하게 다쳤으면서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버틴 것일까?
  • “얼른 아버님을 부축하고 방에 들어가...”
  • 한율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서유진에게 말했다.
  • 하지만 서유진은 멍하니 서 있을 뿐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한율을 믿지 않았다.
  • 움직일 기미가 없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율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단호하게 말했다.
  • “정말 네 아빠가 죽는 걸 보고 싶어서 그래?”
  • 서유진은 그의 으름장에 그제야 서준표를 부축하고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 방안에 들어서자 한율은 서둘러 서준표의 맥을 짚어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 그가 이제 막 서준표를 치료해주려 할 때, 방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안경을 쓰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 “닥터 훈, 얼른 오세요. 와서 아빠를 좀 보세요. 방금 피를 토하셨어요!”
  • 서유진은 닥터 훈을 보더니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말했다.
  • “네? 제가 바로 볼게요...”
  • 닥터 훈은 화들짝 놀라더니 황급히 약상자를 열었다.
  • “저리 비켜...”
  • 서유진은 한율을 한쪽으로 밀쳐낸 뒤 아빠를 부축하며 닥터 훈에게 말했다.
  • “아빠는 그럼 닥터 훈에게 믿고 맡길게요. 제발 구해주세요!”
  • 그 시각 서준표는 거의 정신을 잃었고 호흡도 아주 미약했다.
  • “유진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최선을 다할게요!”
  • 말을 마친 닥터 훈은 서준표의 맥을 짚어보기 시작했다.
  • “유진씨, 서 회장님은 폐부를 다치셨고 간헐적 발작이 주된 원인입니다. 이건 오랜 시간 축적된 만성병이니 반드시 천천히 치료해야 합니다. 다만 누군가 강제로 서 회장님의 면역력을 건드려 비록 일시적 효과를 보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병세만 가중됐습니다. 회장님은 지금 위급한 상태입니다. 실례지만 제가 오기 전에 혹시 누가 회장님의 병을 치료하셨나요?”
  • 닥터 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 말을 들은 서유진은 버럭 화를 내며 옆에 있는 한율을 째려보았다. 조금 전 한율이 그녀 아버지의 병을 치료해주었고 확실히 닥터 훈의 말처럼 아버지의 상태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다만 이 때문에 아버지를 해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 “야 이 사기꾼아, 우리 아빠가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 절대 너를 가만 안 둬!”
  • 서유진은 한율에게 소리치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녀는 서준표를 부축하느라 한율을 때리지도 못했다.
  • “대체 뭣 때문에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뭘 속였는데? 내가 아니었더라면 네 아버지는 진작에 시체가 됐을 거야. 진짜 어이가 없어!”
  • 한율은 차갑게 말을 내뱉으며 서유진에 대한 증오만 늘어났다.
  •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말끝마다 사기꾼을 운운하며 전혀 친절하지 않잖아!’
  • “너...”
  • 서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은 한율과 싸울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일단 아빠를 구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 “닥터 훈, 제발 부탁드려요. 무슨 방법이라도 좀 생각해봐요. 네?”
  • 서유진은 조급한 마음에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 닥터 훈은 약상자를 열고 안에서 검은색 알약을 꺼내더니 서준표의 입에 넣어드렸고, 이어서 침을 꺼내 그의 혈 자리에 여러 군데 놓아주었다.
  • “이렇게 하는 건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해치는 거야...”
  • 한율은 침을 놓는 닥터 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닥터 훈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 “무슨 뜻이죠?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설마 당신도 침을 놓을 줄 알아요?”
  • 침술은 엄연한 한의학이라 서양의학처럼 몇 년 동안 배워서 통달하는 게 아니었다. 한의학의 침술은 십여 년간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입문조차 하기 어렵고 통달하려면 적어도 몇십 년은 더 걸린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배워도 감히 통달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 그런데 한율은 지금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침술을 논하고 있으니, 닥터 훈은 그가 마냥 우스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