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율은 그에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한편, 서유진은 놀란 표정으로 닥터 훈을 쳐다보았다.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빠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요.”
서유진은 이해되지 않았다.
‘아빠가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닥터 훈은 왜 갑자기 한율을 명의라고 부르는 거야?’
“유진씨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래요. 조금 전 명의께서는 나인스턴 회생술을 사용하셨어요.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침술 말이에요! 서 회장님은 틀림없이 깨어날 거에요.”
닥터 훈은 서유진에게 설명했다.
“그렇게 대단해요?”
서유진은 살짝 못 미더운 표정으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만약 닥터 훈의 얘기가 정말이라면 한율은 이제 곧 명의라 불리게 된다.
“나인스턴 회생술을 아시다니, 정말 의외네요!”
한율은 숨을 고르며 약간 놀란 듯이 대답했다.
나인스턴 회생술은 오래된 침술이라 현재는 아주 보기 드물었고 한율도 용우에게 배웠었다. 그런 침술을 닥터 훈이 알고 있다니, 한율은 무척 의아했다.
“명의님, 저는 블러드 캐슬 한의 협회 부회장 이훈이에요. 전에 한 권의 고서에서 이런 침법을 본 적이 있는데 오늘 이렇게 제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네요. 명의님, 부디 저를 제자로 맞아주세요.”
닥터 훈은 또다시 한율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의 행동에 한율은 약간 당황했다. 바로 이때, 몇 번의 기침 소리가 울리더니 서준표가 드디어 깨어났다.
“아빠!”
서유진이 제일 먼저 발견하고 재빨리 달려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한율이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
“아직 움직이면 안 돼. 네 아빠의 몸에서 침을 다 빼내야 움직일 수 있어.”
그녀의 섬섬옥수를 잡고 있으니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이 한율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서유진도 한율의 손에 온기가 느껴진 듯 볼이 빨개졌다.
“그럼 잘 부탁해!”
한율은 서둘러 그녀의 손을 놓고 마음을 다잡으며 서준표의 침을 빼주었다. 그는 두 손을 휘두르며 81대의 침을 전부 빼냈다.
“다 됐어!”
한율은 서유진에게 말하며 침을 다시 이훈에게 돌려주었다.
서유진은 더는 한율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바로 서준표를 부축하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렸다.
“아빠, 이제 좀 괜찮아요?”
그녀는 서준표를 부축하며 물었다.
“나 괜찮아, 이젠 다 나았어!”
서준표는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이훈을 보더니 의아해서 물었다.
“왜 이러는 거야?”
서유진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일의 경위를 알려주었다. 한율이 나인스턴 회생술로 자신을 구했다는 걸 듣더니 서준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애초에 나의 병증을 한 눈에 알아봤을 때부터 의학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한의 협회 부회장인 이훈마저 무릎을 꿇고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 하다니!’
“이보게 젊은이, 자네 이젠 나를 두 번이나 구해줬어. 오늘부로 자네는 우리 서씨 일가의 은인이야.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말만 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절대 몸 사리지 않고 도울 거야!”
서준표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서 회장님. 수고라고 할 것도 없어요. 게다가 회장님께서 오랫동안 선행을 하셨으니 그 보답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한율은 담담하게 대답하더니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비록 제가 나인스턴 회생술로 회장님 목숨을 잠시 구해드렸지만, 이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아마 3개월도 넘기지 못할 거에요!”
말을 들은 서준표는 대뜸 한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율씨, 부디 제 목숨을 구해주세요. 평생 모은 재산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서준표는 덜컥 겁이 났다. 그는 더이상 한율을 젊은이라 부르지 않고 한율씨라고 호칭을 바꿨다. 아마 한율이 자신을 구해주지 않을까 봐 두려운 것 같았다.
살기 위해서라면 그는 기꺼이 전 재산을 한율에게 바치고 싶었다. 블러드 캐슬의 1등 가는 부자로서 서준표는 재산이 어마어마했는데 지금 이 모든 걸 한율에게 달갑게 주겠다니, 이건 누가 봐도 부러운 일이었다.
“회장님, 이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회장님의 병을 발견했으니 당연히 끝까지 책임지고 구해드릴 겁니다. 다만 제가 지금 희귀한 약재가 필요하니 회장님께서는 약재를 준비해오시면 돼요.”
한율은 서준표에게 약을 사줄 돈이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필요한 약재들은 전부 비싼 가격이었기에 일반인들은 약재들을 전부 준비해올 능력이 없었다.
“한율씨, 필요한 건 뭐든지 말만 하세요.”
서준표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유진에게 말했다.
“유진아, 얼른 가서 종이와 펜을 가져와.”
한율은 갑작스러운 그의 존댓말에 적응되지 않아 몹시 불편했다.
“회장님,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한율씨는 저의 생명의 은인이니 우리 집안 모두가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서준표의 집요한 태도에 한율도 더는 아무 말 없이 종이에 약재를 한가득 써서 서유진에게 주었다.
“회장님, 여기에 적은 대부분은 회장님이 필요로 하시는 약재이고 일부분은 저의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것이에요. 저의 어머니께서 시력을 잃어 제대로 치료하려면 이 약재들이 필요하거든요.”
한율은 솔직하게 서준표에게 털어놓았다.
그의 어머니 차홍연이 시력을 잃은 이유는 너무 오랜 시간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를 치료해드리는 건 사실 한율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 그의 능력으로는 치료에 쓰이는 약재들을 구하기 힘들어 이참에 서씨 일가에 부탁한 것이다.
그중 두 가지는 사실 한율도 서씨 일가에서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하나는 일정한 에너지가 깃든 붓이었는데 예를 들어 문인들이 장기간 사용했던 붓에는 에너지가 깃들어있다. 혹은 또 에너지가 깃든 동물의 털로 만든 붓도 가능했다.
에너지가 깃든 붓을 구하는 건 그중 하나였고 또 다른 하나는 진사였다. 비록 진사는 지금 매우 흔하지만 한율이 원하는 진사는 백 년도 더 된 자단나무 혹은 샌들우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에너지가 깃든 붓에 배합하여 차홍연의 눈에 몇 번 떨군다면 금세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한율은 비록 이 두 가지를 종이에 적었지만, 워낙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서씨 일가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진짜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이를 알아볼 수 있고 분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