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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나인스턴 회생술

  • “명의님, 부디 저를 제자로 맞아주세요!”
  • 닥터 훈은 한율에게 큰절을 올렸다.
  • 한율은 그에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한편, 서유진은 놀란 표정으로 닥터 훈을 쳐다보았다.
  •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빠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요.”
  • 서유진은 이해되지 않았다.
  • ‘아빠가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닥터 훈은 왜 갑자기 한율을 명의라고 부르는 거야?’
  • “유진씨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래요. 조금 전 명의께서는 나인스턴 회생술을 사용하셨어요.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침술 말이에요! 서 회장님은 틀림없이 깨어날 거에요.”
  • 닥터 훈은 서유진에게 설명했다.
  • “그렇게 대단해요?”
  • 서유진은 살짝 못 미더운 표정으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만약 닥터 훈의 얘기가 정말이라면 한율은 이제 곧 명의라 불리게 된다.
  • “나인스턴 회생술을 아시다니, 정말 의외네요!”
  • 한율은 숨을 고르며 약간 놀란 듯이 대답했다.
  • 나인스턴 회생술은 오래된 침술이라 현재는 아주 보기 드물었고 한율도 용우에게 배웠었다. 그런 침술을 닥터 훈이 알고 있다니, 한율은 무척 의아했다.
  • “명의님, 저는 블러드 캐슬 한의 협회 부회장 이훈이에요. 전에 한 권의 고서에서 이런 침법을 본 적이 있는데 오늘 이렇게 제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네요. 명의님, 부디 저를 제자로 맞아주세요.”
  • 닥터 훈은 또다시 한율에게 큰절을 올렸다.
  • 그의 행동에 한율은 약간 당황했다. 바로 이때, 몇 번의 기침 소리가 울리더니 서준표가 드디어 깨어났다.
  • “아빠!”
  • 서유진이 제일 먼저 발견하고 재빨리 달려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한율이 그녀를 덥석 잡아당겼다.
  • “아직 움직이면 안 돼. 네 아빠의 몸에서 침을 다 빼내야 움직일 수 있어.”
  • 그녀의 섬섬옥수를 잡고 있으니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이 한율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서유진도 한율의 손에 온기가 느껴진 듯 볼이 빨개졌다.
  • “그럼 잘 부탁해!”
  • 한율은 서둘러 그녀의 손을 놓고 마음을 다잡으며 서준표의 침을 빼주었다. 그는 두 손을 휘두르며 81대의 침을 전부 빼냈다.
  • “다 됐어!”
  • 한율은 서유진에게 말하며 침을 다시 이훈에게 돌려주었다.
  • 서유진은 더는 한율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바로 서준표를 부축하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렸다.
  • “아빠, 이제 좀 괜찮아요?”
  • 그녀는 서준표를 부축하며 물었다.
  • “나 괜찮아, 이젠 다 나았어!”
  • 서준표는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이훈을 보더니 의아해서 물었다.
  • “왜 이러는 거야?”
  • 서유진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일의 경위를 알려주었다. 한율이 나인스턴 회생술로 자신을 구했다는 걸 듣더니 서준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애초에 나의 병증을 한 눈에 알아봤을 때부터 의학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한의 협회 부회장인 이훈마저 무릎을 꿇고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 하다니!’
  • “이보게 젊은이, 자네 이젠 나를 두 번이나 구해줬어. 오늘부로 자네는 우리 서씨 일가의 은인이야. 앞으로 무슨 일 생기면 말만 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절대 몸 사리지 않고 도울 거야!”
  • 서준표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 “아니에요, 서 회장님. 수고라고 할 것도 없어요. 게다가 회장님께서 오랫동안 선행을 하셨으니 그 보답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 한율은 담담하게 대답하더니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 “비록 제가 나인스턴 회생술로 회장님 목숨을 잠시 구해드렸지만, 이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아마 3개월도 넘기지 못할 거에요!”
  • 말을 들은 서준표는 대뜸 한율 앞에 무릎을 꿇었다.
  • “한율씨, 부디 제 목숨을 구해주세요. 평생 모은 재산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 서준표는 덜컥 겁이 났다. 그는 더이상 한율을 젊은이라 부르지 않고 한율씨라고 호칭을 바꿨다. 아마 한율이 자신을 구해주지 않을까 봐 두려운 것 같았다.
  • 살기 위해서라면 그는 기꺼이 전 재산을 한율에게 바치고 싶었다. 블러드 캐슬의 1등 가는 부자로서 서준표는 재산이 어마어마했는데 지금 이 모든 걸 한율에게 달갑게 주겠다니, 이건 누가 봐도 부러운 일이었다.
  • “회장님, 이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회장님의 병을 발견했으니 당연히 끝까지 책임지고 구해드릴 겁니다. 다만 제가 지금 희귀한 약재가 필요하니 회장님께서는 약재를 준비해오시면 돼요.”
  • 한율은 서준표에게 약을 사줄 돈이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필요한 약재들은 전부 비싼 가격이었기에 일반인들은 약재들을 전부 준비해올 능력이 없었다.
  • “한율씨, 필요한 건 뭐든지 말만 하세요.”
  • 서준표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유진에게 말했다.
  • “유진아, 얼른 가서 종이와 펜을 가져와.”
  • 한율은 갑작스러운 그의 존댓말에 적응되지 않아 몹시 불편했다.
  • “회장님,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 “절대 그럴 수 없어요. 한율씨는 저의 생명의 은인이니 우리 집안 모두가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 서준표의 집요한 태도에 한율도 더는 아무 말 없이 종이에 약재를 한가득 써서 서유진에게 주었다.
  • “회장님, 여기에 적은 대부분은 회장님이 필요로 하시는 약재이고 일부분은 저의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것이에요. 저의 어머니께서 시력을 잃어 제대로 치료하려면 이 약재들이 필요하거든요.”
  • 한율은 솔직하게 서준표에게 털어놓았다.
  • 그의 어머니 차홍연이 시력을 잃은 이유는 너무 오랜 시간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를 치료해드리는 건 사실 한율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다만 지금 그의 능력으로는 치료에 쓰이는 약재들을 구하기 힘들어 이참에 서씨 일가에 부탁한 것이다.
  • 그중 두 가지는 사실 한율도 서씨 일가에서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하나는 일정한 에너지가 깃든 붓이었는데 예를 들어 문인들이 장기간 사용했던 붓에는 에너지가 깃들어있다. 혹은 또 에너지가 깃든 동물의 털로 만든 붓도 가능했다.
  • 에너지가 깃든 붓을 구하는 건 그중 하나였고 또 다른 하나는 진사였다. 비록 진사는 지금 매우 흔하지만 한율이 원하는 진사는 백 년도 더 된 자단나무 혹은 샌들우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에너지가 깃든 붓에 배합하여 차홍연의 눈에 몇 번 떨군다면 금세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 한율은 비록 이 두 가지를 종이에 적었지만, 워낙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서씨 일가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진짜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이를 알아볼 수 있고 분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