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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여자친구의 결혼식

  • “지금 뭐 하는 거야?”
  • 서유진은 급히 서준표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한율은 그에게서 손을 뗐고 서준표도 혈 자리를 지압 받더니 금세 숨통이 트이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 “저는 잠시 어르신의 상처를 공제했을 뿐 완치하시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요. 어르신의 병은 시기가 오래되어 천천히 치료해야 해요!”
  • 한율은 담담하게 말했다.
  • “고맙네 젊은이. 정말 너무 고마워...”
  • 서준표는 흥분을 금치 못하며 한율의 손을 꼭 잡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 서유진은 아버지가 얼굴에 생기를 되찾고 몸도 한결 나아진 것 같아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 “제가 어르신을 구한 이유는 어르신께서 평소 선행을 많이 하시고 또 열몇 군데 학교에 기부까지 하셨기 때문이에요. 어르신을 돕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 한율이 그를 구한 이유는 그가 착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이라면 한율은 아마 손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조금 전 서유진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하마터면 그를 차에 치어 죽일 뻔했으니 한율이 그들을 구해줄 리가 없었다!
  • 서준표는 살짝 뻘쭘해 하며 말했다.
  • “그까짓게 무슨 선행이라고, 한참 멀었어. 젊은이가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자네 갖고 싶은 게 뭔가? 말만 하게. 이제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 내가 젊은이한테 킹스 호텔의 점심 식사를 대접해드려도 될지 모르겠네?”
  • “괜찮아요. 저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 한율은 머리를 흔들며 서준표를 거절했다. 그는 지금 강서연을 만나 똑똑히 물어봐야 했다.
  • 한율이 거절하자 서준표는 살짝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명색이 블러드 캐슬의 갑부라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려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그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권세를 지닌 상류층이다.
  • 그런 서준표가 먼저 한율에게 식사를 청했는데 거절을 당하다니, 이건 너무 의외였다!
  • “젊은이, 그러지 말고 우리 함께 식사하지. 내가 고마운 마음을 표하려고 그래!”
  • 서준표는 꿋꿋이 한율의 팔을 잡아당겼다.
  • 한율은 그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끈질기게 식사를 대접하려는 이유는 바로 병의 후속 치료가 궁금했을 뿐이다. 다만 서준표의 진심 어린 표정에 한율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일단 볼일을 보고 다시 킹스 호텔로 가서 어르신을 찾을게요!”
  • 그의 말에 서준표는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 “그래, 약속을 꼭 지켜. 도착하거든 나한테 전화하면 돼!”
  • 한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재빨리 강서연의 집으로 향했다.
  • ...
  • “서연이는요? 지금 당장 서연이를 만나야겠어요!”
  • 다소 낡아 보이는 별장 앞에서 한율은 중년 여성에게 말했다.
  • 이 중년 여성은 바로 강서연의 어머니 하윤정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한율은 감히 이런 말투로 하윤정에게 말을 내뱉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난 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 하윤정은 단아한 옷차림에 고고한 척 팔짱을 끼고 하찮은 눈길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 “당장 물러가지 못해? 오늘은 우리 딸의 결혼식 날인데 너 따위 죄수가 재수 없게 여길 왜 와...”
  • “결혼이요?”
  • 한율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 ‘광수의 말이 진짜였어!’
  • “서연이는 지금 어디 있어요? 걔가 누구랑 결혼해요? 당장 나와서 저한테 해명...”
  • 한율은 차가운 얼굴로 별장에 뛰쳐 들어갔다!
  • “어머... 너 이 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쳐들어와?”
  • 하윤정은 필사적으로 그를 잡아당겼다.
  • 하지만 그녀는 절대 힘으로 한율을 이길 수 없었고 결국 그에게 질질 끌려 정원까지 들어왔다!
  • 한율은 이제 곧 안으로 뛰쳐 들어갈 기세였고 이때 마침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음침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 그녀를 보는 순간 한율은 금세 동작을 멈췄다.
  • “서연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뭐 하는 거냐고 지금? 어서 내게 설명 좀 해봐.”
  • 한율은 두 눈을 부릅뜨고 강서연에게 쏘아붙였다.
  • “한율아, 그만 돌아가. 다신 날 찾아오지 마. 나는 인제 주원 오빠랑 결혼하기로 했어!”
  • 강서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 말을 들은 한율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록 다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직접 들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그가 감옥에 들어간 이유도 신주원 때문인데 이젠 자신의 여자친구까지 그 인간에게 시집가다니?
  • 그야말로 한심할 따름이었다!
  • 한율은 문득 자신을 비웃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천해 보였다...
  • “진심이야?”
  • 한율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기가 싹 사라졌고 양손도 천천히 내려놓았다.
  • “그래!”
  • 강서연이 대답했다.
  • “나는 부자의 삶을 살고 싶어. 너는 나에게 해줄 수 없잖아. 게다가 너는 이젠 옥살이까지 하고 나와서 본인 앞가림조차 하기 힘들 텐데 무슨 능력으로 나까지 책임지겠어?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사이인데 10만 원이라도 먼저 가져. 괜히 길거리에 나앉지 말고!”
  • 말을 마친 강서연은 가방에서 현찰을 꺼내더니 한율의 얼굴에 내던졌다!
  • 한율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완전히 체념했다. 눈앞의 그녀는 더이상 그가 알던 강서연이 아니었다.
  • “너 후회하게 될 거야!”
  • 한율은 그녀의 돈을 내팽개치고 자리를 떠났다.
  • “쯧, 너 같은 거지에게 시집가는 게 더 후회되겠지!”
  • 하윤정이 뒤에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