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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최선을 다해볼게

  •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여긴 너 따위 필요 없어. 당장 물러가...”
  • 서유진은 한율이 닥터 훈의 치료를 방해할까 봐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 “그래, 네가 가라고 한 거다. 나 그럼 복도에 가서 앉아있을게. 장담컨대 5분도 안 돼서 너 꼭 나한테 돌아오라고 빌 거야.”
  • 말을 마친 한율은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
  • 그가 밖으로 나갔지만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고, 닥터 훈은 땀을 뻘뻘 흘리며 조심스럽게 서준표에게 침을 놓아드렸다.
  • 마지막 침을 놓았을 때 서준표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며 비스듬히 눈을 떴다!
  • “아빠, 우리 아빠가 깼어요. 아빠가 깼다고요. 너무 잘 됐어요...”
  • 서유진은 감격에 겨워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 그녀는 조금 전 아빠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
  • 닥터 훈도 서준표를 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도 살려낼 확신이 없었다.
  • 다만 서유진과 닥터 훈이 한숨을 돌리려 할 때 눈을 뜨고 있던 서준표가 갑자기 격렬하게 몸을 떨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숨이 가빠지고 얼굴도 새파랗게 질렸다.
  • “아빠... 아빠...”
  • 서유진은 큰소리로 외치며 허겁지겁 닥터 훈을 바라보았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 닥터 훈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 “저도... 저도 모르겠어요. 대체 왜 이러지? 왜 이러는 거지...”
  • “지금 누구한테 물어요? 당신이 의사잖아요!”
  • 서유진은 조급한 마음에 닥터 훈을 향해 소리 질렀다.
  • 그때, 서준표는 몸이 떨리는 주기가 점점 더 잦아졌고 나중에는 아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심지어 숨도 쉬지 않았다.
  • 이 모습에 닥터 훈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만약 서준표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의 인생도 망하는 거니까.
  • “아빠, 저 놀라게 하지 말아요. 저 무섭단 말이에요...”
  • 서유진은 눈물을 터트렸다.
  • “유진씨, 우리 얼른 회장님을 병원에 모셔가요. 저도 더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요!”
  • 닥터 훈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이제 와서 서준표를 병원에 보내려는 목적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서준표가 병원에서 죽으면 더는 그와 연관이 없을 테니.
  • “지금 저를 바보로 보는 거예요? 아빠가 지금 상태로 병원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빨리 구해요. 아빠를 살려내지 못하면 당신도 죽을 각오하세요...”
  • 서유진은 이미 이성을 잃었고 눈동자 속에 오직 분노만 차 있었다.
  • 그녀의 집안은 블러드 캐슬에서 1등 가는 부자 집안이라 닥터 훈과 같은 작은 의사 한 명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 닥터 훈은 덜컥 겁이 났지만 더는 아무 방법이 없었다. 한창 초조해하고 있을 때 그는 문득 한율을 떠올리며 재빨리 말했다.
  • “유진씨, 방금 나간 그 남자분 말이에요. 그분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까 보니 뭘 좀 아는 것 같더라고요!”
  • 닥터 훈의 말에 서유진도 곧장 한율을 떠올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한율을 무시했지만, 지금은 다시 그를 칭찬하는 걸 보니 그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려는 수작인 듯싶었다.
  • 한율이 일단 치료에 가담한다면 서준표가 죽어도 더는 닥터 훈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까, 모든 책임은 한율이 혼자 떠맡아야 한다.
  • 서유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서준표를 의자에 앉히고 방을 뛰쳐나갔다.
  • 그 시각, 한율은 그녀가 찾아올 줄 알고 복도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 서유진은 한율이 아직도 복도에 남아있자 재빨리 그에게 달려갔다. 다만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을 때, 문득 자신이 아직 그의 성함도 모른다는 걸 알아챘다.
  • “저기, 우리 아빠를 살려줘. 제발...”
  • 서유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한율에게 부탁했다.
  • 한율은 천천히 머리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감히 한율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한율에게 모진 욕설을 퍼부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찾아와 빌고 있으니, 그를 마주할 면목이 없었다.
  • “내가 너의 아빠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거야? 더이상 내가 사기꾼이 아니라고 믿는 거냐고?”
  • 한율의 물음에 서유진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직 한율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 단지 궁지에 몰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 그런 서유진의 모습에 한율은 미소를 지으며 더는 그녀를 난감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서유진도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아갔다. 한편, 닥터 훈은 한창 땀투성이가 된 얼굴로 방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 한율을 본 닥터 훈은 마치 구세주라도 본 것 같았다. 한율이 서준표를 살리든 말든, 일단 그가 치료에 가담한다면 닥터 훈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까는 내가 미안해요. 그러니까 제발 서 회장님을 살려주세요!”
  • 닥터 훈은 한껏 자세를 낮추고 한율에게 부탁드렸다.
  • 자신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꿀 발린 말을 몇 마디 해주는 게 뭐가 대수라고.
  • 한율은 서준표를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 “최선을 다해볼게...”
  • 말을 마친 한율은 닥터 훈을 바라보며 질문을 건넸다.
  • “혹시 침이 더 있나요?”
  • “네, 약상자에 있어요!”
  • 닥터 훈은 재빨리 침을 꺼내 한율에게 건넸다.
  • “이걸로는 부족해요.”
  • “부족하다고요?”
  • 닥터 훈은 어안이 벙벙했다.
  • “지금 여기에 침이 30대나 있는데 이걸로 부족하다고요?”
  • 평소라면 침을 열몇 대 놓아도 아주 대단한 수준이고, 꽤 유명한 의사라도 20대 좌우로 충분했는데, 지금 상황에 침이 30대 있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충족했다.
  • “안 돼요. 저는 침이 더 필요해요.”
  • 한율이 대답했다.
  • “얼마나 더 필요해요?”
  • 닥터 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족히 81대가 필요해요!”
  • 한율이 말을 마친 순간, 닥터 훈은 화들짝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잠시 뒤 그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약상자에서 모든 침을 꺼내놓았다.
  • 한율은 침을 건네받고 서준표를 바닥에 평평하게 눕힌 뒤 신속하게 양손을 움직여가며 그의 체내에 침을 놓아주었다.
  • 한율은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힘들어 보였고 옷까지 흠뻑 젖었다.
  • 서준표에게 마지막 침까지 놓은 뒤 한율은 긴 한숨을 내쉬며 허탈해진 몸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이 과정에서 서유진은 줄곧 좌불안석이었다. 그녀는 침술을 잘 몰라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괜히 한율을 방해할까 봐 말을 꺼내지 못했다.
  • 한편, 그 시각 닥터 훈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 한참 후 닥터 훈의 표정은 충격에서 흥분으로 변해가며 한율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한율과 서유진 모두 화들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