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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사직

  • “착하게 있어.”
  • 서준표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송예선은 서준표가 모든 사랑을 제게 줬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하진에 비해 저가 가진 것들이 너무 많은 것에 그녀는 위안이 되었고 과한 욕심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투정 그만 부리기로 했다.
  • 게다가 대단한 외모를 소유하지 않은 그녀라 성격으로 서준표의 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온순한 고양이가 되는 것.
  • 이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단하진이 잘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송예선이 떠나자, 서준표가 내선 전화를 눌렀다.
  • “여보세요!”
  • 단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내 사무실로 와.”
  • 무거운 목소리엔 분노가 섞여있다.
  • 사무실에 앉아있는 단하진이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최악의 경우 QR을 떼려치면 그만이다.
  • 엘리베이터로 8층에 도착한 그녀는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는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 말없이 의자에 앉아있는 서준표을 보니 숨이 막혀왔다.
  • “설명해 봐.”
  • 지금 이 순간, 서준표는 이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그녀에게 묻고 있다.
  • 단하진이 눈을 찌푸렸다. 여자친구인 송예선의 말을 믿을 게 분명한데 저가 뭐라고 설명해 봐야 유의미한 걸까?
  • “송예선과 무슨 사이지?”
  • 뒤틀린 미간로 불만을 토해내며 단하진이 물었다.
  • “단하진. 네 신분 잊었나? 넌 내 직원이야. 잘못을 했으면 마땅한 설명을 해야지.”
  • 서준표의 얇은 입술이 움직였다.
  • 그제야 깨달은 단하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말했다.
  • “봤잖아요. 내가 걔 따귀를 때린 거. 뭘 더 설명하란 얘기지?”
  • “왜 때린 거지? 고발하겠다고 해서?”
  • “사적인 원한이 있었어요. 오늘 내게 찾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사람을 때린 건 내 잘못 맞아요. 근데 걔는 맞아도 싸.”
  • 단하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 서준표의 눈빛이 착잡해졌다. 정말 일찍 돌아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소홀함으로 이렇게 난폭한 성격이 되어버린 건가?
  • “단하진. 잘못을 인정하면, 더 이상 추궁하지 않지.”
  • “잘못? 누구한테? 송예선한테?”
  • 단하진이 어이없음에 코웃음을 터뜨리고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 “죽어도, 죽어도 그럴 일 없어요.”
  • “단하진. 여긴 회사야. 네 사적인 원한을 해결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 도저히 참을 수 없음에 서준표가 언성을 높였다. 생명 은인의 딸이어도 인내심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 게다가 맞은 상대가 5년간 고심 끝에 찾은 여자다. 마음속에 늘 간식하고 있던 여자다.
  • “그만 둘게요 그럼.”
  • 단하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결국 쫓아내려는 거잖아? 잘 됐네, 그만두면 되지.
  • “단하진, 거기 서.”
  • 남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 단하진이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송예선의 남자친구라 얼굴 보는 것마저도 짜증 나고 온몸에 신경이 곤두서는 지경이다.
  • 잘생긴 놈이 눈이 멀어서야, 안타깝네.
  • “그만두라는 뜻 아니야. 계속 남아서 일해. 하지만 앞으로 다신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알겠나?”
  • 남자는 결국 그녀를 잡았다.
  • 어쨌거나 그는 할머니의 뜻을 받들려 그녀를 잘 보살펴야 한다.
  • 디자인을 사랑하는 단하진도 이곳을 떠나길 원하지 않는다. QR에서 보낸 세월도 벌써 삼 년, 이미 정이 들어있다.
  • 단하진이 고개를 돌려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자리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호의적인 충고를 했다.
  • “송예선 조심하세요. 보이는 것처럼 착한 사람 아니니 뒤통수 조심해야 할 거예요.”
  • “오늘 가해자는 너인 것 같은데.”
  • 서준표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 따귀가 다 뭐라고, 단하진은 그녀를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멍청한 남자는 송예선을 목숨같이 아낀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 같아 그만 얘기하기로 했다.
  • 단하진이 무사히 사무실로 돌아왔고, 이은미에게 그녀를 자르라는 통보도 닿지 않았다. 사무실 전체는 믿기 어려운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고객을 때리고 서 대표님의 여자친구에게 무례를 범했음에도 단하진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과연 무슨 방법으로 해낸 걸까?
  • 이서현이 커피 한잔 들고 오면서 위문했다.
  • “하진 언니, 괜찮아요?”
  • “괜찮아.”
  • 화에 영감마저 사라져버린 단하진은 펜을 내려놓고 이마를 짚었다.
  • “사람들이 뭐래?”
  • “하진 언니, 신경 쓰지 마세요.”
  • 이서현이 말했다.
  • “얘기해 봐.”
  • “뒷빽이 있다고 하네요. 언니 배후가 어마무시해서 서 대표님마저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거라고. 그리고 또, 서 대표님 애인이라는 버전도 있어요. 아까 그 아가씨가 두 사람 사이를 눈치채고 직접 찾아와서 혼내는 거라고.”
  • 이서현이 단하진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 어이없음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단하진은 제 아무리 남자가 없어도 송예선의 남자친구는 더러워서 빼앗지 않을 것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은미가 호출했다. 고객을 상대할 시 예의나 태도에 신경을 쓰라고 귀띔하면서 다시는 오늘 같은 착오를 범하지 말라 경고했다. 다음엔 서 대표님이 쫓아내지 않아도 저가 쫓아낼 거라며 협박을 했다.
  • 어이없어도 길게 설명해서는 안 되는 단하진이다. 송예선과의 원한관계가 너무나도 깊은 데다가 5년 전 그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
  • 단하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언짢았던 기분이 금세 괜찮아지는 것만 같았다.
  • “여보세요.”
  • “목소리 왜 그래요? 피곤해요?”
  • 경쾌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조금요. 언제 귀국해요?”
  • “아직 며칠 지나야 돼요.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까요? 탑 프라이빗 주얼리 쇼 초대 명단에 하진 씨 이름 적어뒀어요. 가서 구경해 보세요! 보고 싶었던 그 주얼리 세트도 있대요.”
  • “네? 진짜요? 너무 좋은데요? 언젠데요?”
  • 단하진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 “이번 주 토요일 저녁 7시에 입장하고 9시에 끝날 예정이에요. 우진이 돌봐줄 사람은 있어요?”
  • 남자가 관심하며 물었다.
  • “있어요. 내 비서 아니면 아버지한테 부탁하면 돼요.”
  • 단하진은 탑 디자이너들의 제품들만 전시되는 이 완벽한 쇼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그렇군요. 재짔게 놀다 와요. 다녀와서 제가 맛있는 거 쏠게요.”
  • “네! 기다릴게요.”
  • 전화를 끊은 단하진의 머릿속엔 훈훈하고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자가 떠올랐다.
  • 그녀가 외국에서 알게 된 좋은 친구이자 실력 있는 집안 도련님이다. 그 이름은 전성우다.
  • 인생에 귀인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전성우가 바로 그녀 인생의 귀인이다.
  • 토요일 밤이라면 모레 저녁이다. 단하진은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 호화로운 별장 안, 송예선이 얼음으로 부어있는 얼굴을 찜질했다. 이 얼굴에 정성을 다했는데 단하진 때문에 빨갛게 부어있으니 정말 이가 갈렸다.
  • “단하진, 절대 가만 안 둬.”
  • 그러고는 IPAD를 들어 뉴스를 확인하던 중 한 여자 연예인이 초대장을 자랑하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톱 주얼리 쇼의 입장 카드였다.
  • 그리고 사진 밑으로 쇼에 초대되는 손님은 오로지 30명뿐이고 초대된다는 건 고귀한 신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보태 설명했다.
  • 송예선은 이 쇼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재벌가의 모습을 갖추고 싶었던 그녀에게 이 쇼는 제 신분과 안목을 향상시키는데 굉장히 유리하다. 비록 제게 참가할 신분 따위가 없지만, 서 씨 가문이라면 분명히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