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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떠보기

  • 조금 전 일로 단청아는 열받았다. 그녀와 손잡고 단하진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송예선뿐이라는 생각에 급히 약속을 잡았다.
  • 커피숍.
  • 송예선이 도착했다. 평범한 옷차림인 그녀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그녀는 단청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 “여행 갔었다고? 어디 다녀왔어?”
  • 단청아가 물었다.
  • “음… 그냥 근처에 기분전환할 겸 다녀온 거야.”
  • 송예선이 대충 둘러댔다. 단청아에게 그간 부자 삶을 누렸다는 걸 들켜서는 절대 안 된다.
  • “스튜디오는 어쩌고?”
  • “그만뒀어. 장사도 잘 안되고, 그냥 쉬려고.”
  • 송예선의 얼굴엔 긴장하거나 초조한 기미가 전혀 없었다.
  • 단청아가 식식거리며 말했다.
  • “오늘 단하진 때문에 나랑 우리 엄마 열받아 죽는 줄 알았잖아. 혼자 오면 그만이지 어디서 애새끼 하나 데려왔더라고.”
  • 송예선이 놀란 나머지 물을 뿜을 뻔했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단청아의 손을 꽉 잡고는 다급히 물었다.
  • “뭐? 애가 있다고?”
  • 오히려 그 반응에 단청아가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잠시 뒤, 그녀를 안심 시켰다.
  • “그냥 밖에서 낳은 새끼야. 어디 가서 남자 데려올까 봐 걱정돼서 그래? 우리한테 복수라도 할까 봐? 걱정 마.”
  • “그 아이 어떻게 생겼어? 몇 살이래?”
  • 유난히 예민한 모습을 보이는 송예선이다. 이제부터 단하진에 관한 모든 것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 그 아이, 설마 서준표 아이는 아니겠지!
  • “아빠 말로는 세 살 반쯤 된다던데. 외국에서 낳은 자식이래.”
  • 단청아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 세 살 반, 시간으로 따져보면 서준표의 아이가 아니다. 송예선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 겨우 하룻밤을 보낸 건데 그렇게 쉽게 임신할 리가 없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 “뭐 어떻게 지낸대? 어디서 출근하고?”
  • 송예선은 단청아에게서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캐내려 했다.
  • “바이에가에서 주얼리 디자이너로 근무한대. 고작 디자이너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 단청아가 하찮은 얼굴로 말했다.
  • 송예선 역시 경멸의 웃음을 보였다.
  • “그림 쪽으로 재주가 있기는 했는데, 대학교도 못 졸업한 년이 디자이너는 무슨?”
  • “내 말이? 별것도 아닌 게 우리 아빠 앞에서 어찌나 꼬리를 흔들어대는지. 우리 아빠는 또 거기에 속아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생각만 해도 열이 올라. 그리고 그 꼬마는 어린 나이에 어찌나 약삭빠른지. 어우 열받아.”
  • 화가 난 단청아는 이미지고 뭐고 없이 제 엄마와 같이 막돼먹은 모습을 보였다.
  •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송예선이 그녀를 부추겼다.
  • “청아. 그렇게 꼴 보기 싫으면 다시 외국으로 내쫓아! 괜히 네 앞에서 걸리적거리게 두지 말고.”
  •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기회 생기면 바로 쫓아낼 거야.”
  • 단청아가 주먹을 꽉 잡았다.
  • 송예선이 바라던 바다. 단하진이 영원히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고 그래야만이 지금 제 것이여야만 하는 이 모든 것들을 맘 편히 누릴 수 있다.
  • 그래야지 오로지 저만의 준표로 만들 수 있다.
  • “예선아, 너 목걸이 뭐야? 되게 이쁘다!”
  • 그녀의 목걸이에 홀린 단청아가 물었다.
  • 송예선이 손으로 목걸이를 가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 “중고 시장에서 짝퉁 산 거야.”
  • 송예선이 별로 돈도 없고 넉넉한 집안도 아니라는 걸 단청아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송예선이 정품을 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 하지만 송예선의 목에 걸려있는 건, QR이 곧 출시할 1억짜리 정품 목걸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목걸이의 디자이너가 누군지 모른다.
  • 단청아의 불만을 듣는 와중에도 송예선은 끊임없이 시간을 체크했다. 미용원에 오후 시간으로 예약했고 지각을 해서는 안 된다. 서준표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해 얼굴을 가꿀 것이고 심지어 성형을 해볼까 고민도 하고 있다.
  • 그녀는 스스로 평범함을 인지하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단하진의 꽃받침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 삼일 후, 새벽 다섯시.
  • 송예선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에게 찾아온 단하진을 한눈에 알아본 서준표가 매정하게 저를 별장에서 쫓아냈고 단하진이 저를 대신해 재벌 삶을 누렸다.
  • “아… 안 돼.”
  • 끔찍함에 꿈에서 깬 송예선이 벌떡 일어났다. 온몸에 식은땀으로 범벅임에도 주변 상황을 확인하기에 급급했다. 다행이다, 악몽이었다.
  • 하지만 꿈이라기에 너무나도 리얼했다. 겁에 질린 그녀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갖고 나면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서준표가 가져다준 모든 것을 누리기 시작한 지금,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녀다.
  • 돈맛에 미혹된 그녀라 잃고 싶지도 잃어서도 안 된다.
  • “단하진. 왜 살아있는 거야, 왜 죽지 않았냐고…”
  • 송예선이 베개를 땅에 집어던졌다. 마치 그 베개가 단하진인 듯 힘차게 내동댕이쳤다.
  • 단하진이 살아있는 게 그녀에게 가장 큰 위협으로 닿았다.
  • 송예선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단하진을 만나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일에 진상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지, 그날 밤 그 남자가 서준표라는 걸 알고 있는지 똑똑히 알아내야 한다.
  • 만약 그녀가 알고 있다면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된다. 서준표는 그 시계로 저가 그날 밤 그 여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분명한 건, 서준표는 그날 밤 그 여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 근데 단하진이 서준표를 기억한다면? 그날 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일절 모르는 그녀다. 나눴던 대화로 서로를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어떡하지?
  • 온몸의 신경이 말하고 있다. 겁이 난다. 이런 마음으로 도무지 다시 잠들 수 없었던 그녀는 이쁘게 꾸미고 단하진을 떠보려 바이에가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 이른 아침, 단하진은 아들을 학교로 보내고 출근했다.
  • 아침부터 회의 일정이 잡혀있다. 신제품 발표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이은미는 매 사람이 최소 10개의 디자인을 제출하라고 지시했고 제한 시간은 이번 달말로 정했다.
  • 회의실 밖으로 걸어나가던 중 이안이 일부러 어깨로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 “서 대표님이 상금을 5천만 원으로 올렸대. 단하진, 나 절대 너한테 안 져.”
  • 단하진이 흠칫 당황했다. 서준표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5천만 원?
  • 서준표가 왜 그러는지, 단하진은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이 회사에서의 지위, 그리고 그의 재력과 힘으로 무슨 대회든지 끼어들 수 있다.
  • 설마 이 남자, 5천만 원짜리 상금을 제게 주려고 그러는 건가? 아니, 이런 대회는 공평함이 핵심이다.
  • 절대 이 남자의 힘을 빌려 정해진 일등이 되고 싶지 않다.
  • 착잡한 단하진이 사무실로 돌아갔고 이서현이 커피 한 잔 건네며 말했다.
  • “하진 언니, 손님 있어요.”
  • “손님?”
  • “휴게실에 계세요. 지금 바로 모시겠습니다.”
  • 이서현이 말했다.
  • “그래.”
  • 손님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단하진은 기다리기로 했다.
  • 한참 지나 노크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문이 열렸다. 이서현의 옆으로 한 그림자가 걸어들어왔다. 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증오가 파도같이 밀려왔다.
  • 이서현이 문을 닫고 나가자, 단하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무슨 염치로 날 찾아와?”
  • 송예선이 피식 웃었다.
  • “단청아한테서 얘기 들었어. 너 여기서 출근한다고. 마침 근처에 있었으니까 들른 거지.”
  • “역겨워.”
  • 단하진이 이를 악물며 따귀를 날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러 삼켰다.
  • “역겨워? 왜? 그 술집 남자가 만족스럽지 않았어? 야, 그래도 제일 잘생긴 놈으로 고른 건데.”
  • 송예선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 “설마 아직도 그 술집 남자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지?”
  • “입 닥쳐.”
  • 단하진은 온몸에 치가 떨렸다.
  • 송예선은 계속해서 그녀를 떠보려 했다.
  • “그 남자가 네 앞에 서있으면 알아볼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