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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단하진의 분노

  •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 단하진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 “왜? 그 남자 체력이 안 좋았냐? 만족스럽지 않았나 봐? 단하진, 나한테 잘 해. 아님 내가 온 회사에 네 일 떠벌릴 테니까. 어떻게 회사 다니나 두고 보자고.”
  • 단하진이 내선 전화기를 들어 이서현에게 말했다.
  • “잠깐 들어와.”
  • 이서현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향했다. 단하진이 소파에 앉아있는 송예선을 가리키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 손님 아니야. 밖으로 모셔.”
  • “누가 아니래? 주얼리 디자인 받으러 온 거야. 너한테서 디자인 받을 거거든.”
  • 송예선이 제 팔을 감싸 안고 우쭐거렸다.
  • 그리고 그때, 그녀가 오늘 착용한 목걸이가 드러났다. 단하진의 눈동자가 가녀리게 흔들리더니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 송예선이 제 디자인을 착용하고 있다. 저 목걸이는 고급 주문 제작 제품인데, 짝퉁인가?
  •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꺼져.”
  • 단하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 그 말에 송예선의 낯빛이 한없이 어두워지더니 이를 악물며 문을 잡아당겼다.
  • “너희 팀장한테 너 고발할 거야. 이 회사에서 바로 쫓겨나게.”
  • 손님인 줄 알았으나 트집 잡으러 온 사람이었다. 이서현이 놀란 얼굴로 어쩔 바를 몰랐다.
  • 송예선이 나가자, 이서현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 “하진 언니, 저 아가씨 좀 말려봐요. 고발하게 내버려 두면 어떡해요!”
  • 분노에 이성을 잃은 단하진이 사무실 문을 열어보니 송예선이 돌아다니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 “여기 대표 불러요 당장. 디자이너 단하진, 고발할 거예요. 고객을 거절한 걸로 모자라 무례하기까지, 방금 나한테 꺼지라고 했단 말이에요.”
  • 사람들은 재밌는 구경난 듯 떠들어대는 송예선을 보고 있다.
  • 단하진이 심호흡과 함께 송예선에게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 “뭘 원하는 거야?”
  • “뭘 원하냐고? 널 이 회사에서 쫓겨나게 만들 거야.”
  • 송예선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 5년 전 그 일로 단하진은 송예선을 치가 떨릴 정도로 혐오하고 있다. 근데 지금 그걸로도 모자라 회사에서까지 난동을 부렸고 더 이상 눈 뜨고 가만히 볼 수만 없었다. 이 일을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딱 한 가지는 해야 한다.
  • 송예선이 반응할 겨를조차 없이 단하진이 그녀의 볼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을 남겼다.
  • “아…”
  • 송예선이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 “단하진, 나 네 고객이야.”
  • 그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헉하고 놀랐다. 단하진이 고객을 친다고?
  • 무슨 배짱이지?
  • 부자야 뭐야!
  • 단하진의 시선이 송예선의 목걸이에 떨어졌다. 목걸이가 괜히 거슬리고 가시처럼 느껴졌다. 송예선이 어떤 연기를 해대던 그녀의 신경은 오로지 그 목걸이에게만 향했다. 그녀는 바로 몸을 낮춰 그 목걸이를 잡아 힘껏 당겼다.
  • “아…”
  • 목이 조이는 느낌에 송예선이 비명을 질렀다.
  • 단하진이 힘껏 잡아당겼다.
  • 억대의 고가 목걸이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장 아끼는 목걸이다. 무례한 단하진의 행동에 송예선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단하진에게서 제 목걸이를 지키기 위해 송예선이 즉시 손을 뻗었다.
  • 두 사람이 목걸이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을 무렵, 엘리베이터 쪽으로 싸늘한 중저음 보이스가 들려왔다.
  • “단하진. 그 손 떼.”
  • 단하진이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송예선이 부어오른 얼굴을 부여잡고 고개를 슬쩍 올렸다.
  • 목소리의 주인공에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서준표가 왜 여기 있는 거지?
  • 단하진이 목걸이로 송예선의 목을 조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준표가 즉시 제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끄잡아 위로 당겼다. 예리한 눈빛은 분노를 표하고 있다.
  • “그만해.”
  • 외마디 경고와 함께 서준표가 단하진의 손을 밀쳐냈다. 그러고는 송예선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서준표가 이곳에 있을 거라고, 단하진과 알고 지낸다고 예상치 못했던 그녀는 두려움과 공포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 제발 그러지 말라고 간곡히 기도했던 일이 결국 일어났다고, 제 거짓말이 들통났음에 겁이 나 있던 그때 서준표가 갑자기 몸을 낮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예선아, 괜찮아?”
  • 송예선은 즉시 몰입해 처참한 눈물 연기를 했다.
  • “준표, 아파…”
  • 서준표의 품에 기대 괴로운 척 기침을 몇 번 해대며 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 커진 단하진의 눈동자가 의아함을 말했다. 송예선이 서준표와 아는 사이라고? 그리고 서준표가 송예선을 이렇게나 상냥하게 대한다고?
  • 두 사람, 무슨 사이지?
  •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대표의 여자를 떼린 단하진이 이제 끝장났다 생각했다.
  • 눈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송예선은 단하진과 서준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살피고 있다. 기쁨과 아울러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다. 단하진은 그날 밤 남자가 서준표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 그러니까 두 사람은 5년 전에 하룻밤을 보냈었다는 걸 모르고 있다. 다행이다, 하늘이 돕고 있다.
  • “준표, 안아 줘…”
  • 송예선이 손을 뻗어 서준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가련한 모습을 보였다.
  • 부어있는 반쪽 얼굴과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모습을 보니 마음 아팠던 서준표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도 단하진은 정신을 되찾을 수 없었다. 송예선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다고? 5년 못 본 사이로 서준표의 여자친구가 된 거야?
  • “단하진, 제 발로 알아서 기어나가. 고객한테 밉보인 것도 그냥 그렇다고 쳐. 하필 서 대표님 애인을 건드렸냐? 정말 담도 크셔!”
  • 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금을 독차지할 생각에 설렜다.
  • 말도 안 되는 지금 이 상황을 파악하려면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하진이 심호흡과 함께 생각을 추슬렀다. 송예선이 서준표의 애인이 됐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송예선이 무슨 매력으로 서준표 같이 둘도 없는 남자를 꼬셨을까?
  • 역시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 남자가 눈이 멀었다.
  • 분명하다.
  • 눈이 멀지 않고서야 송예선같이 악독한 여자를 마음에 둘리가 없다.
  •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던 단하진이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사무실로 돌아가 문을 꽉 닫았다.
  • 서준표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있는 송예선이 티슈로 눈물을 닦아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간신히 오늘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단하진, 나랑… 나랑 동창이었어.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내 주문은 안 받는다 하더라고. 그리고… 그리고 날 모욕하기까지 했어. 고발하겠다고 하니까 달려들어서 날 떼리는 거야… 게다가 내 목걸이로 내 목을 조아서 빨갛게 만들었어.”
  • 송예선 목에 남아있는 핏자국만으로도 단하진이 얼마나 독한 여자인지 알 수 있다. 서준표는 오늘 일로 단하진에 대한 인상이 철저히 뒤바뀌었다.
  • “어머니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상관하지 않는 아이라 많이 동정했어. 근데 날 이렇게까지 미워할 줄은 몰랐어.”
  • 송예선이 손으로 볼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
  • 서준표가 그녀를 위로했다.
  • “별장으로 데려다주라고 할게.”
  • “준표, 어떻게 할 거야? 자를 거야?”
  • 송예선이 눈물로 범벅인 두 눈으로 연약함을 과시했다.
  • 서준표가 내선 전화로 실장 주호를 호출해 송예선을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지시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송예선이 갑자기 서준표의 옷깃을 붙잡고 말했다.
  • “준표야. 절대 용서해서는 안 돼. 쟤처럼 교양 없고 악독한 사람은 직원으로 두기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