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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아빠와 계약결혼

애 아빠와 계약결혼

핑콩

Last update: 2024-04-10

제1화 황당한 그 밤

  • “하진아, 나 좀 살려줘. 나 클럽에서 성추행 당했어.”
  • 급하게 어딘가로 향해 달려가는 단하진의 머릿속엔 온통 가장 친한 친구의 절망스럽고 괴로운 목소리뿐이다.
  • 808번 방.
  • 단하진이 고개를 들어 방 번호를 확인했다. 송예선이 보낸 방 번호가 맞다. 그녀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 문이 열리자, 온통 칙칙함뿐이다.
  • 그러다 갑자기.
  • 커다랗고 힘 있는 손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룸 안으로 끄집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닫혔다.
  • “아… 누구세요? 뭐 하는 거예요?”
  • 덜컥 겁이 난 단하진이 소리를 질렀다.
  • “도와줘. 보상할 테니까.”
  • 무겁고 허스키한 보이스가 울러퍼졌다.
  • 목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단하진은 남자의 힘에 의해 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튼튼한 남자의 몸이 저에게 닿았다.
  • “읍…”
  • 당혹스러움에 잠시 흠칫하다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던 그녀의 입술로 은은한 박하향이 전해졌다.
  • 남자의 몸을 활활 태우는 그 열기는 그녀에게 화상을 입힐 지경이다.
  • 무의미한 발버둥에 절망한 단하진은 가만히 늑대같이 덮쳐드는 이 남자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다.
  • 한 시간 뒤.
  • 흐트러진 옷매무새인 단하진이 몸서리를 치며 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끔찍한 악몽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 걱정이 앞섰다.
  • 핸드폰을 쥐고 전화를 걸려던 찰나, 어깨 옆 문으로부터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조명으로 그중 두 여자를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 제게 도움을 청한 절친 송예선 그리고 저의 의붓 자매 단청아다. 두 사람은 다정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마치 저들이야말로 친자매인 듯 말이다.
  • 그 두 사람을 바라보는 단하진의 두 눈엔 분노로 가득 찼다.
  • “송예선. 너 거기 서.”
  • 단하진이 주먹을 꽉 쥐고서 언성을 높였다.
  • 송예선과 단청아가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낯빛인 단하진이 송예선을 째려보며 따져물었다.
  •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 차가운 피식 웃음소리와 함께 송예선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 “단하진. 내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네가 멍청한 거겠지?”
  • “아까 그 친구가 제대로 모셔주디?”
  • 단청아의 얼굴엔 음험하고 악독한 미소가 번졌다.
  • 단하진은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오늘 밤 일어났던 일은 두 사람의 수작이다. 19년간 지켜왔던 결백이 오늘로 더럽혀졌다.
  • 송예선이 싸늘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 “단하진. 너 진짜 내가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줄 알아? 지금까지 난 늘 네 받침대였어. 난, 네가 정말 싫어. 싫다는 말로 부족해. 증오해. 네 그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해.”
  • 단청아가 조롱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아빠한테 너 그동안 클럽에서 몸 팔아 돈을 벌었다고 할 거야. 이제 증거도 있어. 넌,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라!”
  • “너희들…”
  • 믿을 수 없는 말들이 그녀의 정신을 어지럽혔고 단하진은 홧김에 저도 모르게 휘청거리고 말았다. 배신한 우정, 악독한 의붓 자매 그리고 더럽혀진 제 몸…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 “예선아 이제 가자. 더러운 여자랑 말 섞지 말자.”
  • 단청아가 송예선의 팔짱을 잡고 길가에 세워진 제 스포츠카로 향했다.
  • 삼일 뒤.
  • 단 씨 가문.
  • “유학을 보내주지 않았다고 이딴 더러운 짓거리를 해? 이 단준석에게서 어떻게 너 같이 파렴치한 딸자식이 나와!”
  • 묵직할 뿐만 아니라 노한 목소리다.
  • “아버지, 저는 그런 적…”
  • “그런 적 없다고? 단하진, 넌 어쩜 이리도 뻔뻔하니? 좋은 것 먹고 좋은 것만 입혔더니 그런 곳에서 몸을 팔아서 돈을 벌어? 더러운 병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려고? 우리한테 그 병 옮기기만 해봐!”
  • 주얼리로 온몸을 치장한 여자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 “아버지, 저는 진짜… 저…”
  • 단하진은 어떻게든 해명해 보려 했다.
  • 하지만 단준석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마디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노하며 말했다.
  •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 집에서 당장 나가. 너 같이 파렴치한 딸을 두는 게 내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이다.”
  • 2층 난간 쪽, 단청아가 턱을 괴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건 그녀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갔다. 이제 단하진은 이 집에서 쫓겨나 불쌍한 유기견이 되었다.
  • 단하진은 아버지가 이토록 실망하고 또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본다. 그녀는 더 이상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짐 정리하러 방으로 향했다.
  • 2층 계단에 발을 딛자마자, 팔짱을 낀 단청아가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 “꺼져! 이 집에서 걸리적거리지 말고. 여긴 네 집 아니야.”
  • 단하진이 주먹을 꽉 쥐고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이 득의양양한 얼굴을 째려봤다.
  • “왜? 한대 치게? 쳐 봐!”
  • 단청아가 얼굴을 들이밀며 도발했다.
  •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단하진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뺨을 쳤다.
  • “아! 감히 날 때려? 아빠, 엄마! 단하진이 날 때렸어!”
  • 단청아가 앓음 소리를 내며 계단 아래로 뛰쳐갔다.
  • 계단 아래로 온 이정은이 딸을 끌어안고 계단 위에 서있는 단하진에게 손찌검을 하며 식식거렸다.
  • “단하진, 감히 내 딸을 쳐? 네가 아주 겁이 없구나!”
  • 둘째 딸아이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바닥 자국을 바라보던 단준석은 잔뜩 실망했다.
  • 언제부터 제 큰 딸이 이렇게 사리 구분을 못하는 아이로 돼버린 걸까?
  • “아빠, 아파…”
  • 단청아는 또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일부러 아파서 숨을 고르지 못하는 척해대며 불쌍한 척했다.
  • “단하진, 당장 나가.”
  • 단준석이 계단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 짐 정리를 마친 단하진이 여권을 챙겨들고 계단 아래로 걸어내려갔다. 아버지는 단청아를 아기처럼 품에 안고 달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단하진은 더 이상 이 집에 일말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 아버지는 어젯밤 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일절 묻지 않고 단청아의 얘기에만 귀 기울였다. 아버지에게 저가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분명하다.
  •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아버지는 곧장 바람난 여자와 그 딸을 집으로 데려왔고 그녀는 이 집의 군더더기나 마찬가지였다.
  • 불쌍한 어머니는 아버지가 저를 배신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 단하진은 더 이상 이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 짐을 챙겨 떠나는 단하진의 뒷모습을 바라본 단청아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드디어, 저 쓰레기 쫓아냈네.
  • 5년 뒤.
  • D 국 어느 한 오피스텔, 누군가 노크했다.
  • 디자인에 푹 빠져있던 여자가 짜증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슈트차림의 두 아시아 남자를 바라보며 그녀가 영어로 물었다.
  • “누구 찾으시죠?”
  • “단하진 씨 맞으세요?”
  • 상대방은 한국어로 되물었다.
  •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 단하진이 물었다.
  • “부탁을 받고 찾아뵙게 됐습니다. 어머님 구현월 씨는 저희 도련님 생명을 구해주신 은인이십니다. 저희 여사님께서 한번 뵙길 원하십니다.”
  • 단하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 “여사님이 누구시죠?”
  • “서 씨 가문의 여사님이십니다.”
  • 앞장서있는 남자가 공경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단하진이 그제야 깨달았다. 국내 최고의 재벌 그룹 SC 그룹의 여사님, 어머니가 목숨을 던져 구해 낸 사람이 바로 그 여사님의 손자다.
  • 단하진은 어머니가 위대한 경찰임을 자랑으로 느꼈다.
  • “죄송합니다. 뵙고 싶지 않네요.”
  • 단하진이 단칼에 거절했다. 은혜를 갚으려는 서가의 의도가 분명했고 그와 반대로 그녀는 그 보답을 받고 싶지 않다.
  • “엄마, 누구야?”
  • 앳된 어린아이의 궁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단하진이 급히 대답했다.
  • “아니야.”
  • 그러고는 단하진이 문밖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저 안 만납니다.”
  • 문이 닫겼다.
  • 국내, 산 중턱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 안.
  • “찾았어?”
  • “네, 도련님. 5년 전 클럽에서 만나셨던 여자분, 방금 중고거래 시장에 도련님 시계를 내놓았습니다.”
  • “찾아내.”
  •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의 무거운 목소리로 위엄을 느낄 수 있다.
  •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