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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녀의 대표님

  • “할머니가 아내로 맞길 원합니다. 단하진 씨와 아이를 평생 지켜줄 수 있게 말이죠. 저와 결혼하실래요?”
  • 서준표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결혼같이 중요한 일을 싸늘한 눈빛으로, 그 어떤 책임지듯 아주 담담하게 내뱉었다.
  • 우스웠던 단하진이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남자를 바라봤다.
  • “내 얼굴이, 결혼하기 어려운 얼굴로 보여요?”
  • 여자가 봐도 심장이 떨리는 미모다. 절세미인, 그 표현이 적합한 여자다.
  • “싫다는 말씀이네요?”
  • 서준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돈도 있고 힘도 있고 잘생기기도 했는데, 그쪽 별로예요.”
  • 단하진이 당당하게 말했다.
  • 여유롭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 여자에게 저가 아무런 매력이 없는 모양이다. 원했던 결과에 서준표는 다행이라 여겼다.
  • 바랐던 대로 서로 끌리지 않는다.
  • “단하진 씨가 우리 할머니를 한번 만나 뵀으면 해요.”
  • 서준표가 말했다. 이 여자만이 할머니의 생각을 끊어낼 수 있다.
  • 그는 또 다른 여자에게 책임을 져야 하니까.
  • 단하진이 잠시 고민에 빠져있다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 “진짜로 QR 인수하신 거예요?”
  • “오늘부터 내가 대표님이니까 걱정 마세요. 나만 믿으세요.”
  • 결혼은 못 해도 회사에서만큼은 온 힘을 다해 도울 거라는 서준표의 결심이다.
  • 단하진이 눈을 깜빡였다.
  • “네, 그렇게 하죠! 서 대표님 살펴 가세요!”
  • 서준표는 또다시 넋을 잃었다. 저를 이렇게도 안중에 두지 않는 여자는 이 여자가 처음이다.
  • 서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단하진은 그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때, 이서현이 노크하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 “하진 언니, 서 대표님과 무슨 얘기 하신 거예요? 언니 좋아한대요?”
  • “누가 그래?”
  • “지금 회사에 소문났어요! 회의실에서 언니만 쳐다봤다고.”
  • 이서현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 그 말에 단하진은 머리가 아팠다. 도움을 주려던 서준표는 괜히 번거롭게 만들었다. 조용히 대표님이나 할 것이지. 앞으로 조용히 일만 하고 다신 제 앞에 나타나지 말길 빌었다.
  • 통유리창 앞에 서있던 고민하던 단하진이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누구세요?”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코끝이 찡 해남과 함께 단하진이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저예요! 하진이.”
  • “하진이? 너… 너 5년 동안 어디에 있은 거야? 5년 내내 너를 찾았다.”
  • 단준석이 뜻밖의 연락에 기쁜 모양이다.
  •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 단하진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 “아버지, 미안해요. 그동안 외국에서 지냈어요. 최근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 “그래, 돌아왔으면 됐다. 언제 집에 들를 거니?”
  • “저… 저 며칠 있다가 갈게요.”
  • “그래. 건강하면 됐다. 다 이 아비 잘못이다. 아버지가 널 집에서 쫓아내는 게 아니었다.”
  • “지나간 일이에요.”
  • 단하진이 그를 위로했다. 이겨냈던 힘든 시절들을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 “그래. 빨리 집으로 돌아오렴!”
  • 단준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전화를 끊은 단하진이 길게 한숨을 들이마셨다. 집,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건강하고 무탈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 그때, 부 사장 이양호가 노크를 했다. 그의 손엔 한 박스가 있었다.
  • “하진아, 선물.”
  • 단하진이 놀라운 얼굴로 책상 위에 놓인 상자를 봤다.
  • “이게 뭐예요?”
  • “맞춰 봐.”
  • 단하진이 상자 위에 적힌 글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클라우드 아파트”, 부동산 매물일 것이다.
  • “그냥 얘기해 줘요!”
  • 단하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수수께끼가 귀찮았다.
  • “클라우드 아파트. 60억짜리 초호화 대형 아파트. 370평이라는 어마어마한 면적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럭셔리한 인테리어, 국내 탑으로 꼽히는 주택 관리 시스템을 소유한 아파트! 풀옵션 완비, 몸만 들어가면 되지. 그리고 그 주인은, 바로 너!”
  • 미리 외우기라도 한 듯 이양호가 줄줄이 말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키 여섯 개와 카드키 하나가 있었다.
  • 단하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 “날 주는 거라고요?”
  • “하진. 서 대표님께서 특별히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 네 오피스텔을 클라우드 아파트로 바꿔주셨어. 어때? 좋지?”
  • “가져가요. 필요 없으니까.”
  • 단하진이 차갑게 거절했다. 서가의 그 어떠한 보답도 받고 싶지 않다. 어머니가 돌아감으로 그녀는 고통, 아니 처참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 어머니는 위대한 희생으로 명예의 훈장을 받았지만 그녀는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양호가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거절했다고?
  • “하진아, 장난치지 마! 이건 너한테만 주는 거라고!”
  • 이양호, 35세 싱글이다. 젊고 예쁜 미녀 단하진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하지만 서준표가 찍어뒀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 “서 대표님께 전하세요. 특별 대접하지 마시라고요.”
  • 단하진이 말하고는 상자를 그에게로 밀었다.
  • “가져가세요.”
  • “이러지 마. 나 곤란해진단 말이야. 넣어둬!”
  • 이양호는 눈치챌 수 있었다. 대표님인 서준표는 단하진을 좋아한다.
  • 단하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 “도로 가져가요. 필요 없으니까. 고마워요.”
  • 그녀의 진지한 모습에 이양호는 어쩔 수없이 상자를 도로 가져갔다. 서준표는 제국 그룹이 아닌 바이에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 “서 대표님. 하진이가 안 받겠다네요. 입 아프게 말해도 싫대요.”
  • 이양호가 속수무책한 얼굴로 회보했다.
  • “네.”
  •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눈빛이다. 사실 그녀의 거절은 서준표가 예상했던 바다.
  • 물질적인 것으로 이 은혜를 보답할 수 있으면 최고다. 그러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 단 씨 가문.
  • 집으로 돌아온 단준석이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정은아. 오늘 전화 하나 받았는데, 누구인지 맞춰 봐.”
  • “누군데?”
  • 이정은이 궁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 “하진이, 그동안 외국에서 지냈더라고.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나 했더니.”
  • 단준석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
  • 하지만 그는 조금 전과 확 달리진 아내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원한이 이글이글 끓어오르더니 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 “아직도 기억해서 뭐해? 그때 당신 쪽팔리게 했던 거 벌써 잊었어? 집에 들어오라고 하지 마.”
  • “정은아. 다시 생각해 보니까 하진이 그런 애 아니야.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우리도 그만 잊자!”
  • “오해? 청아가 찍었잖아. 그런 곳에 드나는 걸. 증거가 확실한데 오해는 무슨.”
  • 이정은은 쫓겨났던 단하진이 돌아올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 단가의 회사가 잘나가니 돌아와 유산이라도 뺏으려는 건가? 참 나! 유산은 전부 제 딸의 것이고 단하진에게 차려진 건 일 푼도 없을 거라고 이정은이 이를 갈았다.
  • 기쁨이라곤 전혀 없는 아내의 모습에 단준석도 이야기를 멈추고 피곤한 모습으로 계단 위를 올라갔다.
  • 그리고 이정은은 곧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엄마.”
  • “청아야. 누가 돌아왔게?”
  • “누가?”
  • “단하진 그년이 오늘 네 아빠한테 연락했대. 돌아왔다고.”
  • “뭐? 무슨 낯짝으로 돌아와?”
  • “아무래도 그년이 우리 집 재산에 눈독 들인 것 같아. 제 몫을 챙기려는 거지. 내가 살아있는 한, 그년은 땡전 한 푼도 못 챙겨.”
  • 이정은이 야박한 얼굴로 코웃음 쳤다.
  • “5년 전에도 쫓아낼 수 있었는데,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쫓아낼 수 있어.”
  • 단청아 역시 자신만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