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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시어머니가 찾아오다

  • 내가 의아해하고 있는 와중에 몸에 갑자기 부드러운 담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굴에서도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 그리고 거실에서 사락사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청소를 하는 소리였다. 우리가 남긴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알게 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떨렸다.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 마지막으로 날 방의 침대에 안아간 뒤, 이불을 덮어 주었고 또 떠나기 전에 내 옆의 침대 빈 공간에 물 한 컵을 부었다. 그 바람에 침대 시트는 흠뻑 젖고 말았다. 참… 좋은 친구였다.
  • 난 너무 피곤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 잠에서 깨자 누군가 옆에 눕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는 동시에 술냄새가 풍겨왔다. 돌아누워 보니 술에 잔뜩 취한 소국진이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 여자를 만나는 데 실패해 밖에 나가 술이라도 마신 건가?
  • 난 코를 움켜쥐었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나 그래도 일어나 그에게 욕조 물을 틀어주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꿀물을 타주었다.
  • 난 예전에도 종종 이랬다. 밖에서 술을 마시느라 힘든 그가 안쓰러워 아껴주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우스울 뿐이었다. 정사를 하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뭐가 힘들겠는가?
  • 꿀물을 다 마신 소국진은 나를 안아서 침대에 눕힌 뒤, 술냄새로 가득한 입을 나에게 내밀었다.
  • 소국진은 키스를 하며 내 몸 위에 강제로 올라타려고 했다. 술이 덜 깨어 상대를 잘못 알아본 듯했다.
  • 난 얼굴을 돌리고 그를 피했다. 예전에도 그와의 잠자리는 뜨겁지 않았는데 그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혐오스럽기만 했다.
  • 그러나 그는 내가 거절하는 것도 모르고 내 귓불을 입에 문 뒤, 손을 잠옷 안에 넣고 주물렀다. 그리고 우물우물하며 불렀다.
  • “여보.”
  • 같은 행동을 주동욱도 했었는데 지금처럼 역겹지 않았다.
  • 난 내가 주동욱이라는 병이 든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여자는 정말 남자와 자기만 해도 마음이 가는 건가?
  • 난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
  • “늦었으니까 얼른 자. 내일 회사로 출근해야 하잖아.”
  • 그리고 그가 대답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돌아누웠다.
  • 그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 그가 일부러 나랑 하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 그 뒤로 며칠 동안 소국진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만취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나한테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난 진작 그에게 너무 실망하여 더 이상 결혼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없었다. 비장의 카드가 생기면 이혼할 생각이었다.
  • 주동욱은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앞에서는 날 ‘형수님’이라고 불렀고 뒤에서는 ‘요물’이라고 불렀다.
  • “요물, 나 보고 싶지 않았어?”
  • 그는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그의 튼실한 팔에 안겨 있을 때였다.
  • 난 고개를 돌리고 그를 훑어보았다.
  • “우리 집 키를 몰래 훔친 것 아니야?”
  • 난 분명 문을 잠갔는데 말이다.
  • 그는 억울한 얼굴로 키를 눈앞에 흔들거렸다.
  • “훔치다니. 원래 내 거거든.”
  • 아… 깜박했다. 반년 전에 집의 자물쇠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소국진은 신경을 쓰지 않고 주동욱더러 도와달라고 했다.
  • 그렇다면 이 바람둥이가 반년 전부터 우리 집 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대체 원하는 게 뭐지?
  • “그때부터 나랑 자고 싶었던 거야?”
  • 내가 물었다.
  • 그러나 그는 웃지 않고 날 뚫어지게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당신은 원래부터 내 거였어.”
  • 난… 좀 감동받았다. 그러나 감동에 그칠 뿐이었다. 현실에 호되게 당한 나는 남자의 달콤한 말은 다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국진이 가장 좋은 예였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바보처럼 웃기 시작했다.
  • “배고파. 오늘에는 뭐 해줄 거야?”
  • 내가 대답했다.
  • “탕수육.”
  • 그러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탕을 넣지 않은 탕수육의 맛을 떠올리는지 표정도 부자연스럽게 변했다.
  • 그리고 또 순순히 얼굴을 나에게 비비며 말했다.
  • “누님, 다른 걸로 바꾸면 안돼요?”
  • 난 웃음이 나왔다.
  • “왜? 내가 한 게 맛이 없어?”
  • 그는 눈썹을 위로 치켜세우며 억지로 말을 짜냈다.
  • “맛있어.”
  • 난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