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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만나다

  • 그러나 그의 말이 맞았다. 야밤에 공원에 올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 시간에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와 10 미터 떨어진 곳의 모퉁이에 있는 남자와 여자 말이다.
  • 난 그를 두드리며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 “당신 형이 있네.”
  • 그는 덤덤한 얼굴로 시선을 돌리더니 내 볼에 키스를 하고 날 풀어주었다.
  • “당신 남편이거든.”
  • 우리 둘이 바로 서자 그들도 도착했다.
  • 소국진은 날 본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 “당신, 당신…”
  • ‘당신’이라고만 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 그러나 그는 말을 잘하지 못해도 시력은 좋았다. 3초 뒤에 그는 내 옆에 있는 주동욱을 발견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 난 그가 화를 내며 날 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바로 손찌검을 했다. 난 그에게 따귀를 맞았다.
  • 난 멍해지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먼저 바람을 피워 놓고 나더러 바람을 피우지 말라는 말인가?
  • 그러나 그는 내가 바람 피운 것만 신경 쓰느라 옆에 애인이 있는 것도 잊은 듯했다. 주동욱은 날 자신의 뒤로 이끌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 “소국진, 야밤에 여자를 안고 공원에 와서 연이를 때리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 소국진은 말문이 막혔는지 옆에 있는 여자의 손을 놓고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 “이건 우리 집 일이니까 너 상관하지 마. 연이라는 이름도 네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야. 네 일이나 신경 써.”
  • 말을 마친 그는 내 손을 잡아 끌려고 했다. 난 그의 손을 뿌리쳤다. 방금 전까지 다른 여자를 만지고 있던 손이 아닌가?
  • “다른 여자를 만진 더러운 손으로 날 만지지 마.”
  • 소국진은 내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온몸이 굳어졌다.
  • 그러나 자신이 도둑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잠깐만 멍해 있었을 뿐, 당황한 마음을 괜한 분노로 무장했다.
  • “최연, 난 진작부터 너희 둘이 의심스러웠어. 지난번에 같은 그릇을 쓸 때부터 말이야. 엄마가 너희 단둘이 집에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오해라고 해명하기까지 했는데.”
  • 이 말에 대해서는 억울하지 않았다. 난 바람 난 게 맞았고 주동욱과의 사이도 애매했다. 그래서 억울할 일이 없었다.
  • 내가 억울한 건 바람을 먼저 피운 게 그임에도 불구하고 날 질책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뻔뻔스럽다니. 낯짝을 소가죽으로 만들었나?
  • 주동욱은 되레 비꼬았다.
  • “부끄럽긴 하네. 우리가 같은 그릇을 쓴 건 맞는데 너처럼 같은 침대에서 잔 건 아니잖아.”
  • “너!”
  • 소국진은 화를 내며 손을 들려고 했다. 말발이 딸리는 모양이었다.
  •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자 난 그들이 정말 싸울까 두려워서 말리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 밥을 먹었는데 왜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운 거지?
  • 주동욱이 날 부축하려고 하자 소국진이 확 밀쳤다.
  • 난 어지러워서 소국진에게 안긴 채 집에 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 소국진은 날 집에 데려간 뒤, 다정하게 물었다.
  • “여보, 어때? 아직도 어지러워? 따뜻한 물 따라줄게.”
  • 약간은 감동받을 뻔하던 마음이 따뜻한 물이라는 말에 싹 사라졌다.
  • 따뜻한 물은 참 만능이었다. 내가 생리통을 앓고 있을 때도, 감기에 걸렸을 때도 따뜻한 물을 마시라고 하더니 지금 머리가 어지러운데도 따뜻한 물을 마시라고? 차라리 저혈당으로 의심되니 설탕이라도 풀어준다면 모를까.
  • 난 그의 말에 대꾸하고도, 화를 내고도 싶지 않았다.
  • 그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허락한 줄로 알고 방으로 들어갔다.
  • 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까처럼 심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어지럽고 메슥거렸다.
  • 메슥거리다니…
  • 순간 내 머릿속에는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두 달째나 생리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 임신한 초기 증상이 어떻더라? 난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자 주동욱이 보낸 카카오톡이 보였다.
  • [괜찮아? 나 지금 문밖에 있어.]
  • 난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타자하여 검색했다. 순간 한기가 발끝에서 일었다.
  • 어떻게 이럴 수가…
  • 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