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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해명

  • 나와 소국진은 결혼한 지 2년이 되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2년 동안이나 임신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임신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 주동욱과도 잠자리를 했어서 난 너무 불안했다.
  • 누구의 아이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 아이가 주동욱의 것이든 소국진의 것이든 난 원하지 않았다.
  • 곧 소국진과 이혼할 건데 이 타이밍에 임신이라니?
  • 소국진은 컵을 들고 들어오더니 날 부축해 일으켰다.
  • “여보, 따뜻한 물 좀 마셔. 뜨거우니까 천천히.”
  • 그는 컵의 물을 호호 불며 나의 입가로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화상을 입을까 걱정되는지 조심스럽게 날 바라보았다.
  • 나는 진정하자고 다짐했다.
  • 난 긴장한 나머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러나 애써 웃으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컵을 받았다.
  • “내가 할게.”
  • 예전에는 그의 다정함이 좋기만 했지만 지금은 불편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에 기댄 채, 날 바라보았다.
  • 난 그의 시선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가 뭔가를 눈치챌까 두려웠던 것이다. 긴장한 나머지 손에 땀이 난 얼마 되지 않는 물을 30분 가까이 마셨다.
  • 그가 인내심을 잃기 기다렸지만 오늘 그는 왠지 꼼짝도 하지 않고 내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 하는 수 없었다. 물을 다 마신 난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피곤하니 먼저 잘게.”
  • 그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잠시만. 나 물어볼 말이 있어.”
  • 너무 무서웠다. 안 물어보면 안되나?
  • 내가 가장 당황하고 겁을 먹은 순간, 손에 꼭 붙잡고 있는 것은 휴대폰이었다. 그것도 주동욱의 전화번호가 찍혀진 화면에 고정된 채로.
  • 그는 날 끌어당기고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눌렀다.
  • 나를 때리려고 하는 줄 알았던 나는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 그러나 뒤에는 침대와 벽이라 움직일 수 없었다.
  • “미안해, 여보.”
  • 그가 나한테 사과를 한 것이다.
  • 나는 당황했다.
  • “뭐?”
  • 내가 환청이라도 듣는 건가?
  • 그는 또다시 반복했다.
  • “미안해, 여보. 날 용서해 줘.”
  • 이번에는 사과하는 게 확실하다는 것을 들었다.
  • 그러나 난 그가 왜 사과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해로 인해서 날 때린 거로? 그건 오해가 아니긴 하지만… 아니면 나에게 바람 피운 일을 자백하려는 걸까?
  • 제발 자백하지 마. 자백하고 용서를 빌었는데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내 잘못이 되는 거잖아.
  • 그러나 내가 오버한 게 맞았다. 그가 바람을 피운 데 대한 해명은 이러했다.
  • “오늘 밤에 술자리가 있었는데 좀 많이 마셨어. 그대로 집에 돌아가면 당신이 술냄새가 난다고 할까 봐 란이더러 술도 깰 겸 산책 같이 해달라고 한 거야.”
  • 란이? 아, 그 불륜녀. 하마터면 그 여자의 이름이 이란인 것을 잊어버릴 뻔했다.
  • 난 ‘응’이라고 하고 대꾸하지 않았다.
  • 그는 내 생각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 “여보, 다시는 안 그럴게. 날 용서해 줘.”
  • 난 여전히 ‘응’이라고 했다. 다시 안 그러기는 개뿔. 다시 그런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그러나 난 이 말을 하지 않았다.
  •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여보, 앞으로 어디 가고 싶으면 나에게 전화해. 내가 같이 가줄게.”
  • 그 말은 그가 지금 나와 주동욱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으니 내가 그와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질척거리는 사이는 진작에 끝맺았어야 했다.
  • “앞으로 주동욱 씨와 단둘이 만나는 일은 없을 거야.”
  • 내 말을 들은 그는 활짝 웃었다.
  • “우리 여보 최고야.”
  • 말을 마친 그는 날 끌어안고 섹스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피해버렸다. 혐오스러운 것도 아니고 화가 난 것도 아니라 단순히 불편해서였다. 난 더 이상 그와 아무런 스킨십을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화를 내려고 하는 순간, 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 “여보, 나 아직 어지러우니까 설탕물 좀 타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