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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임신테스트기

  • 그는 바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긴장한 얼굴로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이 나는지 보는 듯했다.
  • “그래, 지금 가져올 테니까 기다려. 아주 빨라.”
  • 나는 그가 나가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려 빠른 속도로 서랍에서 테스트기를 꺼냈다. 그리고 화장실로 뛰어가서 문을 잠갔다.
  • 이 테스트기는 사둔 지 2년이나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게 될 줄이야?
  • 그나저나 유통기한이 지나지는 않았을까?
  • 소국진이 없는 틈을 타서 난 바로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리고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제발 아닐 거야.
  • 그러나 내 기도가 먹히지 않은 것인지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타난 것이다.
  • 난 털썩 주저앉았다.
  • 지금 문제는 임신을 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 머릿속이 어지러운데 전화벨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전화를 받아 보니 주동욱이었다. 난 더욱 짜증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 그러나 1초도 되지 않고 전화가 또 울렸다. 정말 끈질겼다.
  • 난 받지 않고 카카오톡을 보냈다.
  • [?]
  • 그러자 그가 바로 답장을 했다.
  • [괜찮아?]
  • 그리고 문자가 또 왔다.
  • [걔가 뭐라고 하지 않아? 내가 들어갈까?]
  • 난 화들짝 놀라며 바로 답장을 보냈다.
  • [안돼!]
  • 그러자 그는 한참 망설인 뒤에 다시 카카오톡을 보냈다.
  • [왜? 다 자고 나니까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하는 거야?]
  • 그는 내가 괜찮다는 것을 알고 또다시 야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 그러나 난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곧 죽게 생겼는데 이런 얘기나 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난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소국진이 돌아온 듯했다. 난 저이를 하고 임신테스트기를 숨겼다. 그리고 나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밖으로 걸어갔다.
  • 그는 설탕물을 내려놓고 날 부축했다.
  • “여보, 화장실에 가면서 왜 날 부르지 않았어? 어지럽다며? 넘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 난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이 아이를 낳기로 다짐했다. 혼자 키우면 되지.
  • 공원의 일이 있은 뒤로 소국진이 날 대하는 태도가 전과 많이 달라졌다.
  • 매일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 가끔씩 신경을 써서 뭔가를 하기도 했다. 촛불을 피운다든지, 장미꽃, 초콜릿을 선물로 준다든지. 매일 다른 방식으로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 예전이라면 난 좋아서 어쩔 줄 몰랐겠지만 지금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 결혼한 지 2년이나 되는데 그의 성격을 모르겠는가? 가질 수 없으니 애가 타는 게 아니겠는가?
  • 예전에는 내가 별 볼일 없는 아줌마라고 생각했을 텐데 주동욱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자 더럭 겁이 난 듯했다.
  • 나는 그의 다정함을 받아주면서 뒤로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에 대해 상담했다.
  • 들어보면 내가 나쁜 사람 같지만 소씨 가문은 일반 가문이 아니었다. 부자는 원래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만반의 준비가 없다면 난 소씨 가문을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 며칠 동안 소국진은 내 곁에서 맴돌았다. 난 이란이가 며칠이나 참을 수 있는지 세어 보았다.
  • 역시 일주일이 지나지 않자 그녀가 먼저 찾아왔다.
  • 초인종이 울릴 때부터 난 느낌이 왔다.
  • 소국진은 키를 가지고 다니기에 초인종을 누를 일도 없고 주동욱도 며칠 동안 보지 못했으니 갑자기 찾아올 리 없었다. 시어머니는 지난번의 겨자 물고기에 받은 충격 때문에 당분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 난 문을 열고 작은 틈으로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새하얀 다리에 타이트한 치마를 입고, 위에는 민소매 셔츠를 입은 그녀는 아주 요염했다.
  • 그녀는 팔짱을 끼고 입구에 선 채, 턱을 살짝 치켜들고 있었다. 아주 도도한 모습이었다.
  • 그녀는 곁눈질로 날 훑어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 말 그대로 날 곁눈질로 훑어본 것이었다. 첩 주제에 눈을 흘기면서 정실을 바라보는 꼴이라니. 순간 난 옷을 홀랑 벗기고 사진을 찍어 망신을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