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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밥을 얻어먹다

  • “형수님, 제가 밥 얻어먹으러 왔어요. 괜찮죠?”
  • 주동욱은 소국진의 형제라서가 아니라 친형제처럼 친한 친구이기에 나를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 말을 마친 그는 내 표정을 살피지도 않고 내 손에서 밥 그릇을 빼앗아 가 죽을 담았다. 그리고 이 죽이 내 것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릇에 입을 대고 후루룩 마셨다.
  • 소국진은 그를 힐끗 보더니 느릿하게 말했다.
  • “그건 네 형수님 거야.”
  • “그래? 그럼 형수님, 돌려드릴게요.”
  • 말을 마친 그는 나에게 그릇을 돌려주었다. 안에는 아직도 죽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더러 소국진 앞에서 먹으라는 건가?
  • 난 받지 않았다. 그러자 소국진의 표정도 부자연스러워졌다.
  • “됐어, 너 먹어.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괜한 말이 나오겠어.”
  • 왠지 질투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 주동욱은 더욱 활짝 웃으며 말했다.
  • “형 말이 맞아.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형수님도 조심하세요. 형이 다른 여자의 것을 먹으면 바람났다는 거예요.”
  • 주동욱은 말을 하며 나에게 눈을 껌벅해 보였다. ‘내 마음 알지?’라는 표정이었다.
  • 소국진은 멍한 얼굴로 신문을 뒤집던 손을 멈추었다. 표정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 그는 짐짓 목을 가다듬은 뒤, 화제를 돌려 주동욱에게 물어보았다.
  • “요즘 통 보이지 않더니 또 어디에 꽂힌 거야?”
  • “말도 마. 한 친구의 남자친구가 바람나서 같이 현장 잡으러 갔었어.”
  • 주동욱이 말했다.
  • 그리고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 “여자들이 그 연놈을 홀딱 벗겨서 끌고 다녔는데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알아? 형이 봤어야 했는데.”
  • “흠흠.”
  • 소국진은 기침을 두 번 하고 목이 가렵다는 핑계로 물 마시러 일어났다.
  • 주동욱은 그를 쉽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지 계속해서 말했다.
  • “형수님, 앞으로 현장을 잡을 때 꼭 기자를 데려가요. 형이 기자를 제일 무서워하거든요.”
  • 그는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놀란 것인지 주동욱의 말이 끝나자마자 물컵을 떨어뜨렸다. 뒷모습만 봐도 당황한 것이 보였다.
  • “나, 나 옷 갈아입고 있을게. 먼, 먼저 얘기 나눠.”
  • 그는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 주동욱은 두 손을 머리 뒤에 올려놓고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 나도 속이 후련했다.
  • 그에게 감격의 표정을 보내니 그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감싸고 나를 품에 끌어당겼다. 난 휘청거리며 그의 다리 위에 앉았다.
  • 나는 그의 다리에 닿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당황하여 그를 떠밀었다.
  • “이러지 마. 남편이 안에 있다고.”
  • 그는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날 바로 풀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내 얼굴을 힘껏 빨아들였다.
  • “반항할 힘이 있다 이거야? 어젯밤에 내가 별로 힘을 쓰지 못했나 보네.”
  • 난… 그의 말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 소국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주동욱은 다시 제자리에 앉은 채, 웃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 “다 됐어? 그럼 가자.”
  • 소국진은 급히 떠나지 않고 내 앞에 서서 목을 살짝 뒤로 젖혔다. 나더러 타이를 매달라고 하는 제스쳐였다.
  • 난 이미 오랫동안 그의 타이를 매주지 않았다. 소국진이 내가 맨 게 예쁘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 타이를 매주자 그는 어이없게도 내 이마에 키스를 남겼다. 그리고 느끼하게 날 ‘여보’라고 불렀다.
  • “기다려, 저녁에 밥 같이 먹자.”
  • 난 싸늘하게 ‘응’이라고 하고 곁눈질로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주동욱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히죽거리고 있었다.
  • 그러나 그는 몸을 돌리자마자 휴지통에 뭔가를 버렸다. 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난 소국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 “어? 내 티켓 어디 갔지? 분명 챙겼는데.”
  • “잊어버렸겠지. 하나 사오라고 할게.”
  • 주동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 나는 휴지통에서 그가 버린 종이뭉치를 꺼내 들었다. 펼쳐보니 역시나 소국진의 항공사 티켓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 주동욱에게 문자를 보냈다.
  • [유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