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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악인

  • “지금 바로 갈게요.”
  • 화를 내지 말자, 화를 내지 말자. 곧 소국진과 이 여자는 내 과거로 될 것이다.
  •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서 꼭 말을 해야 알아듣지. 우리 아들이 네 어디를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어.”
  • 그러게 말이야. 그 인간은 내가 왜 마음에 들었을까? 내가 멍청해서? 난 남편이 바람난 줄도 모르는 멍청이니까.
  • 사실 난 음식이 다 차려져 있으니 굳이 내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 그러나 그녀가 또 화를 낼까 두려워 주방으로 들어가 야채를 하나 더 볶고 국을 끓였다.
  • 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욕을 먹고 말았다.
  • “너 지금 뭘 한 거야?”
  • 난 그녀가 눈이 멀었을까 걱정되어 말했다.
  • “반찬 두 가지에 국 하나요.”
  • 주동욱이 마구 헤집어놓은 물고기 요리를 보자 난 왠지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 아니나 다를까, 시어머니는 화를 냈다.
  • “내가 눈이 먼 거로 보여? 이게 뭔지 모를까 그래? 무슨 음식을 한 거냐고 묻잖아?”
  • 그럼 좀 잘 묻던가.
  • “그게, 훙쇼물고기랑 브로콜리, 그리고 계란국이요!”
  • 그제야 그녀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 “내 아들이 밖에서 회사 일하랴, 가정에 신경 쓰랴, 그렇게 힘들게 사는데 겨우 이런 걸 먹인다는 거야?”
  • 네, 그럼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세상 큰 일도 하고 밖에 애인도 숨겨두느라 말이에요.
  • 난 식탁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배가 고파 뱃가죽이 등에 붙었지만 난 감히 젓가락을 놀리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혼을 내다 지쳐 밥을 먹기를 바랐다.
  •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 “앞으로 반찬은 적어도 네 가지를 해야지. 닭고기, 오리고기, 물고기 다 있어야 하고 국은 오래 끓인 국으로 말이야. 그래야 영양가가 따라가는 거야. 넌 일을 안 하니 우리 아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겠어?”
  • 매일마다 애인과 놀아나니 힘들기는 할 것 같았다.
  • “네, 오늘밤에 소꼬리 곰탕을 해놓을게요.”
  • 그녀는 날 흘겨보며 말했다.
  • “남사스럽게.”
  • 난 남사스러울뿐만 아니라 바람까지 피웠다.
  • “어머님, 먼저 드세요. 배고프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 난 젓가락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화가 났지만 억지로 미소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 소국진과 이혼하기 전까지는 난 당분간 현모양처인 척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다른 여자들처럼 이혼하고 갈 데도 없게 처량한 신세로 되고 싶지 않았다.
  • 소국진이 나에게 위자료나 생활비를 줄 리도 없었다.
  • 그녀는 잔소리를 더 늘어놓았지만 내가 대꾸하지 않자 결국 젓가락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 훙쇼물고기를 먹어본 그녀는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가시가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꿀꺽 삼켰다.
  • 그리고 입을 틀어막고 물을 찾는 게 아닌가? 난 물고기를 보고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멀쩡하게 생겼는데 그렇게 맛이 없다는 말인가?
  • 젓가락으로 소스를 찍어 입에 넣은 나는 웃음이 나왔다.
  • 그녀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씩씩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 “뭘 넣은 거야?”
  • 난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 “겨자요.”
  • 그녀는 얼굴이 지지벌게졌다.
  • “훙쇼물고기에 겨자를 넣었다고?”
  •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 “방금 전까지 스시를 만들려고 했는데 훙쇼로 되었어요.”
  • 그래, 그거야. 난 이것도 주동욱이 한 짓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그녀가 화날수록 난 기쁘니까.
  • 그녀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음식을 더 먹지 않았다. 브로콜리 두어 점을 먹은 뒤, 다른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고 집으로 갔다. 내가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고 할까 두려운 얼굴이었다.
  • 역시 악인은 악으로 다스려야 한다니까.
  • 이런 기분은 너무 좋았다.
  • 시어머니가 간 뒤, 주동욱이 문자를 보내왔다.
  • [제 요리 실력은 어땠습니까? 마마?]
  • 난 실소를 터뜨리고 그에게 한 마디 했다.
  • [괜찮았어. 겨자를 많이 넣어서 물고기 맛이 잘 안 느껴진 걸 빼면.]
  • 그는 곧 다음에는 조심하겠다고 답장이 왔다. 그리고 웃는 이모티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