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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경중에 일어난 큰일

  • 수일 간의 치료를 거쳐 효진은 드디어 편안한 며칠을 보냈다.
  • 해월이의 말에 따르면 선우 댁이 한바탕 혼이 났고 저택도 정돈하였다고 한다. 이화원에서 청소하던 계집종이 쫓겨난 후 집사는 또다시 거간꾼한테서 계집종 셋을 사다가 이화원으로 데려왔다.
  • 집사는 허례를 올리고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 “셋째 아씨, 이 셋은 모두 저택 밖에서 사 온 계집종들이라 규율을 배운 적이 없사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셋째 아씨께서 이들에게 저택의 규율을 가르쳐주시겠사옵니까?”
  • 집사의 말은 바로 이 셋 계집종이 마님이 보내온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 효진은 계집종들을 쳐다보았다. 그중 두 계집종은 확실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거친 베옷 차림에 청색의 보자기를 메고 있는 소녀는 전생에 만난 적이 있었다.
  • 소녀의 이름은 선유였는데 집사 형님의 여식이었다. 전생에 그녀가 시집을 간 후 저택에 들어왔다.
  • 효진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세 사람을 훑어보며 물었다.
  • “다들 이름이 무엇이냐?”
  • “소인 이화라 하옵니다.”
  • “소인 선유라 하옵니다.”
  • “소인은 청아라 하옵니다.”
  • 세 사람은 앞으로 다가가 예를 갖춰 인사하였다.
  • “소인 셋째 아씨께 인사드리옵니다!”
  • 효진은 그녀들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선유를 가리켰다.
  • “너!”
  • 집사는 두 눈을 번쩍이더니 효진이 선유를 남기지 않으려는 줄 알고 이렇게 말했다.
  • “셋째 아씨, 선유는 국공 나으리께서 직접 보신 계집종이옵니다.”
  • 그러자 효진은 그를 덤덤하게 쳐다보았다.
  • “아버지께서 직접 보신 거면 앞으로 방에서 시중을 들도록 하거라.”
  • 집사는 의기양양해 하는 얼굴로 돌아서서 선유에게 당부하는 척하였다.
  • “셋째 아씨께서 널 중히 여기시니 앞으로는 셋째 아씨를 잘 돌봐야 하느니라. 그러면 국공 나으리와 마님께서 상을 내려줄 것이니라.”
  • 그러자 선유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알겠사옵니다!”
  • 집사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효진에게 인사도 올리지 않고 바로 휙 돌아서서 훌쩍 가버렸다.
  • 효진은 의자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셋을 쳐다보았다.
  • “이곳에 규율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의 말을 듣는 것이니라. 내가 너희들에게 시키는 것만 하면 되고 시키지 않은 건 해서는 아니 된다.”
  • “알겠사옵니다!”
  • 세 사람이 대답했다.
  • “나가보거라. 이따가 해월이가 앞으로 너희들이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줄 것이다!”
  • 효진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셋은 허리를 굽힌 채 물러갔다.
  • 해월은 문을 닫고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 “아씨, 국공 나으리께서 아씨를 신경 쓰시는 게 틀림없사옵니다.”
  • 효진은 흥분된 해월이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 “진정 날 신경 쓰셨다면 고작 몇 마디로 선우 댁을 혼내시진 않았을 것이니라.”
  • 효진에게 마음이 움직인 건 사실이지만 혈육의 정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다.
  • 그녀는 자신의 원한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어머니가 난산으로 돌아가신 후 태어난 지 3개월 남짓한 그녀를 마을로 보내 손씨 아주머니에게 맡겨졌다는 걸 이미 전생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은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것이었다. 몇 년 동안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조정에서 누군가가 그가 친여식을 돌보지 않는다고 탄핵하자 하는 수 없이 그녀가 13살이 되던 해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 “아 참.”
  • 효진은 고개를 들고 해월이에게 물었다.
  • “해월이 넌 요즘 밖에 나가서 남부 옥 지휘관이신 소씨 할아범이 경중에 계시는지 한번 알아보거라.”
  • “소씨 할아범 말이옵니까?”
  • 해월은 화들짝 놀라 하였다.
  • “아씨, 소씨 할아범은 왜 갑자기 궁금해하시는 것이옵니까?”
  • 남부 옥 지휘관 소지석은 섭정왕이 직접 등용한 사람이다. 남부 옥이 지어진 후 그는 섭정왕과 용 태후의 명을 받들었다. 하지만 이 소씨 할아범은 잔인하고 포악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소문에 따르면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걸 가장 즐겨 하는데 남부 옥에 들어가면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 남부 옥의 부지휘관 봉태우도 소지석 할아범의 방식을 전수 받아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걸 즐겨 한다고 한다. 때문에 혼담이 오갈 나이가 되고 조정에서 권세가 대단한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혼인하려는 대갓집 아가씨가 없었다.
  • 현재 남부 옥의 대부분 일들은 모두 봉태우가 주로 맡아하고 있다. 소씨 할아범은 경중에 있는 날이 얼마 없었고 있다고 해도 남부 옥에는 별로 가지 않았다.
  • “넌 그냥 가서 알아보기만 하면 되니라.”
  • 효진이 말했다.
  • “알겠사옵니다!”
  • 그러자 해월이가 대답했다.
  • 며칠 후, 그녀의 다친 몸도 많이 회복되었다. 정원에 있는 세 계집종도 성실히 맡은 바 일을 해냈고 해월이의 말도 잘 들었다. 그리고 선유도 매우 공손하고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다.
  • 아마도 장 어멈 사건이 있은 후 저택에서의 효진의 지위가 많이 안정된 듯싶다.
  • 5월 초나흘이 되던 날, 경중에 큰일이 일어났다.
  • 평강 공주의 아들 광희 세자가 사라졌는데 누군가가 납치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 평강 공주 천우는 황제의 어매(御妹)이자 민간 누이였다. 평강 공주로 봉해진 후 감찰아문 총영사인 한 대감과 혼인한지 16년이 되었고 5년 전에 힘들게 아들을 낳았다. 광희 세자가 사라지는 바람에 한 대감과 평강 공주는 아들을 찾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어 감찰아문의 모든 일은 봉국공이 맡아하게 되었다.
  • 쉴 새도 없이 바삐 돌아다니는 봉국공은 연속 이삼일 저택에도 돌아가지 못했다.
  • 효진은 전생의 같은 해 5월 초여드렛날을 떠올렸다. 청산 아래에서 광희 세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칼에 38번이나 찍힌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광희 세자의 시신을 본 평강 공주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 태어나자마자 한문석의 손에 죽은 자신의 아이가 생각난 효진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졌다.
  • 요 몇 년래 평강 공주와 한 대감은 탐관을 잡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실질적인 일을 많이 해왔다. 평강 공주가 계속 회임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탐관을 잡다가 심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몸을 요양한 후 어렵게 광희 세자를 가졌다.
  • 광희 세자를 납치해간 자들은 청산의 산적들이었다. 선우지석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 그들을 섬멸하고 엄격히 심문하고 나서야 산적들은 이미 죽은 탐관인 정동현의 아들한테서 어마어마한 엽전을 받고 광희 세자를 납치해 한 대감에게 복수를 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 이 일로 선우지석도 공을 인정 받아 더 높은 관직에 올랐다.
  • 효진은 이 사건을 애써 떠올렸다. 시신은 5월 초여드렛날 아침에 발견되었고 검시관은 광희 세자가 승하한지 세 세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 말인즉슨 5월 초이렛날에 변을 당했다는 뜻이었다.
  • 청산의 산적들이 광희 세자를 데리고 간 것까지는 기억해 냈지만 정확히 어디에 가두었는지는 효진도 알지 못했다.
  • ‘청산에 가두었을까?’
  • 청산은 산이 험하고 가팔라서 방어하기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청산의 산적들이 오랜 세월 동안 죄를 짓고 다녀도 나라에서는 그들을 섬멸하지 못했고 선우지석이 청산의 산적들을 전부 섬멸했다는 이유로 황제가 직접 작위를 내렸던 것이다. 청산의 지형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보니 그들의 소굴까지 전부 없애려면 지혜와 용기를 겸비해야만 했다.
  • 그녀는 청산의 지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산적들이 섬멸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그녀의 시어머니는 부처님을 공양하고 강녕 제후 저택을 지키기 위하여 산중에 작은 절간 하나를 짓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를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 사실은 그녀가 저택에 있는 걸 아니꼽게 여겨 딴 데로 보내려는 속셈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선우예슬이 둘째 아이를 회임하고 있어서 혹시라도 그녀가 선우예슬의 아이를 해칠까 봐 일부러 멀리 보내버린 것이었다.
  • “아씨.”
  • 그때 해월이 다가와 멍하니 생각에 잠긴 효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 “소인이 가서 알아봤는데 소지석 할아범이 요즘 계속 경중에 계시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지난달에 현북으로 가셨다고 하옵니다.”
  • “그래, 알았다.”
  • 효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 “아씨, 소지석 할아범은 왜 알아보라고 하신 것이옵니까?”
  • 해월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또 묻자 효진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별거 아니다. 예전에 봉장군이 날 위해 궁에 가서 소복단(销服丹)을 가져왔으니 나도 남부 옥에 관한 일을 좀 알아보려고 그러는 것이니라.”
  • 해월은 순간 어리둥절해 하였다. 이것이 소지석 할아범과 대체 무슨 연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 “아 참, 아씨, 저택의 사람이 그러는데 세자 저하를 찾은 사람한테 폐하께서 황금 5천 냥을 하사하신다고 하옵니다. 황방(皇榜)에도 이미 붙어있사옵니다.”
  • 해월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 “황금 5천 냥이면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