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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식물인간을 살려내다

  • 병상 가까이에 다가간 임찬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침대 위에는 절세미인의 여자가 누워 있었는데 외모로 놓고 봤을 때 절대 허윤하에게 꿀리지 않았다. 하지만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살이 빠진 모습이 보기에 엄청 비참해 보일 정도였다. 침대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돈 임찬이 갑작스레 고개를 들었다.
  • “남 선생님, 저 사방명이라는 자를 데려와 남 아가씨를 치료하게 하는 데 얼마 쓰셨죠?”
  • “저는 돈을 보고 남 선생님의 일을 도와준 게 아닙니다!”
  • 사방명이 얼른 해명했다.
  • “저랑 남 선생님은 관계가 막역하여, 그의 일이라면 저의 일처럼 나설 정도라고요!”
  • 침묵을 지키는 남패천의 눈 속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사방명이 이곳에 반 년이나 머물면서 그의 딸을 지킨 것에 대해 그는 확실히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임찬은 냉소를 흘릴 뿐이었다.
  • “일 푼도 받지 않았다고요? 사방명 씨, 당신은 정말 죽일 놈이네요!”
  • “너,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 사방명이 극대노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남패천도 약간 불만인 듯 미간을 찌푸렸다. 임찬의 말이 무슨 듯인지 궁금한 듯했다. 임찬은 사방명을 무시한 채 하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
  • “하 어르신, 사실 어르신께서 침을 놓기로 한 결정은 잘 하신 겁니다!”
  • “네?”
  • 하 어르신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 “하지만 그렇다면 왜 남 아가씨께서는 깨어나시지 않으신 걸까요? 그것도 오히려 더 병세가 악화되기만 하고……”
  •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녀의 몸에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죠.”
  • 임찬이 담담한 웃음을 지으며 사방명을 바라봤다.
  • “그 누군가가 그녀의 몸 안에 은침을 심어 놓아 그녀의 혈자리를 모두 봉하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또 다시 침을 새로 놓게 되면 그녀의 체내에 있던 생기가 빠르게 흩어지게 되면서 심한 경우 그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하겠죠!”
  • 그 순간, 사방명의 낯빛이 갑자기 하얗게 질리며 연신 식은땀을 흘려댔다. 그리고 남패천의 얼굴색 또한 바뀌더니 사방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 반 년 동안 오직 사방명만이 그의 딸과 제일 많은 접촉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군가’가 누구일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어이, 임 씨! 감히 무고한 사람한테 죄를 뒤집어 씌워요?”
  • 사방명이 억지로 침착한 척했다.
  • “모든 말에는 근거라는 게 뒷받침이 돼야 해요. 지난 반 년 동안 내가 여기에 있었다고 그 수작을 부린 게 내가 되기라도 한 단 말이에요?”
  • “급해 할 필요 없어요. 모든 게 곧 밝혀질 테니까.”
  • 임찬은 어느새 남 아가씨의 침대 머리맡으로 걸어갔다. 그는 손을 뻗어 남 아가씨의 이마를 고정시키더니 두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 몇 곳에 있는 혈자리를 신속하게 눌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왼 손으로 은침 3개를 집어 들더니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정확하게 남 아가씨의 얼굴에 있는 세 곳의 혈자리에 놨다.
  • 은침 3개가 내려지자 남 아가씨의 이마에서 마치 뭔가 빠져 나오려는 듯 갑자기 볼록하게 한 곳이 튀어나왔다. 임찬은 여전히 행동을 멈추지 않은 채 손가락을 놀려 은침을 연신 남 아가씨의 몸 곳곳의 혈자리에 놓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총 18개의 은침을 놓게 되었고 전체 과정이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18개의 은침이 정확한 혈자리에 안착하였다.
  • 그 순간, 사방명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도 침구 고수였던 지라 사방명은 임찬의 수법이 엄청 뛰어나 자신보다 훨씬 더 웃도는 실력의 소유자였음을 자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뜻밖에도 남 아가씨의 이마에 혈점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남패천이 얼른 앞으로 다가서자 그 혈점에서 바늘 끝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임찬은 두 손을 뻗어 바늘의 끝을 잡더니 살며시 뽑아냈다. 그것은 절반 길이의 은침이었는데 길이가 3센티밖에 안 되었다. 남패천은 얼굴색이 확 변하며 다급히 물었다.
  • “이게…… 이게 제 딸의 혈자리를 막고 있었다던 그 은침인가요?”
  • “그렇습니다.”
  • 남패천이 고개를 홱 돌려 사방명을 노려보자 그가 급변한 낯빛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 “제,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은침에 제 이름이 적혀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 “급할 거 없죠, 뭐. 잠시후면 다 밝혀질 거니까!”
  • 임찬이 침착하게 말했다.
  • 사방명은 두려운 표정을 하였으나 여전히 승복을 할 수 없는지 말을 이었다.
  • “저, 저한테 죄를 뒤집어 씌울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 그를 무시한 임찬은 조화신침을 다시 한 번 시전하며 남 아가씨의 몸 36곳에 달하는 혈자리에 침을 연신 놓았다. 마지막 침을 놓으며 임찬은 남 아가씨의 이마를 탁 때리더니 가볍게 말했다.
  • “이제 깨어나세요!”
  • 사람들의 주시 하에 남 아가씨의 눈꺼풀이 움직이더니 1년여를 잠들었던 그녀가 드디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속에서 소란이 잠깐 일었다. 남패천은 얼른 침대로 달려갔다. 아무리 강한 그였어도 지금 이 시각 뜨거운 눈물이 고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딸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의 유일한 의탁과 희망이기도 했다. 그런 딸이 1년을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게 됐으니 남패천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빙아, 드디어…… 드디어 깨어났구나……”
  • 남패천의 목소리가 잔뜩 메었다. 남 아가씨는 망연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 “아빠……”
  • 남패천의 눈물이 끝내 흘러 넘쳤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단어를 얼마나 많이 꿈꿨던가?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녀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부름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임찬의 갑작스런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 “사방명, 어디서 감히!”
  • 외침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사방명이 마침 오른 손을 휘두르며 3개의 은침을 남 아가씨에게 날렸다. 그러자 임찬은 옆에 있던 침대 시트를 펼쳐 들며 그 3개의 은침을 동시에 막아냈다. 순간 얼굴이 싸늘해진 남패천이 손짓을 하자 그의 옆에 있던 남자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방명과 엉켰다. 비록 사방명도 조금 실력은 있었으나 결국에는 남자를 당해내지 못하고 얼마 안 가 남자에 의해 두 손이 부러진 채 남패천의 앞으로 던져졌다. 남패천의 얼굴은 차가움의 극치를 달렸다. 아까 그 3개의 은침은 정확히 자신의 딸을 향해 날아갔었다. 만약 임찬이 제때에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딸의 목숨이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
  • “사방명, 너 지금 뭣 하는 게야!”
  • 남패천이 냉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러나 사방명은 거친 숨만 내쉴 뿐 이를 깨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남 선생님, 아니면 선생님 따님께 한 번 물어보시죠.”
  • 임찬이 가볍게 말했다.
  • “따님께서 깨어나시자마자 저 사람이 죽이려고 한 걸로 봐서는, 너무 뻔한 일 아닌가요?”
  • 남패천이 얼른 딸을 바라보자 남 아가씨는 아직 허약하지만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 “아빠, 저를 차로 들이, 들이박은 건 사천린이에요……”
  • “뭐라고?”
  • 남패천이 폭노하였다. 사천린이 바로 사방명의 아들이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모든 게 선명해졌다. 역시나 사방명이 직접 와서 남 아가씨를 돌봐주겠다 한 것은 그녀를 살리려 한 것이 아닌 오히려 그녀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진실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당연히 사방명은 남 아가씨를 죽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남 아가씨가 죽게 되면 여기에 남아서 그녀를 돌봐주었던 그 역시도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래서 그는 이번 하 어르신이 벌린 일을 빌려 몰래 남 아가씨의 몸에 수작을 부렸다. 그래야만 하 어르신이 침을 놓게 됐을 때 그가 남 아가씨의 체내에 숨겨놓았던 은침을 건드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 아가씨는 목숨을 잃을 게 분명하였다. 남패천이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말했다.
  • “그러니까 도대체 누가 내 딸을 쳤는지 아무리 찾아 봐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지! 역시 사씨 가문인 너희가 중간에서 손을 썼던 거야. 사방명, 넌 참으로 독한 놈이네!”
  • 사방명이 이를 악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남패천, 일이 까발려졌으니 나도 인정해. 하지만 모든 일은 다 내가 혼자……”
  • “흥, 난 한 놈에게만 책임을 묻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
  • 남패천이 냉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네가 혼자 꾸며낸 일이라 해도 반드시 사씨 가문 전체가 같이 목숨을 바쳐야 할 거야!”
  • 말을 마친 남패천이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 “모든 사씨 가문의 직계 성원을 다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광양시에서 내쫓아 영원히 광양시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라!”
  • “네!”
  • 옆에 있던 남자가 허리 굽혀 대답하더니 몸을 돌려 떠나갔다. 임찬은 그 옆에서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나 남패천이라는 작자의 위엄이 대단하였다. 단 한 마디로 하나의 큰 가문의 생사존망을 결정해버리다니!
  • “임 선생님, 제 인사를 받으세요.”
  • 남패천은 몸을 돌려 아예 임찬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제 딸아이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만약 임 선생님께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이 남패천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광양시에서 제가 못해내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