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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그녀가 다른 사람과 호텔에 갔다고?

  • 방에 남은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으며 허건공이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일어나 임찬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 “임찬, 이제 만족하지! 우리 가족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으니까 속이 시원하지!”
  • 허건공의 악에 받친 말에 임찬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방혜는 화가 나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 “됐어, 저 사람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뭐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었으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겠지! 주방 가서 밥이나 해!”
  • 임찬은 이를 악물고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임찬이 재빨리 달려갔지만 처제 허동설이었으며 그녀는 허윤하의 친동생이지만 외모는 허윤하보다 훨씬 못했고 그렇지 않고는 황양 같은 극히 평범한 사람한테 시집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 허동설마저도 임찬을 하찮게 여겼으며 이 세상 남자가 전부 죽었다고 해도 그녀는 임찬에게 추호의 관심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 임찬은 주방을 정리하고 나서 반찬을 식탁에 올려놓았지만 허윤하는 돌아오지 않았다.
  • “임찬, 우리 언니 방에서 제 핸드폰을 가져다줘요!”
  • 허동설이 갑자기 말했고 그 말투는 하인을 명령하는 듯했지만 임찬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으며 책상에는 핸드폰 두 개가 놓여 있었고 하나는 허윤하의 핸드폰이고 다른 하나는 허동설의 것이었으며 보아하니 허윤하는 나갈 때 핸드폰도 챙겨가지 않은 듯했다. 임찬이 허동설의 핸드폰을 챙겨 나가려고 하는 순간, 허윤하의 핸드폰 화면이 켜졌고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 “자기야, 드디어 생각이 바뀌었나 보네? 다행이다, 오후 3시에 JW 호텔 2018번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이 순간, 임찬은 머리에 얼음 물을 부은 듯했다.
  • 허윤하가 결국엔 타협한 건가? 그…… 그녀가 다른 사람과 호텔에 간다고!?
  • 그 자리에 꽤 오랫동안 멍하니 서있던 임찬은 자신의 심장이 찢기는 기분이었으며 자신이 제일 사랑하고 믿는 여자가 자신을 배신하다니, 머리가 어지러웠고 한참 지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온 임찬은 핸드폰을 챙겨서 방을 나갔고 자신이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은 채 그의 머릿속에는 그 문자만이 맴돌았다. 오후 두 시쯤 되어서야 허윤하가 집에 들어왔고 임찬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으며 허윤하가 냉랭한 표정으로 임찬과 말도 섞지 않고 핸드폰과 가방을 챙겨 다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임찬이 입을 열어 물었다.
  • “어디 가?”
  •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당신 일이나 신경 써, 다른 사람에게 병신이라는 소리를 좀 그만 들을 수 없어!”
  • “너……”
  • 허윤하는 임찬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고 그는 그녀의 말에 화를 내고 싶었지만 간신히 분노를 억눌렀다. 어쩌면 허윤하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을 지도 모르며 이 혼인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기에 차라리 여기서 끝을 맺는 것도 나쁘지가 않았다!
  • 하지만 임찬은 여전히 포기를 할 수 없었기에 허윤하가 떠나간 자리를 쳐다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나섰으며 그녀는 정말 JW 호텔 2018번 방 앞에 도착했고 방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을 두드렸으며 이내 방문이 열렸고 뱃살이 두툼하고 추한 눈빛을 하고 있는 남자가 허윤하에게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었다.
  • 저 남자는 최일범이 아니잖아? 설마 허윤하에게 남자가 한 명뿐이 아닌 건가?
  • 임찬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으며 이 순간 달려가서 허윤하를 말리고 싶었지만 결국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의 마음은 이미 죽었지만 일처리를 극단적으로 마무리 짓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허건공 말대로 지금까지 자신이 허윤하의 짐이었는지도 모르기에 여기서 끝을 잘 맺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임찬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천천히 내려갔지만 고개를 들어 위에 있는 방을 쳐다보며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허윤하를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임찬은 2018번 방의 옆방을 잡았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벽에 귀를 대고 집중해서 들었으며 방음효과가 좋긴 했지만 조화결을 수련한 임찬의 청력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다. 벽에 귀를 대고 있던 임찬은 옆방에서 전해오는 신음소리에 두 사람이 방에서 말 못 할 짓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 섰고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 허윤하는 정말 임찬을 배신했다!
  • 임찬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으며 일말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마음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온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3년 동안 그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면서 사람들에게 병신이라고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했지만 임찬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허윤하의 머리카락조차 만져보지 못했지만 그는 그녀를 미친 듯이 사랑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진정한 마음이 그녀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모든 믿음과 모든 감정이 물거품이 되었고 마음 또한 순식간에 죽었으며 임찬은 자신이 어떻게 호텔을 빠져나온 것인지도 모른 채 늦은 밤까지 광양 강변에 앉아 있었고 그나마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었다.
  • 어쩌면 이제는 끝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싶었고 좋은 감정으로 끝을 맺고 싶었으며 집에 돌아와 보니 허윤하는 이미 집에 와있었고 허동설도 아직 집에 가지 않았다.
  • “그래도 집에 돌아올 줄은 아네,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밥 안 해?”
  • 방혜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지만 임찬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갔고 방 화장실에서는 샤워기 소리가 들렸고 허윤하가 샤워를 하고 있었으며 임찬은 침대 끝에 앉아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허윤하의 가방에 눈길이 갔고 그녀의 가방은 반쯤 열려 있었으며 안에 있는 물건이 살짝 튀어나와 있었고 임찬은 재빨리 그 물건을 꺼냈으며 그건 다름 아닌 박스가 뜯겨져 있는 콘돔이었다. 작은 박스 안에는 포장지가 뜯겨진 콘돔이 몇 개 있었으며 누군가가 써버린 것 같았고 임찬의 머리는 또다시 강렬하게 아파졌다.
  • 허윤하가 이런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니? 대…… 대체 나한테 미안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한 거야! 자신은 지금까지 그녀가 맑고 깨끗한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자신 몰래 더러운 짓을 이렇게 많이 하고 다녔다니?
  • 바로 이때, 문밖에 허동설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임찬은 급히 콘돔을 가방에 다시 넣었고 허동설은 방에 들어와 그 가방을 들고나갔으며 이 모습에 임찬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보아하니 허동설도 이 일을 알고 있고 허윤하를 도와 자신을 속이고 있는 듯했으며 임찬은 이 가족이 자신을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이때 화장실의 문이 열렸고 허윤하가 걸어 나왔으며 방안에 있던 임찬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말했다.
  • “당…… 당신 언제 왔어?”
  • 그녀의 물음에 임찬은 대답도 하지 않고 차가운 눈으로 허윤하를 쳐다보았으며 그 눈빛에 소름이 돋은 허윤하가 기분 나쁜 듯 말했다.
  • “뭐 하는 거야?”
  • 사실 방금 전 콘돔을 보았을 때까지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지금 허윤하의 얼굴을 보자 임찬의 마음은 많이 평온해졌으며 어쩌면 이 여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녀에게 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임찬은 오랫동안 주춤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윤하야…… 우리 이혼하자!”
  • 허윤하는 머리를 말리다가 임찬의 말에 멈칫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떨어트렸으며 고개를 돌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임찬을 바라보았다.
  • “당…… 당신 뭐라고 한 거야?”
  • “우리 이혼하자……”
  • 임찬의 조심스러운 말에 허윤하는 분노에 가득 차서 임찬을 쳐다보았다.
  • “당…… 당신 다시 한번 말해봐!”
  • “우리 이혼하자고! 이러고 있는 게 나나 당신한테 다 안 좋은 거잖아, 당신은…… 당신은 더욱 좋은 사람을……”
  • 임찬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자신 마음속의 분노를 있는 대로 토로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고 부부의 인연이 없다면 이렇게 끝내는 것이 나은 듯했으며 그래도 허씨 가문에서는 자신이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2천만 원을 주었고 덕분에 그는 임희를 살릴 수 있었다.
  • 허윤하는 임찬을 가리키며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야! 임찬, 잘 들어, 이혼을 한다고 해도 내가 당신한테 먼저 말할 거야, 당신은 나한테 그 두 글자를 말할 자격이 없어!”
  • 허윤하는 울면서 뛰쳐나갔고 임찬은 침대에 주저앉았으며 자신도 너무 힘들었지만 감정 문제는 끌면 끌수록 힘들어지기에 빨리 해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허윤하의 부모님은 들어와서 그를 나무라지 않았으며 그들은 임찬과 허윤하가 이혼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