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찬은 임희를 안고 근처에 있던 성원대약국으로 내달렸다. 그곳은 광양시에서 제일 큰 약국 체인점으로서 사장은 진성원이라는 자였는데 광양시 의료 업계의 거물이었다. 허윤하의 허씨 가문 대부분의 업무가 바로 이 성원그룹과 손을 잡고 이루어지고 있어 성원그룹이 허씨 가문의 돈줄을 꽉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원대약국은 그 체인점마다 의술이 뛰어난 의사들이 진료를 봐주고 있었다. 임찬이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안고 약국에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굳어 섰다.
“손님, 이 환자분 같은 경우 저희 약국에서 치료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세요!”
한 젊은 점원이 임찬을 막아서며 말했다.
“저희 약국에는 병원의 그런 의료기기가 없어서 응급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요!”
“필요없습니다!”
임찬이 머리를 쓸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은침을 사러 온 거니까 한 세트 주세요!”
“은침이요?”
젊은 점원은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필경 그걸 찾는 손님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은침을 사서 뭐하시게요?”
그때 흰 수염을 기른 노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젊은 점원은 말을 한 사람이 흰 수염의 노자인 것을 발견하자 얼른 예를 갖춰 인사했다.
“하 어르신.”
그 흰 수염을 기른 노자는 이름이 하금염이었는데 성원대약국에서 초청하여 진료를 봐주고 있는 신의였다. 그 노자의 의술은 광양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는데 성원대약국이 이정도로 명망이 높을 수 있었던 것도 하 어르신이 약국을 지키고 있는 것과 큰 관계가 있었다. 임찬은 그런 그의 물음에 대꾸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요구를 말했다.
“은침 한 세트 주세요!”
젊은 점원은 임찬의 태도에 화가 난 듯 짜증스레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 어르신께서 묻잖아요. 못 들었어요?”
“은침 한 세트 달라고요!”
임찬이 갑작스레 큰 소리로 외쳤다.
“갑자기 왜 소리치고 그러세요!”
젊은 점원도 짜증내며 되받아 쳤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래요? 여기서 일을 치실 거면… …”
그때 하 어르신이 손을 내젓자 젊은 점원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임찬의 품에 안긴 임희를 한 번 보더니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이보게, 젊은이. 그 아인 이미 숨을 거뒀으니 고이 묻어주는 게 좋을 것 같네만.”
“아직 안 죽었습니다!”
임찬이 고함을 질렀다.
“하 어르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에요?”
젊은 점원이 또다시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고 하 어르신은 그런 점원을 말렸다. 그는 임찬이 지금 극심한 비통에 빠졌음을 알기에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이해했다.
“젋은이, 이 늙은이도 어언 의술을 행한지 40여 년이 흘러 어느 정도 안광은 있다네. 그 여자 아인 확실히 더 이상 생기가 보이지 않아…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직 안 죽었습니다!”
임찬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은침을 주세요! 은침이 있냐고요?”
하 어르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은침은 가져다 뭐하게?”
“동생을 살릴 거예요!”
임찬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살리겠다고?”
하 어르신은 임찬을 쳐다보며 눈 앞의 젊은이가 미친 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절대로 살아날 수가 없다. 그 아무리 의술이 하늘을 뚫은 자라 하더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임찬의 두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으며 엄청 침착해 보였다. 하 어르신은 그 점에서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약국에는 은침이 없습니다만… …”
하 어르신의 작은 목소리에 임찬은 곧 몸을 돌려 약국을 떠나려 했다. 그러자 하 어르신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급 말을 건네왔다.
“하지만 저한텐 은침이 있으니 그걸 빌려주도록 하죠… …”
임찬은 잠깐 멈춰 서서 하 어르신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가서 내 은침을 꺼내와. 그리고 뒤쪽에 있는 방도 하나 비워두고.”
하 어르신이 지시를 하자 젊은 점원이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하 어르신, 저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책임질 게.”
하 어르신이 담담한 말투로 대답하자 젊은 점원은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하고 안쪽으로 달려가며 요구한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임찬은 하 어르신의 동반 하에 임희를 안고 뒤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병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임희를 침대에 내려놓자 하 어르신이 은침을 꺼내 놓았다. 그러자 젋은 점원이 싸늘한 표정으로 임찬에게 말을 해왔다.
“저 은침은 하 어르신께서 직접 사용하시는 은침이에요. 긴 세월 동안 저 은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렸는지 셀 수도 없을 걸요? 그러니 빌려주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요! 감히 저 은침으로 지금 죽은 사람한테 사용하려고 하다니, 이건 그야말로 하 어르신에 대한 모독이라고요!”
임찬은 그 은침을 만지며 어쩐지 말 못할 익숙함을 느껴 이내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젊은 점원은 여전히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흥, 괜한 짓 하긴.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 했거든요?”
“됐다. 넌 나가보거라!”
하 어르신이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하지만… …”
멈칫한 젊은 점원은 결국 투덜투덜 거리며 방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하 어르신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헛수고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임찬의 슬픔이라도 조금 덜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다행일 것 같았다. 하 어르신은 의술을 행하면서 그 착한 심성으로 광양시에서 항상 좋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낯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동정심을 갖고 남을 대하는 것, 그것이 하 어르신이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주요원인이었다. 임찬은 그런 하 어르신을 흘끗 바라본 뒤 살며시 말했다.
“그러면 이 혈자리 두 곳을 좀 눌러주세요.”
임찬이 가리킨 건 백회혈과 용천혈이었는데 그 혈자리는 정확히 머리 정수리와 발바닥에 위치하여 있었다. 백회혈은 백 개의 맥이 모인 혈로써 그 맥이 사람의 전신으로 뻗어나가고 머리는 양기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또한 백 개의 맥이 모이는 종착점으로서 백회혈은 각 경맥의 기가 모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백회혈의 혈성은 양에 속하지만 양중우음으로 음양의 맥락을 통달시켜 주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혈자리이다.
용천혈은 발바닥에 위치하여 있으며 족소음신경이 시작하는 혈로서 경수가 이곳에서 밖으로 흘러 넘쳐 몸의 표면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하 어르신은 약간의 의혹이 들었지만 그래도 임찬의 요구대로 그 두 혈자리를 짚었다. 그러자 임찬은 옆에 놓인 은침을 손에 잡더니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동시에 3개의 은침을 임희의 얼굴에 놓았다. 하 어르신은 그의 행동에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임맥이 내린 3개의 은침은 정확한 혈자리에 일말의 오차도 없이 찔러졌다.
하 어르신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의술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3개의 은침을 정확한 혈자리에 찔러 넣는 침술은 완성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젊은이는 이런 침술을 선보일 수가 있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그 의술이 뛰어난다 한들 죽은 사람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하 어르신이 속으로 사색에 잠긴 사이 임찬은 벌써 23개의 은침을 임희의 각각 다른 혈자리에 놓았다. 하 어르신은 그 은침들이 놓여진 위치를 보며 무거워진 표정을 넘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임찬이 마지막 침을 다 놓고 나서야 하 어르신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사실 하 어르신은 이미 짐작되고 있는 게 있었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임찬이 평온한 얼굴로 대답을 해왔다.
“조화신침이라고 합니다.”
“역시 그랬군요!”
하 어르신이 감탄을 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예전에 제 사조께서 이 세상에는 사람을 진정으로 기사회생하게 할 수 있는 의술이 딱 하나 있다 그러셨었는데 그게 바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조화신침이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 조화신침은 사라진지 이미 수백 년도 더 지났다고 하셨는데, 설마하니 이 늙은이가 직접 이렇게 현장에서 그 침술을 구경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늙은이에게 큰 선물을 주셨네요.”
말을 마친 하 어르신은 얼른 임찬을 향해 공수를 하며 예를 갖췄다.
“조금전 제가 신의신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에게 무례를 저질렀으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임찬은 잠깐 멈칫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소문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임찬은 옥패의 일이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필경 그때 임씨 가문이 멸망하게 된 것도 다 이 옥패 때문에 그랬던 것이니 말이다. 하 어르신은 약간 의아해했으나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이 조화신침에 관련된 일은 워낙 중대한 사항이라 소문이라도 나게 된다면 어떠한 후과를 초대할지 모를 일이었다.
“걱정마십시오. 이 늙은이 절대 밖으로 누설하지 않겠소이다.”
하 어르신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 문 쪽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왕 매니저님, 여기예요. 아까 그 사람이 하 어르신에게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 글쎄 죽은 사람을 여기에 데려다 놨다니까요. 이 얼마나 재수없는 일이냐고요!”
방문이 열리고 조금전의 그 젊은 점원이 약국의 매니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왕 매니저는 하 어르신을 발견하자 얼른 얼굴에 비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예를 갖춰 말했다.
“하 어르신, 여긴 저에게 맡겨주시고 어르신께서는 편히 쉬세요.”
하 어르신은 그런 매니저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여전히 임찬을 존경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왕 매니저는 무심한 채 방안을 둘러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시체를 당장 여기서 끌어내!”
“어딜 감히!”
하 어르신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러자 깜짝 놀란 왕 매니저는 낮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하 어르신, 저 사람은 죽은 사람이에요. 계속 이곳에 놔뒀다가는… …”
“누가 죽었대!”
하 어르신이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에 계시는 선생, 아니, 이분께서 이미… …”
하 어르신은 임찬이 임희를 되살렸다는 말을 하려다 말을 멈췄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임찬의 일이 탄로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저 여성분은 그냥 크게 다친 것뿐일세!”
하 어르신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 다들 나가! 난 계속 저 분을 치료해야겠으니!”
“네?”
왕 매니저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 어르신, 조금전 저 분이 죽었다고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내가 잘못 봤다, 왜! 안 돼?”
하 어르신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내가 늙어서 눈이 잘못 된 게 아니냐고 조롱하고 싶은 셈이야?”
왕 매니저는 순간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하 어르신은 성원대약국의 중류지주로서 성원그룹의 회장님도 하 어르신에게는 극히 예를 갖춰 대하시곤 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은 사람은 하 어르신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빨리 꺼져!”
이내 하 어른이 또다시 호통을 쳤다.
“네, 네… …”
왕 매니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도 굽신거리며 점원과 함께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 그리고 곧이어 문 밖에서 왕 매니저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