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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 임찬은 임희를 안고 근처에 있던 성원대약국으로 내달렸다. 그곳은 광양시에서 제일 큰 약국 체인점으로서 사장은 진성원이라는 자였는데 광양시 의료 업계의 거물이었다. 허윤하의 허씨 가문 대부분의 업무가 바로 이 성원그룹과 손을 잡고 이루어지고 있어 성원그룹이 허씨 가문의 돈줄을 꽉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원대약국은 그 체인점마다 의술이 뛰어난 의사들이 진료를 봐주고 있었다. 임찬이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안고 약국에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굳어 섰다.
  • “손님, 이 환자분 같은 경우 저희 약국에서 치료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세요!”
  • 한 젊은 점원이 임찬을 막아서며 말했다.
  • “저희 약국에는 병원의 그런 의료기기가 없어서 응급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고요!”
  • “필요없습니다!”
  • 임찬이 머리를 쓸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저는 은침을 사러 온 거니까 한 세트 주세요!”
  • “은침이요?”
  • 젊은 점원은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필경 그걸 찾는 손님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 “은침을 사서 뭐하시게요?”
  • 그때 흰 수염을 기른 노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젊은 점원은 말을 한 사람이 흰 수염의 노자인 것을 발견하자 얼른 예를 갖춰 인사했다.
  • “하 어르신.”
  • 그 흰 수염을 기른 노자는 이름이 하금염이었는데 성원대약국에서 초청하여 진료를 봐주고 있는 신의였다. 그 노자의 의술은 광양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는데 성원대약국이 이정도로 명망이 높을 수 있었던 것도 하 어르신이 약국을 지키고 있는 것과 큰 관계가 있었다. 임찬은 그런 그의 물음에 대꾸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요구를 말했다.
  • “은침 한 세트 주세요!”
  • 젊은 점원은 임찬의 태도에 화가 난 듯 짜증스레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 “하 어르신께서 묻잖아요. 못 들었어요?”
  • “은침 한 세트 달라고요!”
  • 임찬이 갑작스레 큰 소리로 외쳤다.
  • “갑자기 왜 소리치고 그러세요!”
  • 젊은 점원도 짜증내며 되받아 쳤다.
  •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래요? 여기서 일을 치실 거면… …”
  • 그때 하 어르신이 손을 내젓자 젊은 점원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임찬의 품에 안긴 임희를 한 번 보더니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 “이보게, 젊은이. 그 아인 이미 숨을 거뒀으니 고이 묻어주는 게 좋을 것 같네만.”
  • “아직 안 죽었습니다!”
  • 임찬이 고함을 질렀다.
  • “하 어르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에요?”
  • 젊은 점원이 또다시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고 하 어르신은 그런 점원을 말렸다. 그는 임찬이 지금 극심한 비통에 빠졌음을 알기에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이해했다.
  • “젋은이, 이 늙은이도 어언 의술을 행한지 40여 년이 흘러 어느 정도 안광은 있다네. 그 여자 아인 확실히 더 이상 생기가 보이지 않아… …”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직 안 죽었습니다!”
  • 임찬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 “은침을 주세요! 은침이 있냐고요?”
  • 하 어르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은침은 가져다 뭐하게?”
  • “동생을 살릴 거예요!”
  • 임찬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 “살리겠다고?”
  • 하 어르신은 임찬을 쳐다보며 눈 앞의 젊은이가 미친 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절대로 살아날 수가 없다. 그 아무리 의술이 하늘을 뚫은 자라 하더라도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임찬의 두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으며 엄청 침착해 보였다. 하 어르신은 그 점에서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 “약국에는 은침이 없습니다만… …”
  • 하 어르신의 작은 목소리에 임찬은 곧 몸을 돌려 약국을 떠나려 했다. 그러자 하 어르신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급 말을 건네왔다.
  • “하지만 저한텐 은침이 있으니 그걸 빌려주도록 하죠… …”
  • 임찬은 잠깐 멈춰 서서 하 어르신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감사합니다!”
  • “가서 내 은침을 꺼내와. 그리고 뒤쪽에 있는 방도 하나 비워두고.”
  • 하 어르신이 지시를 하자 젊은 점원이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 “하 어르신, 저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
  •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책임질 게.”
  • 하 어르신이 담담한 말투로 대답하자 젊은 점원은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하고 안쪽으로 달려가며 요구한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임찬은 하 어르신의 동반 하에 임희를 안고 뒤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병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임희를 침대에 내려놓자 하 어르신이 은침을 꺼내 놓았다. 그러자 젋은 점원이 싸늘한 표정으로 임찬에게 말을 해왔다.
  • “저 은침은 하 어르신께서 직접 사용하시는 은침이에요. 긴 세월 동안 저 은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렸는지 셀 수도 없을 걸요? 그러니 빌려주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요! 감히 저 은침으로 지금 죽은 사람한테 사용하려고 하다니, 이건 그야말로 하 어르신에 대한 모독이라고요!”
  • 임찬은 그 은침을 만지며 어쩐지 말 못할 익숙함을 느껴 이내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젊은 점원은 여전히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 “흥, 괜한 짓 하긴.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 했거든요?”
  • “됐다. 넌 나가보거라!”
  • 하 어르신이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 “하지만… …”
  • 멈칫한 젊은 점원은 결국 투덜투덜 거리며 방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제가 도와드릴까요?”
  • 하 어르신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헛수고라는 걸 알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임찬의 슬픔이라도 조금 덜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다행일 것 같았다. 하 어르신은 의술을 행하면서 그 착한 심성으로 광양시에서 항상 좋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낯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동정심을 갖고 남을 대하는 것, 그것이 하 어르신이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주요원인이었다. 임찬은 그런 하 어르신을 흘끗 바라본 뒤 살며시 말했다.
  • “그러면 이 혈자리 두 곳을 좀 눌러주세요.”
  • 임찬이 가리킨 건 백회혈과 용천혈이었는데 그 혈자리는 정확히 머리 정수리와 발바닥에 위치하여 있었다. 백회혈은 백 개의 맥이 모인 혈로써 그 맥이 사람의 전신으로 뻗어나가고 머리는 양기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또한 백 개의 맥이 모이는 종착점으로서 백회혈은 각 경맥의 기가 모이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백회혈의 혈성은 양에 속하지만 양중우음으로 음양의 맥락을 통달시켜 주는 중요한 작용을 하는 혈자리이다.
  • 용천혈은 발바닥에 위치하여 있으며 족소음신경이 시작하는 혈로서 경수가 이곳에서 밖으로 흘러 넘쳐 몸의 표면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 하 어르신은 약간의 의혹이 들었지만 그래도 임찬의 요구대로 그 두 혈자리를 짚었다. 그러자 임찬은 옆에 놓인 은침을 손에 잡더니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동시에 3개의 은침을 임희의 얼굴에 놓았다. 하 어르신은 그의 행동에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임맥이 내린 3개의 은침은 정확한 혈자리에 일말의 오차도 없이 찔러졌다.
  • 하 어르신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의술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3개의 은침을 정확한 혈자리에 찔러 넣는 침술은 완성할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젊은이는 이런 침술을 선보일 수가 있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그 의술이 뛰어난다 한들 죽은 사람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하 어르신이 속으로 사색에 잠긴 사이 임찬은 벌써 23개의 은침을 임희의 각각 다른 혈자리에 놓았다. 하 어르신은 그 은침들이 놓여진 위치를 보며 무거워진 표정을 넘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임찬이 마지막 침을 다 놓고 나서야 하 어르신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 그리고 그때, 이미 ‘죽은’ 임희가 얕게 신음을 뱉으며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하 어르신은 낯빛이 확 바뀌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임찬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이보시오, 아까… … 아까 그대가 놓은 이 침술, 혹 이름은 있소?”
  • 사실 하 어르신은 이미 짐작되고 있는 게 있었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임찬이 평온한 얼굴로 대답을 해왔다.
  • “조화신침이라고 합니다.”
  • “역시 그랬군요!”
  • 하 어르신이 감탄을 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예전에 제 사조께서 이 세상에는 사람을 진정으로 기사회생하게 할 수 있는 의술이 딱 하나 있다 그러셨었는데 그게 바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조화신침이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기 조화신침은 사라진지 이미 수백 년도 더 지났다고 하셨는데, 설마하니 이 늙은이가 직접 이렇게 현장에서 그 침술을 구경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늙은이에게 큰 선물을 주셨네요.”
  • 말을 마친 하 어르신은 얼른 임찬을 향해 공수를 하며 예를 갖췄다.
  • “조금전 제가 신의신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에게 무례를 저질렀으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 “괜찮습니다.”
  • 임찬은 잠깐 멈칫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일은 소문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 임찬은 옥패의 일이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필경 그때 임씨 가문이 멸망하게 된 것도 다 이 옥패 때문에 그랬던 것이니 말이다. 하 어르신은 약간 의아해했으나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이 조화신침에 관련된 일은 워낙 중대한 사항이라 소문이라도 나게 된다면 어떠한 후과를 초대할지 모를 일이었다.
  • “걱정마십시오. 이 늙은이 절대 밖으로 누설하지 않겠소이다.”
  • 하 어르신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 문 쪽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 “왕 매니저님, 여기예요. 아까 그 사람이 하 어르신에게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 글쎄 죽은 사람을 여기에 데려다 놨다니까요. 이 얼마나 재수없는 일이냐고요!”
  • 방문이 열리고 조금전의 그 젊은 점원이 약국의 매니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왕 매니저는 하 어르신을 발견하자 얼른 얼굴에 비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예를 갖춰 말했다.
  • “하 어르신, 여긴 저에게 맡겨주시고 어르신께서는 편히 쉬세요.”
  • 하 어르신은 그런 매니저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여전히 임찬을 존경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왕 매니저는 무심한 채 방안을 둘러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저 시체를 당장 여기서 끌어내!”
  • “어딜 감히!”
  • 하 어르신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러자 깜짝 놀란 왕 매니저는 낮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 “하 어르신, 저 사람은 죽은 사람이에요. 계속 이곳에 놔뒀다가는… …”
  • “누가 죽었대!”
  • 하 어르신이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 “여기에 계시는 선생, 아니, 이분께서 이미… …”
  • 하 어르신은 임찬이 임희를 되살렸다는 말을 하려다 말을 멈췄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임찬의 일이 탄로날 게 분명하지 않은가?
  • “저 여성분은 그냥 크게 다친 것뿐일세!”
  • 하 어르신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 “그러니 다들 나가! 난 계속 저 분을 치료해야겠으니!”
  • “네?”
  • 왕 매니저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 “하 어르신, 조금전 저 분이 죽었다고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 “내가 잘못 봤다, 왜! 안 돼?”
  • 하 어르신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 “혹시 내가 늙어서 눈이 잘못 된 게 아니냐고 조롱하고 싶은 셈이야?”
  • 왕 매니저는 순간 이마에서 식은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하 어르신은 성원대약국의 중류지주로서 성원그룹의 회장님도 하 어르신에게는 극히 예를 갖춰 대하시곤 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은 사람은 하 어르신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 “빨리 꺼져!”
  • 이내 하 어른이 또다시 호통을 쳤다.
  • “네, 네… …”
  • 왕 매니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도 굽신거리며 점원과 함께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 그리고 곧이어 문 밖에서 왕 매니저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 “저게 네가 말한 죽은 사람이야? 죽일 놈의 자식, 날 죽이려고 작정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