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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차를 렌트하여 데리러 가다

  • 그날 밤 임찬은 임희의 병상을 지키며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성원대약국은 24시간 영업이고 하 어르신이 약국의 점원들에게 임찬을 잘 대접하라 당부하여 그 누구도 임찬을 방해하러 온 적이 없었다.
  • 그날 저녁, 임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옥패에 들은 정보가 워낙 방대했으며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조화결이라는 공법이 있었다. 그것은 임숭헌이 천하제일의 협객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천지의 조화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었던 신묘한 의술이기도 하였으며 또한 간사한 자를 징벌하고 악을 물리칠 수 있었던 강력한 무공이기도 했다. 임찬은 소위원단 3알을 삼킨 뒤 단약의 약효를 천천히 체내에서 퍼지게 하여 그 조화결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만약 일반인이 조화결을 수련하여 뭔가 성과를 이루려면 극히 어려운 일이었으나 조화결의 모든 연구를 철저히 익힌 임숭헌의 모든 기억을 이어받은 임찬도 조화결에 대한 연구가 머리에 철저히 박혀 수련을 시작하자 자연히 사반공배가 되었다.
  • 하룻밤 만에 임찬은 조화결을 제1중까지 수련하여 체내에 진기가 흐르게 되었다. 그리고 날이 점점 밝아오고 임희의 호흡이 안정된 것을 본 임찬은 방을 떠났다. 대약국의 뒤에는 큰 마당이 있었는데 작은 화원처럼 꾸며져 나무들이 한 가득 심어져 있었다. 임찬은 어제 저녁 하 어르신이 남기고 간 은침을 꺼내 들어 그 중 하나를 오른쪽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가볍게 날리자 그 은침은 비도처럼 날아가 옆에 있던 나무에 박혔다. 은침은 본디 힘이 없어 일반 사람이라면 웬만한 연습으로는 사람의 피부를 찌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임찬이 날린 은침은 딱딱한 나무에 거의 절반이나 박히면서도 전혀 구부러들거나 그런 현상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장면이었다. 이게 바로 조화결의 위력이었다. 만약 저런 위력으로 사람에게 날렸다면 아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뒤이어 임찬은 또 권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진기의 운기에 따라 그 권술에도 활력과 생기가 넘쳐났다. 그리고 대충 샤워를 마친 임찬이 욕실을 나서자 핸드폰이 울렸다. 임찬이 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장모님 방혜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임찬, 너 지금 어딨어?”
  • 장모님 방혜는 가족들 중에서도 성격이 제일 불 같고 임찬을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상 임찬이 자기 딸의 인생을 망치고 그녀의 가족을 망하게 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임찬은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누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지금 임희를 돌보고 있습니다.”
  • “그딴 소린 집어 치우고, 임희든 뭐든 지금 당장 집으로 들어와!”
  • 방혜의 화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 “그리고 차를 좀 렌트해서 픽업하러 와. 윤하가 오늘 돌아오니 공항에 마중나가야 돼!”
  • “저… …”
  • 임찬은 아직 할 말이 남았으나 방혜는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노기가 스쳐 지나갔다. 장모님네 가족은 항상 이렇듯 그의 기분을 무시한 채 명령만을 내렸다. 그 순간 전화를 다시 걸어 거절하려 했었던 임찬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끝내는 한 번 다녀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사실 장모님네 가족이 무슨 태도이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건 허윤하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느냐였다. 임찬은 허윤하가 어제 저녁 자신을 배반했는지 꼭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임찬이 문을 나서려는데 마침 하 어르신이 다가왔다.
  • “임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 하 어르신은 얼굴이 좋아 보였다. 어제 저녁 그는 임찬이 그에게 선물해준 소위원단을 사장님 진성원에게 하나 가져다 줬다. 진성원은 거친 밑바닥부터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 그 자리에 올라오게 된 케이스였는데 그러다 보니 몸에 오래된 상처가 많았다. 하여 나이를 먹자 항상 재발하는 병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곤 했었다. 그러다 하 어르신이 가져다 준 소위원단을 먹자 그는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부상들이 하룻밤 만에 말끔히 나은 걸 발견하게 되었다. 격동을 금치 못하던 진성원은 뻔뻔스럽게 하 어르신에게서 소귀원단 하나를 더 얻어가 그의 뒤를 봐주는 사람에게 드리려 했다. 또한 하 어르신이 이런 단약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더욱 기쁨을 금치 못하며 곧바로 성원대약국의 지분 15%를 하 어르신에게 넘겼다. 그렇게 됨으로써 하 어르신은 성원대약국의 2순위인 대주주가 되었다.
  • 진성원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단약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하 어르신의 지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 어르신을 회유하려고 달려들 거란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자신이 돈을 얼마를 드리건 그건 별 의미가 없었다. 자신보다 더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주식을 준다면 그건 또 다른 말이었다. 그렇게 되면 하 어르신을 성원대약국에 묶어둘 수 있을 것이고 하 어르신도 굳이 도망가진 않을 것이니까 말이다. 성원대약국은 광양시에서 그 체인점을 세워 거의 광양시 절반에 가까운 약재공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적어도 몇 천 억은 될 게 뻔했다. 그러므로 15%의 주식이라는 것은 거의 그 가치가 몇 백 억에 달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만약 이 소귀원단을 대량 생산할 수만 있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한 일이었다.
  • 하 어르신은 지금 임찬에게 존경스럽고도 감사한 마음뿐이라 그의 앞에서 몸을 약간 숙인 채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었다.
  • “좋은 아침입니다.”
  • 임찬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작스레 물었다.
  • “하 어르신, 혹 부탁을 좀 드려도 괜찮을까요?”
  • 임찬의 물음에 하 어르신은 얼굴 가득 기쁜 웃음을 지으며 얼른 대답했다.
  • “부탁이라뇨, 천만에요, 임 선생님. 필요한 게 있으시면 개이치 마시고 다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 하 어르신이 보기엔 임찬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게 그에게는 영광이었다.
  • “동생이 아직 한동안은 편히 쉬어야 하는지라 혹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돌봐줄 수 있을까요?”
  • “임 선생님, 걱정마십시오!”
  • 하 어르신이 얼른 대답했다.
  • “제가 직접 옆에서 지키면서 제일 잘한다는 간병인을 데려와 임희 아가씨를 잘 돌보게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하 어르신.”
  • 임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한 마음을 가슴에 새겼다. 그러자 하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 “다 제가 응당 해야 될 일인 걸요.”
  • “그럼 여긴 어르신께 부탁 드리겠습니다.”
  • 문 앞까지 간 임찬이 또 발걸음을 멈췄다.
  • “아참, 하 어르신. 근처에 혹시 차를 렌탈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 “렌탈이요?”
  • 잠깐 멈칫한 하 어르신이 얼른 물었다.
  • “임 선생님께서는 어떤 차를 렌탈하려고 하는지요? 뭘 하시려고?”
  • “공항에 픽업하러 가야 해서요.”
  • “몇 인승이 필요하세요?”
  • “보통 차량이면 됩니다.”
  • “그러면 렌탈 할 필요가 없죠!”
  • 하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 “저한테 차가 있는데 평소에 잘 운전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임 선생님께서 가져다 쓰세요.”
  • 말을 마친 하 어르신은 이내 자신의 기사를 불러 차를 몰고 오게 했다. 대약국의 문을 나서자 마침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차의 로고는 조금 이상했는데 2개의 알파벳 M자가 겹쳐진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긴 자동차 바디는 일반 차량보다 훨씬 더 길어 보였고 심지어 임찬이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 BMW 7 시리즈보다 더 긴 것으로 굉장히 좋은 차 같았다. 차 브랜드는 평범하여 딱히 특별할 게 없어 보였으나 자동차의 앞 유리에 뭔가 작은 라벨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무슨 출입증처럼 보였지만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하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
  • “임 선생님, 이 차는 제가 재작년 전에 산 건데 아직 한 번도 운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임 선생님께서 먼저 쓰고 계세요.”
  • 임찬은 그 자동차가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였으나 차의 가격이 꽤 나갈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긴 하 어르신의 신분으로 보통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침 차가 필요했었던 임찬은 굳이 거절하진 않았다. 그가 하 어르신에게 준 처방전으로 이와 같은 차를 100대는 무리 없이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면 고맙게 잘 쓰겠습니다, 하 어르신.”
  • 하 어르신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 “아유, 별 말씀을요.”
  • 임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타고 대약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