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가까이에 다가간 임찬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침대 위에는 절세미인의 여자가 누워 있었는데 외모로 놓고 봤을 때 절대 허윤하에게 꿀리지 않았다. 하지만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살이 빠진 모습이 보기에 엄청 비참해 보일 정도였다. 침대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돈 임찬이 갑작스레 고개를 들었다.
“남 선생님, 저 사방명이라는 자를 데려와 남 아가씨를 치료하게 하는 데 얼마 쓰셨죠?”
“저는 돈을 보고 남 선생님의 일을 도와준 게 아닙니다!”
사방명이 얼른 해명했다.
“저랑 남 선생님은 관계가 막역하여, 그의 일이라면 저의 일처럼 나설 정도라고요!”
침묵을 지키는 남패천의 눈 속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사방명이 이곳에 반 년이나 머물면서 그의 딸을 지킨 것에 대해 그는 확실히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임찬은 냉소를 흘릴 뿐이었다.
“일 푼도 받지 않았다고요? 사방명 씨, 당신은 정말 죽일 놈이네요!”
“너,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사방명이 극대노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남패천도 약간 불만인 듯 미간을 찌푸렸다. 임찬의 말이 무슨 듯인지 궁금한 듯했다. 임찬은 사방명을 무시한 채 하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
“하 어르신, 사실 어르신께서 침을 놓기로 한 결정은 잘 하신 겁니다!”
“네?”
하 어르신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남 아가씨께서는 깨어나시지 않으신 걸까요? 그것도 오히려 더 병세가 악화되기만 하고……”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녀의 몸에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죠.”
임찬이 담담한 웃음을 지으며 사방명을 바라봤다.
“그 누군가가 그녀의 몸 안에 은침을 심어 놓아 그녀의 혈자리를 모두 봉하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또 다시 침을 새로 놓게 되면 그녀의 체내에 있던 생기가 빠르게 흩어지게 되면서 심한 경우 그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하겠죠!”
그 순간, 사방명의 낯빛이 갑자기 하얗게 질리며 연신 식은땀을 흘려댔다. 그리고 남패천의 얼굴색 또한 바뀌더니 사방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 반 년 동안 오직 사방명만이 그의 딸과 제일 많은 접촉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군가’가 누구일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이, 임 씨! 감히 무고한 사람한테 죄를 뒤집어 씌워요?”
사방명이 억지로 침착한 척했다.
“모든 말에는 근거라는 게 뒷받침이 돼야 해요. 지난 반 년 동안 내가 여기에 있었다고 그 수작을 부린 게 내가 되기라도 한 단 말이에요?”
“급해 할 필요 없어요. 모든 게 곧 밝혀질 테니까.”
임찬은 어느새 남 아가씨의 침대 머리맡으로 걸어갔다. 그는 손을 뻗어 남 아가씨의 이마를 고정시키더니 두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 몇 곳에 있는 혈자리를 신속하게 눌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왼 손으로 은침 3개를 집어 들더니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정확하게 남 아가씨의 얼굴에 있는 세 곳의 혈자리에 놨다.
은침 3개가 내려지자 남 아가씨의 이마에서 마치 뭔가 빠져 나오려는 듯 갑자기 볼록하게 한 곳이 튀어나왔다. 임찬은 여전히 행동을 멈추지 않은 채 손가락을 놀려 은침을 연신 남 아가씨의 몸 곳곳의 혈자리에 놓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총 18개의 은침을 놓게 되었고 전체 과정이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18개의 은침이 정확한 혈자리에 안착하였다.
그 순간, 사방명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도 침구 고수였던 지라 사방명은 임찬의 수법이 엄청 뛰어나 자신보다 훨씬 더 웃도는 실력의 소유자였음을 자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뜻밖에도 남 아가씨의 이마에 혈점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남패천이 얼른 앞으로 다가서자 그 혈점에서 바늘 끝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임찬은 두 손을 뻗어 바늘의 끝을 잡더니 살며시 뽑아냈다. 그것은 절반 길이의 은침이었는데 길이가 3센티밖에 안 되었다. 남패천은 얼굴색이 확 변하며 다급히 물었다.
“이게…… 이게 제 딸의 혈자리를 막고 있었다던 그 은침인가요?”
“그렇습니다.”
남패천이 고개를 홱 돌려 사방명을 노려보자 그가 급변한 낯빛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제,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은침에 제 이름이 적혀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급할 거 없죠, 뭐. 잠시후면 다 밝혀질 거니까!”
임찬이 침착하게 말했다.
사방명은 두려운 표정을 하였으나 여전히 승복을 할 수 없는지 말을 이었다.
“저, 저한테 죄를 뒤집어 씌울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그를 무시한 임찬은 조화신침을 다시 한 번 시전하며 남 아가씨의 몸 36곳에 달하는 혈자리에 침을 연신 놓았다. 마지막 침을 놓으며 임찬은 남 아가씨의 이마를 탁 때리더니 가볍게 말했다.
“이제 깨어나세요!”
사람들의 주시 하에 남 아가씨의 눈꺼풀이 움직이더니 1년여를 잠들었던 그녀가 드디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속에서 소란이 잠깐 일었다. 남패천은 얼른 침대로 달려갔다. 아무리 강한 그였어도 지금 이 시각 뜨거운 눈물이 고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딸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의 유일한 의탁과 희망이기도 했다. 그런 딸이 1년을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게 됐으니 남패천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빙아, 드디어…… 드디어 깨어났구나……”
남패천의 목소리가 잔뜩 메었다. 남 아가씨는 망연하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아빠……”
남패천의 눈물이 끝내 흘러 넘쳤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단어를 얼마나 많이 꿈꿨던가?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녀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부름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임찬의 갑작스런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사방명, 어디서 감히!”
외침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사방명이 마침 오른 손을 휘두르며 3개의 은침을 남 아가씨에게 날렸다. 그러자 임찬은 옆에 있던 침대 시트를 펼쳐 들며 그 3개의 은침을 동시에 막아냈다. 순간 얼굴이 싸늘해진 남패천이 손짓을 하자 그의 옆에 있던 남자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방명과 엉켰다. 비록 사방명도 조금 실력은 있었으나 결국에는 남자를 당해내지 못하고 얼마 안 가 남자에 의해 두 손이 부러진 채 남패천의 앞으로 던져졌다. 남패천의 얼굴은 차가움의 극치를 달렸다. 아까 그 3개의 은침은 정확히 자신의 딸을 향해 날아갔었다. 만약 임찬이 제때에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딸의 목숨이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
“사방명, 너 지금 뭣 하는 게야!”
남패천이 냉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러나 사방명은 거친 숨만 내쉴 뿐 이를 깨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 선생님, 아니면 선생님 따님께 한 번 물어보시죠.”
임찬이 가볍게 말했다.
“따님께서 깨어나시자마자 저 사람이 죽이려고 한 걸로 봐서는, 너무 뻔한 일 아닌가요?”
남패천이 얼른 딸을 바라보자 남 아가씨는 아직 허약하지만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아빠, 저를 차로 들이, 들이박은 건 사천린이에요……”
“뭐라고?”
남패천이 폭노하였다. 사천린이 바로 사방명의 아들이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모든 게 선명해졌다. 역시나 사방명이 직접 와서 남 아가씨를 돌봐주겠다 한 것은 그녀를 살리려 한 것이 아닌 오히려 그녀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진실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당연히 사방명은 남 아가씨를 죽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남 아가씨가 죽게 되면 여기에 남아서 그녀를 돌봐주었던 그 역시도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래서 그는 이번 하 어르신이 벌린 일을 빌려 몰래 남 아가씨의 몸에 수작을 부렸다. 그래야만 하 어르신이 침을 놓게 됐을 때 그가 남 아가씨의 체내에 숨겨놓았던 은침을 건드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 아가씨는 목숨을 잃을 게 분명하였다. 남패천이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말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누가 내 딸을 쳤는지 아무리 찾아 봐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지! 역시 사씨 가문인 너희가 중간에서 손을 썼던 거야. 사방명, 넌 참으로 독한 놈이네!”
사방명이 이를 악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패천, 일이 까발려졌으니 나도 인정해. 하지만 모든 일은 다 내가 혼자……”
“흥, 난 한 놈에게만 책임을 묻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
남패천이 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혼자 꾸며낸 일이라 해도 반드시 사씨 가문 전체가 같이 목숨을 바쳐야 할 거야!”
말을 마친 남패천이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모든 사씨 가문의 직계 성원을 다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광양시에서 내쫓아 영원히 광양시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라!”
“네!”
옆에 있던 남자가 허리 굽혀 대답하더니 몸을 돌려 떠나갔다. 임찬은 그 옆에서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나 남패천이라는 작자의 위엄이 대단하였다. 단 한 마디로 하나의 큰 가문의 생사존망을 결정해버리다니!
“임 선생님, 제 인사를 받으세요.”
남패천은 몸을 돌려 아예 임찬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 딸아이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만약 임 선생님께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이 남패천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광양시에서 제가 못해내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