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5화 마이바흐

  • 허윤하네 가족은 광양시에 있는 조금 허름한 동네의 안양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허씨 가문은 광양시에서 그냥 보통의 작은 가문에 속했으며 그 재산이 200억을 넘지 않았다. 허윤하의 아버지인 허건공은 허씨 가문 가주의 제일 유력한 경쟁자였으나 아들 하나 없이 딸 둘만 낳자 아예 가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 뒤에 허건공의 동생인 허건평이 허건공이 가지고 있었던 허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하여 허씨 가문의 어르신이 크게 앓는 틈을 타 액막이를 하자는 구실로 그 당시 마침 결혼 적령기가 된 허윤하에게 데릴사위를 들이게끔 압박했다. 허윤하는 그때 광양시에서 제일의 미녀로 불렸었던 지라 이 일은 전 광양시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많은 남성들이 데릴사위가 되고 싶어 방문을 했었다. 하지만 허윤하는 끝내 보기에 착해 보이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임찬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사실 특별한 이유도 아니었다. 단지 허윤하가 그런 남자에게 자신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그녀는 당연히 야심이 가득한 남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착하고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게 그녀에게는 제일 적합했다. 그렇게 허윤하가 임찬을 데려오고 난 뒤 어르신의 병세는 진짜 호전이 되기 시작했지만 허건평은 때를 놓치지 않고 허건공을 걸고 넘어졌다. 윤하가 데릴사위를 들였으니 허건공의 재산이 앞으로 다른 성씨의 사람한테 넘어가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하여 어르신은 허건공의 손에 쥐고 있었던 가문의 재산을 모두 거둬들이게 됐고 허건공의 가족들은 일순간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 전에 살던 넓은 저택은 허건평의 아들, 즉 허씨 가문의 미래를 이끌 후계자한테 넘어갔고 허건공 일가는 허름한 동네에 거실 하나에 침실 3개가 딸린 30여 평 남짓한 집으로 이사가게 되면서 그 마음속에 느끼는 낙차가 엄청나게 되었다. 그런 상황하에서 임찬은 당연하게도 허건공 일가족의 눈엣가시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임찬만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이 정도까지 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 무능한 임찬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광양시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임찬의 장모님은 방혜는 항상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 “임찬 저 루저만 아니었다면 윤하가 재벌집에 시집가서 그 성취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
  • 지난 3년 동안 임찬은 집안 도우미마냥 스스로를 낮추며 그들 일가족을 보살폈었고그들은 임찬을 집 문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3년 동안 일하며 번 월급도 모두 가져갔고 동생이 아프고 나서도 일전 한 푼도 도와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허윤하도 이렇게 그를 배신하는 일을 저질렀으니 그 누구라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임찬은 겨우 마음을 차분히 먹었다. 비록 화가 나기는 하지만 임찬은 하윤하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꼭 알아내고 싶었다. 단지가 허름한 단지라 길이 그렇게 넓지가 않아 임찬을 차를 몰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여 밖에 주차하고 임찬은 걸어서 아파트로 걸어갔고 그가 계단을 오르려던 찰나, 계단에서 내려오던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두 사람이 바로 임찬의 장인어른 허건공과 장모님 방혜였다. 임찬을 본 허건공은 얼굴을 굳히더니 고개를 돌려버렸고. 방혜는 아예 불 같이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외쳤다.
  • “임찬, 넌 하루 종일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 거야?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고 대체 지금 뭐 하자는 건데?”
  • 임찬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폈다. 허윤하가 뭘 했는지 알아내기 전에 아직은 허가의 사람들과 틀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 “지금 올라가서 치울게요.”
  • 임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럴 필요없다!”
  • 방혜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 “윤하가 곧 도착한다니까 빨리 데리러 가야 돼! 만약 시간이 늦어지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임찬은 고개를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시간 동안 그는 이런 것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 “렌트하라던 차는?”
  • 앞으로 걸어가던 방혜가 짜증스레 물었다.
  • “저… …”
  • 임찬이 말을 꺼내기도 전 방혜는 또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 “또 택시를 부른 거지, 그치? 윤하를 위해서 좀 생각이라는 걸 하면 안 돼? 걔가 회사에서는 그래도 고위직 인사인데, 매번 출장을 갔다 돌아오면 택시나 불러서 픽업하러 가고, 윤하 체면이 어디 서겠어? 임찬아! 넌 정말 내가 여태껏 봐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무능력한 인간이야, 알아? 제발 한 번만 윤하의 체면을 살려주면 안 돼? 아유, 됐다. 너랑 이런 걸로 따지느니 내가 화병이 도져서 죽고 말지. 내가 네 황서방한테 전화 했으니까 곧 혼다를 끌고 올 거야. 제발 부탁인데 이따가 황서방을 보면 좋은 말 좀 많이 해, 응? 계속 남한테 신세나 지고, 창피하지도 않아?”
  • 방혜의 입은 기관총마냥 임찬에게 말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말을 막 뱉어냈다. 임찬은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이미 이런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얼마 안 가 세 사람은 아파트단지 대문에 다다랐다. 그러자 마침 저기서 혼자 어코드가 천천히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방혜는 얼른 손을 흔들며 차를 불렀으나 그 차는 그들을 지나쳐 다른 곳에 주차를 했다.
  • “왜 그러지? 우릴 못 봤나?”
  • 방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 그들의 곁으로 하 어르신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허건공은 그 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 “우릴 못 본 게 아니라 이 차를 피해서 지나간 거야.”
  • “피했다고요? 왜요?”
  • 방혜가 궁금한지 물었다.
  • “마이바흐, V12 엔진이면은 최저가가 5억은 넘을 텐데 딱 봐도 저 차는 튜닝을 했단 말이지. 아마 저 정도면 못해도 8억은 될 걸? 살짝 스치기만 해도 어코드를 팔아도 배상금을 못 물어.”
  • 말을 하는 허건공의 눈빛이 부러워하는 듯했다. 허씨 가문의 어르신이 타고 다니는 차가 바로 마이바흐였다. 하지만 그 차도 지금 눈 앞의 차에 비하면 그 레벨 차이가 꽤 컸다. 그러자 방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 “우리 단지에 저런 차를 타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우리 아파트 단지의 사람 것이 아닌 그 사람들이 잘 아는 사람의 것일 수도 있지.”
  • 허건공은 말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근데 저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아는 그 사람들도 일반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해!”
  • 그때 어코드에서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걸어 내려왔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임찬의 매부 황양이었다. 방혜는 얼른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 “아이고, 황양아. 또 너한테 신세를 지게 됐네. 너무 미안하다.”
  • 황양은 먼저 부러운 눈길로 마이바흐를 쳐다보더니 다시 으스대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저런 차를 타지는 못해도 자신이 임찬보다는 한참 낫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희는 가족이잖아요.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 없어요.”
  • 황양은 곧이어 임찬을 깔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 “형님, 차가 필요하시면 저한테 직접 전화하지 그러셨어요. 매번 번거롭게 어머니께 부탁하지 마시구요.”
  • 임찬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황양이라는 자는 원래 양아치 출신으로 나중에 사장을 하나 잘 물었더니 신분을 바꿔 상인이 된 케이스였다. 그는 비록 허윤하의 동생인 허동설과 결혼을 하였으나 매번 허윤하를 볼 때마다 눈을 희번득거리며 질 나쁜 생각들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또 사적인 자리에서 임찬에 대한 조롱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기도 했는데, 매번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임찬 앞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며 임찬을 조롱하기도, 또한 허윤하의 앞에서 있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임찬이 어떻게 그런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할 수가 있었을까?
  • 임찬이 아무 말도 안 하자 방혜는 미워 죽겠다는 듯 말했다.
  • “거기서 뭐해? 빨리 황서방한테 고맙단 인사를 하지 않고!”
  • 황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임찬을 보고 있었고 임찬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어머니, 저 차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인사 안 해도 돼요.”
  • “네… … 네가 무슨 차가 있다고 그래?”
  • 잠깐 멈칫한 방혜가 곧바로 화를 냈다.
  • “공항에 윤하를 마중 나가려면 좋은 차를 끌고 가야 된다고! 설마 너 또 후진 차를 빌려온 건 아니지? 윤하의 입장을 좀 생각하면 안 돼?”
  • 황양도 헤헤 웃으며 말했다.
  • “맞아요, 형님. 윤하도 회사 고위직 인사인데, 아니면 이 꽉 물고 차 하나 뽑으시죠? 매번 윤하를 다른 남자 차에 태워 집에 데려올 순 없잖아요!”
  • 임찬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건 동서가 걱정할 건 아니고, 그리고 앞으론 윤하가 다른 사람의 차를 타게 될 일은 없을 거예요!”
  • “하하, 허풍은 누구나 다 떨 수 있죠. 중요한 건 그 실력이 되나, 못 되나죠!”
  • 황양이 자신의 어코드를 툭툭 치며 웃었다.
  • “차를 살려면 돈이 엄청나게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4, 5천만 원은 있어야 되거든요. 듣자 하니 형부 동생 목숨을 살리는 것도 고작 5천 정도면은 충분하다면서요. 그래서 차를 살래요, 아니면 목숨을 살 건가요?”
  • “임찬, 정말 너한테 실망이다. 본인이 무능력하면 됐지 거기에 허풍까지 떨어? 아이고, 됐다 그래. 이번엔 너한테 기대긴 틀려먹었구나!”
  • 방혜가 분한 듯 말했다.
  • “황양아, 어서 같이 공항에 윤하 데리러 가자.”
  • “네.”
  • 황양은 허윤하랑 같이 있을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임찬이 마이바흐의 곁에 다가가더니 차문을 열며 고개를 돌려 방혜에게 말했다.
  • “어머니, 그냥 제가 다녀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