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하네 가족은 광양시에 있는 조금 허름한 동네의 안양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허씨 가문은 광양시에서 그냥 보통의 작은 가문에 속했으며 그 재산이 200억을 넘지 않았다. 허윤하의 아버지인 허건공은 허씨 가문 가주의 제일 유력한 경쟁자였으나 아들 하나 없이 딸 둘만 낳자 아예 가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 뒤에 허건공의 동생인 허건평이 허건공이 가지고 있었던 허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기 위하여 허씨 가문의 어르신이 크게 앓는 틈을 타 액막이를 하자는 구실로 그 당시 마침 결혼 적령기가 된 허윤하에게 데릴사위를 들이게끔 압박했다. 허윤하는 그때 광양시에서 제일의 미녀로 불렸었던 지라 이 일은 전 광양시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많은 남성들이 데릴사위가 되고 싶어 방문을 했었다. 하지만 허윤하는 끝내 보기에 착해 보이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임찬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사실 특별한 이유도 아니었다. 단지 허윤하가 그런 남자에게 자신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야심이 가득한 남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착하고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게 그녀에게는 제일 적합했다. 그렇게 허윤하가 임찬을 데려오고 난 뒤 어르신의 병세는 진짜 호전이 되기 시작했지만 허건평은 때를 놓치지 않고 허건공을 걸고 넘어졌다. 윤하가 데릴사위를 들였으니 허건공의 재산이 앞으로 다른 성씨의 사람한테 넘어가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하여 어르신은 허건공의 손에 쥐고 있었던 가문의 재산을 모두 거둬들이게 됐고 허건공의 가족들은 일순간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전에 살던 넓은 저택은 허건평의 아들, 즉 허씨 가문의 미래를 이끌 후계자한테 넘어갔고 허건공 일가는 허름한 동네에 거실 하나에 침실 3개가 딸린 30여 평 남짓한 집으로 이사가게 되면서 그 마음속에 느끼는 낙차가 엄청나게 되었다. 그런 상황하에서 임찬은 당연하게도 허건공 일가족의 눈엣가시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임찬만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이 정도까지 되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 무능한 임찬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광양시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임찬의 장모님은 방혜는 항상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임찬 저 루저만 아니었다면 윤하가 재벌집에 시집가서 그 성취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텐데!”
지난 3년 동안 임찬은 집안 도우미마냥 스스로를 낮추며 그들 일가족을 보살폈었고그들은 임찬을 집 문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3년 동안 일하며 번 월급도 모두 가져갔고 동생이 아프고 나서도 일전 한 푼도 도와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허윤하도 이렇게 그를 배신하는 일을 저질렀으니 그 누구라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임찬은 겨우 마음을 차분히 먹었다. 비록 화가 나기는 하지만 임찬은 하윤하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지 꼭 알아내고 싶었다. 단지가 허름한 단지라 길이 그렇게 넓지가 않아 임찬을 차를 몰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여 밖에 주차하고 임찬은 걸어서 아파트로 걸어갔고 그가 계단을 오르려던 찰나, 계단에서 내려오던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두 사람이 바로 임찬의 장인어른 허건공과 장모님 방혜였다. 임찬을 본 허건공은 얼굴을 굳히더니 고개를 돌려버렸고. 방혜는 아예 불 같이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임찬, 넌 하루 종일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 거야?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고 대체 지금 뭐 하자는 건데?”
임찬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폈다. 허윤하가 뭘 했는지 알아내기 전에 아직은 허가의 사람들과 틀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올라가서 치울게요.”
임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필요없다!”
방혜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윤하가 곧 도착한다니까 빨리 데리러 가야 돼! 만약 시간이 늦어지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임찬은 고개를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시간 동안 그는 이런 것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렌트하라던 차는?”
앞으로 걸어가던 방혜가 짜증스레 물었다.
“저… …”
임찬이 말을 꺼내기도 전 방혜는 또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또 택시를 부른 거지, 그치? 윤하를 위해서 좀 생각이라는 걸 하면 안 돼? 걔가 회사에서는 그래도 고위직 인사인데, 매번 출장을 갔다 돌아오면 택시나 불러서 픽업하러 가고, 윤하 체면이 어디 서겠어? 임찬아! 넌 정말 내가 여태껏 봐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무능력한 인간이야, 알아? 제발 한 번만 윤하의 체면을 살려주면 안 돼? 아유, 됐다. 너랑 이런 걸로 따지느니 내가 화병이 도져서 죽고 말지. 내가 네 황서방한테 전화 했으니까 곧 혼다를 끌고 올 거야. 제발 부탁인데 이따가 황서방을 보면 좋은 말 좀 많이 해, 응? 계속 남한테 신세나 지고, 창피하지도 않아?”
방혜의 입은 기관총마냥 임찬에게 말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말을 막 뱉어냈다. 임찬은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이미 이런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얼마 안 가 세 사람은 아파트단지 대문에 다다랐다. 그러자 마침 저기서 혼자 어코드가 천천히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방혜는 얼른 손을 흔들며 차를 불렀으나 그 차는 그들을 지나쳐 다른 곳에 주차를 했다.
“왜 그러지? 우릴 못 봤나?”
방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 그들의 곁으로 하 어르신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허건공은 그 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릴 못 본 게 아니라 이 차를 피해서 지나간 거야.”
“피했다고요? 왜요?”
방혜가 궁금한지 물었다.
“마이바흐, V12 엔진이면은 최저가가 5억은 넘을 텐데 딱 봐도 저 차는 튜닝을 했단 말이지. 아마 저 정도면 못해도 8억은 될 걸? 살짝 스치기만 해도 어코드를 팔아도 배상금을 못 물어.”
말을 하는 허건공의 눈빛이 부러워하는 듯했다. 허씨 가문의 어르신이 타고 다니는 차가 바로 마이바흐였다. 하지만 그 차도 지금 눈 앞의 차에 비하면 그 레벨 차이가 꽤 컸다. 그러자 방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우리 단지에 저런 차를 타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 우리 아파트 단지의 사람 것이 아닌 그 사람들이 잘 아는 사람의 것일 수도 있지.”
허건공은 말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저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아는 그 사람들도 일반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해!”
그때 어코드에서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걸어 내려왔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임찬의 매부 황양이었다. 방혜는 얼른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아이고, 황양아. 또 너한테 신세를 지게 됐네. 너무 미안하다.”
황양은 먼저 부러운 눈길로 마이바흐를 쳐다보더니 다시 으스대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저런 차를 타지는 못해도 자신이 임찬보다는 한참 낫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희는 가족이잖아요.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 없어요.”
황양은 곧이어 임찬을 깔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차가 필요하시면 저한테 직접 전화하지 그러셨어요. 매번 번거롭게 어머니께 부탁하지 마시구요.”
임찬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황양이라는 자는 원래 양아치 출신으로 나중에 사장을 하나 잘 물었더니 신분을 바꿔 상인이 된 케이스였다. 그는 비록 허윤하의 동생인 허동설과 결혼을 하였으나 매번 허윤하를 볼 때마다 눈을 희번득거리며 질 나쁜 생각들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또 사적인 자리에서 임찬에 대한 조롱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기도 했는데, 매번 가족모임이 있을 때마다 임찬 앞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며 임찬을 조롱하기도, 또한 허윤하의 앞에서 있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임찬이 어떻게 그런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할 수가 있었을까?
임찬이 아무 말도 안 하자 방혜는 미워 죽겠다는 듯 말했다.
“거기서 뭐해? 빨리 황서방한테 고맙단 인사를 하지 않고!”
황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임찬을 보고 있었고 임찬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저 차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인사 안 해도 돼요.”
“네… … 네가 무슨 차가 있다고 그래?”
잠깐 멈칫한 방혜가 곧바로 화를 냈다.
“공항에 윤하를 마중 나가려면 좋은 차를 끌고 가야 된다고! 설마 너 또 후진 차를 빌려온 건 아니지? 윤하의 입장을 좀 생각하면 안 돼?”
황양도 헤헤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형님. 윤하도 회사 고위직 인사인데, 아니면 이 꽉 물고 차 하나 뽑으시죠? 매번 윤하를 다른 남자 차에 태워 집에 데려올 순 없잖아요!”
임찬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동서가 걱정할 건 아니고, 그리고 앞으론 윤하가 다른 사람의 차를 타게 될 일은 없을 거예요!”
“하하, 허풍은 누구나 다 떨 수 있죠. 중요한 건 그 실력이 되나, 못 되나죠!”
황양이 자신의 어코드를 툭툭 치며 웃었다.
“차를 살려면 돈이 엄청나게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4, 5천만 원은 있어야 되거든요. 듣자 하니 형부 동생 목숨을 살리는 것도 고작 5천 정도면은 충분하다면서요. 그래서 차를 살래요, 아니면 목숨을 살 건가요?”
“임찬, 정말 너한테 실망이다. 본인이 무능력하면 됐지 거기에 허풍까지 떨어? 아이고, 됐다 그래. 이번엔 너한테 기대긴 틀려먹었구나!”
방혜가 분한 듯 말했다.
“황양아, 어서 같이 공항에 윤하 데리러 가자.”
“네.”
황양은 허윤하랑 같이 있을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임찬이 마이바흐의 곁에 다가가더니 차문을 열며 고개를 돌려 방혜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