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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미안해, 내가 좀 늦었어

  • 시대호텔은 광양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로 총 아홉 층으로 이루어졌으며 층마다 소비가 다르며 층수가 높을수록 소비가 컸고 이 또한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다. 호텔의 가장 소비가 적은 일층도 몸값이 20억 정도는 되어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기에 허 어르신 허영경의 칠순 잔치도 그저 시대호텔의 3층에서 밖에 할 수가 없었지만 허영경을 제외한 나머지 허씨 집안사람들은 이층까지 밖에 가보지 못했기에 연회를 3층에서 한다는 사실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허영경 자신도 3층으로 정할 자격이 없었지만 이번에 거물의 도움으로 3층에서 할 수 있었기에 허영경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모든 친척들과 친구들을 전부 불렀다. 허윤하는 부모님을 따라 호텔 3층으로 향했고 현장에는 시끌벅적했으며 예전의 허건공은 허씨 가문에서 지위가 높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 로비 내에는 허영경이 얼굴에 웃음꽃이 핀 채 주변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허건평과 허장원이 허영경의 곁에서 밝은 얼굴로 무척 득의 양양했으며 그 모습을 본 허건공을 한숨을 내쉬고는 아무 테이블 하나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농락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유, 큰아버지 오셨어요!”
  • 네 명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고 허장원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다가왔고 그는 네 명을 한 번 흘겨보고는 극히 과장된 말투로 말했다.
  • “기둥서방인 우리 형님은 왜 안 보여요? 이런 자리를 마다할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고급스러운 요리들을 평생 본 적이 없을 텐데요, 형님을 위해서 일회용 포장 용기도 준비했어요!”
  • 허장원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변 사람들은 폭소를 했고 허윤하 일가족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으며 예전에 임찬이 연회에 참석했을 때 포장 용기를 챙겨서 남은 요리들을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심지어 허영경은 만날 때마다 이 일을 얘기했다. 방혜 등 사람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속으로 임찬이 자신들에게 창피를 줬다고 욕했으며 이때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다가왔고 그녀가 바로 허장원의 여동생인 허령령이었다.
  • “오빠, 무슨 그런 장난을 쳐. 이곳이 어떤 곳인데 기둥서방 따위가 들어올 자격이나 있겠어? 들어온다고 해도 앉아서 밥이나 먹을 수 있겠어?”
  • 허령령도 예뻤지만 허윤하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기에 허령령은 늘 허윤하를 질투하고 있었고 그녀를 뼛속까지 미워했다.
  • “령령아, 네가 아직 우리 형님을 잘 모르는구나? 형님이 들어올 수만 있다면 밥을 먹지 않을 리가 있겠어? 그렇게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어떤 창피함도 전부 이겨낼 수 있어!”
  • 허장원의 말에 허령령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 “오빠, 제 말을 오해하셨어요, 제 뜻은 임찬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 들어오려면 요리를 나르는 종업원 빼고는 방법이 없겠죠! 종업원 주제에 여기 앉아서 밥 먹을 자격이나 있을 가요?”
  •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웃기 시작했고 특히 허장원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폭소를 했다.
  • “령령아, 네 생각이 맞네, 난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윤하 누나, 오늘 진짜 형님이 종업원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죠?”
  • “제가 기억하기로는 오늘이 윤하 언니 생일인 것 같은데. 윤하 언니, 남편이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언니 생일도 까먹은 거 아니에요?”
  • 허령령은 코웃음을 쳤고 허윤하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허건공과 방혜도 어두워진 얼굴로 마음속으로 임찬을 욕했고 바로 이때, 문 앞에서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번 생에 내가 나 자신의 생일을 까먹어도 윤하의 생일은 절대 잊어버리지는 않아요!”
  •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고 정장 차림을 한 임찬이 손에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고 그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무시한 채 그대로 허윤하의 곁에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손에 든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 “자기야, 미안해, 내가 좀 늦었지!”
  • 임찬은 평소에도 잘 생겼지만 늘 꾸밀 시간이 없었으며 이번에는 신경을 써서 꾸미고 왔고 몸에 딱 맞는 정장은 그를 더욱 잘 생겨 보이게 만들었으며 백마를 탄 왕자가 등장하듯이 자리에 있던 수많은 여자들의 심장이 콩닥거렸다. 허윤하는 어리둥절한 채 임찬이 올 줄은 몰랐고 이런 상황에서 나타날 줄은 더욱 몰랐으며 방금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엄청난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웠지만 임찬을 본 순간, 왠지 모르게 그녀의 긴장했던 신경들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두 눈에서 흘렀고 그녀의 모든 강인함과 고집은 임찬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 울고 있는 허윤하를 보자 임찬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고 그는 몸을 일으켜 허윤하의 손을 덥석 잡아서 남자답게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울지 마. 이제부터 당신이 조금의 억울함도 당하지 않게 내가 약속할게!”
  • 허윤하는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전에 느껴보지 못한 안전감이 느껴졌고 임찬이 갑작스럽게 손을 잡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손을 빼기 싫었으며 이때 허장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 “어유, 우리 형님 오셨네요. 어때, 내 말이 맞지? 공짜라면 형님이 오지 않을 리가 없다니까!”
  • 주변 사람들은 큰소리로 웃었고 허령령은 임찬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 “임찬, 옷이 꽤 괜찮아 보이네요, 어디서 빌렸어요?”
  • “옷을 빌려 가면서 연회에 참석하다니, 제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람은 자고로 착실하게 살아야죠, 허영심이 너무 크면 안 좋아요!”
  • 허장원의 걱정해 주는 척하는 말에 허건공과 방혜는 화가 난 얼굴로 임찬을 쳐다보며 하필 이때 옷까지 빌려서 나타난 임찬이 자신들에게 창피를 주었다고 생각했으며 방혜가 분노 섞인 말투로 물었다.
  • “넌 여기 왜 왔어?”
  • “오늘은 윤하 생일이잖아요, 생일 축하해 주러 왔어요.”
  • 임찬은 대답했고 방혜는 차갑게 말했다.
  • “축하? 옷까지 빌려 입고 다른 사람의 연회에서 네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임찬,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니야?”
  •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방혜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고 임찬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조용하게 말했다.
  • “어머니, 전 윤하를 위해서 생일 연회를 준비했어요!”
  • “준비했다고? 어디?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 임찬의 말에 방혜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고 임찬은 가볍게 웃었다.
  • “9층에 있어요.”
  • “9층? 아이고, 윤하 언니, 들었어요? 임찬이 언니를 위해서 9층에서 생일 연회를 준비했대요!”
  •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고 허령령은 제일 먼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으며 허장원도 옆에서 비아냥거렸다.
  • “하하하, 너무 웃겨요. 임찬,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염치없는 것 같아요!”
  • “어휴, 어떤 사람들은 환상 속에서 사는 것 같아.”
  • “저런 남편을 찾다니, 가족들이 너무 창피하겠어.”
  • 사람들은 떠들썩했고 방혜 가족들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으며 방혜가 화가 나서 말했다.
  • “임찬, 제발 사람 노릇을 좀 하면 안 되겠니!”
  • “제가 왜요?”
  • 억울하게 묻는 임찬을 보며 방혜는 큰소리로 말했다.
  • “네가 9층에서 윤하를 위해 생일 연회를 준비했다고? 그래, 그럼 지금 당장 9층에 가서 한번 보기나 하자!”
  • “엄마……”
  • 허윤하는 얼굴이 어두워졌고 9층은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며 막연하게 올라갔다가 거물들의 심기라도 건드리게 되면 큰일 나는 것이다!
  • “맞아요! 임찬, 그럼 9층에 한번 다녀와요, 그럼 우리가 믿어 줄게요!”
  • 임찬은 평온한 얼굴로 가볍게 웃었다.
  • “9층의 생일 연회 준비가 아직 안 끝나서 지금은 올라갈 수가 없어요. 조금 후 준비가 다 끝나면 그때 올라가죠!”
  • 임찬의 말에 허장원은 크게 웃었다.
  • “어유, 임찬, 자신이 한 거짓말을 혼자서도 믿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요, 임 사장님, 그럼 연회 준비가 언제 끝날지 우리 다 같이 한번 기다려보죠!”
  • 사람들은 비웃으며 흥미진진하게 임찬을 쳐다보았다.
  • 9층이 어떤 곳인데? 허 어르신마저도 갈 자격이 없는데 임찬이 거기에서 생일 연회를 한다고? 허허, 누가 믿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