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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다시 만날 이유를 만들다

  • “이 자식아, 네 엄마인 내가 널 낳았어. 그러니까 네 아빠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다고. 이상한 생각하지 마!”
  • 안윤영은 나지막이 경고했다.
  • “앞으로 아무나 아빠라고 부르지 마. 안 그럼 해외에 남겨두고 안 데려올 거야.”
  • 안현승은 입을 삐죽였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정말 자신을 해외에 버려둘까 봐 입을 다물었다.
  • 안윤영은 아들을 데리고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탔다.
  • 그녀는 해마다 귀국해 엄마의 산소를 찾아 성묘했다. 그래서 아예 L 시에 집을 사뒀다.
  • 25평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집이었지만 그들 모자가 지내기엔 충분했다.
  • 막 택시를 잡은 안윤영이 트렁크에 짐을 다 싣기도 전에 갑자기 멀리서 어떤 실루엣이 보였다.
  • 훤칠한 검은 실루엣, 차가운 분위기. 방금 화장실에서 만난 나르시시즘이 강한 이상한 남자잖아?
  • 남자의 옆에는 늘씬한 몸매의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강렬한 익숙함이 느껴졌다.
  • 안윤영은 시선을 거두고 나쁜 생각을 했다.
  • 저렇게 이상한 남자 옆에 있는 여자도 멀쩡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 집에 돌아온 안윤영이 방을 다 치웠을 땐 저녁이 되었다.
  •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오늘 아들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것을 느낀 그녀는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 소파에 돌아와 보니 아들이 노트북을 끌어안고 무언가 하고 있었다.
  • 가까이 가서 보니, 아이의 손에 주민등록증까지 있었다!
  • 주민등록증 위의 남자는 얇은 입술을 오므린 채 시커먼 두 눈으로 매서운 서늘함을 뿜고 있었다. 사진으로도 그 건방짐이 느껴졌다.
  • 이, 이건 그 공항에서 만났던 이상한 남자잖아?
  • “현승아, 이 주민등록증 어디서 났어?”
  • 안윤영은 욕이 나오려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 아들이 언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가져오는 재주를 익혔을까…
  • 주민등록증을 들고 있던 안현승은 엄마의 말을 듣고 노트북의 전원을 끄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바닥에서 주운 거예요.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너무 무서워서 돌려주지 못했어요.”
  • 안윤영은 소파를 내려다보았다. 소파 옆에 검은 가죽 지갑이 놓여 있었다.
  • “…”
  • 그 남자는 딱 봐도 집안이 좋았다. 지금 돌려주지 않았다가 그가 먼저 찾아낸다면 분명 그들을 도둑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럼 죽어도 누명을 벗을 수가 없었다!
  • 안윤영은 힘이 빠졌다. 정말 자신의 아들은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
  • 그녀는 그 가죽 지갑을 들어 내용물을 뒤져보았다. 5만 원 권 여러 장과 여러 개의 카드가 있었다. 그녀는 안에서 명함으로 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 명함은 심플했는데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었다.
  • “고승원…”
  • 안윤영은 중얼중얼 읽어보았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름이었다.
  • 어째 됐든 일단 물건을 돌려주고 생각하자. 아니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이다.
  • 안윤영은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알림음이 몇 번이나 울려서야 그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서늘하고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순간 머리가 쭈뼛 선 안윤영이 해명했다.
  • “안녕하세요. 제가 지갑을 주웠는데요. 저는…”
  • “공항에서 봤던 그 여자?”
  • 안윤영은 멈칫했다. 이 남자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을지 몰랐다. 목소리만 듣고 알아보다니.
  • “네, 저예요.”
  • 고승원은 가볍게 웃었지만 내뱉는 말은 음침했다.
  • “수작이 좋으시네. 다시 만날 이유까지 다 만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