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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안윤영의 그 후레자식은 남기면 안 돼

  • 집으로 돌아온 안윤영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 그러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며칠 후 FM 그룹 송년회에서 그 남자를 만날 텐데. 예지후가 증인을 서준다면 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 화가 난 안윤영과 비하면 안현승은 오늘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았다.
  •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 안윤영은 이상하다는 듯 아들을 힐끗 보며 말했다.
  •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렇게 좋아해?”
  • “아니에요.”
  • 안현승은 고개를 저으며 티비에 향했던 시선을 엄마에게로 돌렸다.
  • 오늘 했던 말은 틀림없이 고승원이 유전자 검사를 하도록 할 것이다.
  • 그럼 자신에게는 아빠가 생긴다. 게다가 권세 있고 잘생긴 아빠가.
  • 가장 중요한 것은 몇 년 동안 고승원의 옆에는 안윤정 빼고는 다른 여자가 없었다.
  •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서든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 이렇게 순결을 지키는 남자는 그나마 자신의 엄마와 어울렸다.
  • 안윤영도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티비에서 재밌는 걸 봤다고 여겼다.
  • “며칠 있으면 예지후 삼촌이 들어오는데, 만날래?”
  • 안윤영은 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 예지후는 송년회 전날에 귀국하겠다고 말했다. 안윤영은 아들과 예지후가 제법 친한 것을 생각해 물어보았다.
  • “예지후 삼촌요?”
  • 안현승은 눈을 반짝이더니 후다닥 일어났다.
  • “일부러 엄마 보러 오는 거예요?”
  • “나 만나로 오는 게 아니고 FM 그룹의 송년회에 참석하러 오는 거야.”
  • 안윤영이 바로잡았다.
  • “아.”
  • 안현승의 얼굴에 실망감이 드리웠다. 반짝이던 검은 눈동자도 빛을 잃었다.
  • 아이는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는 뾰로통해 있었다. 그리고 안윤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 “저번에 엄마가 매정하게 거절한 이후로 예지후 삼촌이 두 달이나 안 왔어요. 다 엄마 탓이에요.”
  • 안윤영은 자신의 아들이 예지후의 편을 들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누르며 진지하게 말했다.
  • “허튼소리 하지 마. 예지후는 해외에 나가서 시장 조사를 하느라 못 온 거니까.”
  • 안현승은 도도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허튼소리 아니거든요!”
  • 안윤영은 넓은 도량을 베풀어 아들과 더 이상 입씨름을 하지 않기로 했다.
  •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안 갈 거면 안 데려갈 거야.”
  • 안윤영은 아들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 “가요, 가요, 가요!”
  • 안현승은 서둘러 말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삼촌이랑은 반드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 사실 안현승은 예지후를 아빠 후보 1순위로 생각했다. 자신이 그의 친아들은 아니지만 예지후는 모든 면에서 훌륭했으니까.
  • 하지만 아쉽게도 엄마는 멍청이여서 혹을 달고 있는 자신이 예지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이제는 친아빠를 찾았다. 조건도 예지후 삼촌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으니 자신의 아빠가 될 자격이 있었다.
  • 안윤정은 며칠 동안 정신이 없었다.
  • 아는 지인 입에서 고승원이 어떤 아이와 유전자 검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 안윤정이 바로 떠올린 것이 안윤영의 그 후레자식이었다!
  • 안윤영이 알게 된 건가? 고승원의 아이라는걸!
  • 안윤정은 현기증이 일었다. 눈앞이 새까매지고 사지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 그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온다면 그녀의 좋은 날은 이제 끝이다!
  • “윤정아, 왜 그래?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 안윤정의 생모인 예영란이 그녀에게 다가서서 다정하게 물었다. 그녀의 손에 금방 끓인 제비집이 있었다.
  • 안윤정은 그녀의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일이 이 지경이 됐으니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 “뭐! 안윤영이 고승원의 아들을 낳았다고?”
  • 예영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들고 있던 제비집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 “엄마, 우리 이제 어떡해?”
  • 안윤정은 조바심이 나서 울고 싶었다.
  • “안 씨 가문 상황 엄마도 알잖아. 고 씨 가문이 없으면 빚쟁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 거야. 그럼 우린 완전히 끝장이고.”
  • 예영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토록 당황스러운 것이다.
  • 안 씨 가문은 예전에 중산층 가정이었다.
  • 하지만 3년 전에 안건평이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 하지만 안윤정이 고승원의 여자이기에 빚쟁이들도 감히 찾아오진 못했다. 그래서 그 일은 이쯤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 예영란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 하지만 그녀는 이내 침착을 되찾았다.
  • “서두르지 마. 고승원이 검사 결과를 보지 못했다면 아직 늦지 않았어.”
  • 가늘게 뜬 예영란의 눈에 악랄함이 스쳤다.
  • “다만, 안윤영의 그 후레자식은 남기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