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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저희 똑같이 생겼잖아요!

  • 남자는 온몸으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는데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안윤영은 마음을 굳게 먹고 앞으로 걸어가 그의 길을 막았다.
  • “당신이 우리 아들 괴롭혔어요?”
  • 남자는 키가 커서 안윤영이 하이힐을 신었지만 여전히 그 사람의 목 밖에 볼 수 없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카리스마를 약하게 만들었다.
  • 고승원은 소리를 듣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 여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는데 이목구비가 정교하고 화려했다. 특히 높이 치켜든 앙증맞은 턱이 오만하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 그녀가 풍기는 은은한 향을 맡은 고승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 이 향기, 왜 이렇게 익숙하지…
  • “엄마, 바로 이 아저씨예요!”
  • 그 순간, 울먹이는 아이의 목소리가 고승원을 현실로 끌어당겼다.
  • 남자는 안윤영의 다리를 안고 있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차가운 호수처럼 깊은 그의 눈동자에 경멸이 스쳤다.
  • 요즘 여자들은 그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작이 갈수록 교묘해졌다.
  • 이렇게 그와 닮은 아이를 찾아오다니.
  • 안윤정 그 여자만 건드렸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고승원 자신도 그 아이가 자신의 씨가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 “당신, 우리 아들한테 사과해요!”
  • 안윤영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애써 주눅 들지 않고 요구했다.
  • “다 큰 남자가 이렇게 어린 아이를 괴롭히고 부끄럽지 않아요?”
  • 고승원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목소리는 항아리에 담긴 오래된 술처럼 낮고 굵직했다.
  • “저 아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얘기 안 했나요?”
  • 안윤영은 당연히 아들 편이었다.
  • “그럼 말해보세요. 제 아들이 무슨 일을 했길래 괴롭혔는지?”
  • 고승원은 콧방귀를 뀌고 발을 살짝 들었다.
  • “이제 알겠어요?”
  • 안윤영은 길게 뻗은 두 다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바지 밑단에서 물기를 발견했다.
  • 설마 이게…
  • 심상치 않은 예감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를 안고 있는 자식을 들어 올렸다. 긴장된 마음에 목소리까지 떨렸다.
  • “너 뭐 한 거야?”
  • 안현승은 억울한 듯 말했다.
  • “아무것도 아니에요. 실수로 아저씨 바지에 오줌을 쌌는데 아저씨가 날 때리려고 했어요.”
  • 안윤영은 타오르던 분노의 불길이 순식간에 걷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민망한 듯 코를 만졌다.
  • 지금부터 사과하면 늦지 않겠지?
  • 이 자식, 잘못했으면 진작에 말했어야지!
  • “죄송합니다.”
  • 안윤영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의 바지 밑단을 쳐다보았다.
  • 남자가 입고 있는 옷에 뚜렷한 브랜드 로고는 없었지만 옷감만 봐도 가격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 “제가 물어드릴 수 있어요.”
  • 이렇게 저질스럽고 간사한 헌팅을 제일 혐오스러워하는 고승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 “아이 단속 잘 하세요. 아무 남자나 만나면 아빠라고 부르지 않도록. 이런 헌팅 방식은 무척 상투적이에요. 그리고…”
  •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내 천 년을 이어내린 깊은 연못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제 옷은 당신이 물어줄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에요.”
  • 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
  • 물 수 없어? 헌팅?
  • 안윤영은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 무슨 저런 남자가 다 있어?
  • 그 남자가 손꼽히는 미남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보자마자 들러붙을 정도는 아니거든?
  • 이번 일은 자신의 아들이 잘못한 것이긴 하지만 안윤영은 남자의 도도한 말투와 오만한 태도에 경멸을 금치 못했다.
  • 자질도 없고 교양도 없는 졸부 주제에! 그렇게 좋은 겉모습만 갖고 뭘 할 거야!
  • “엄마.”
  • 안현승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 그녀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차마 훈계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말랑말랑한 아들의 볼을 꼬집으며 물었다.
  • “아까 아빠라고 부른 거야?”
  • “네.”
  • 아이가 울적하게 대꾸하자 안윤영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스쳤다.
  • “엄마가 아빠 사진 보여줬잖아. 네 아빠는 나쁜 남자야!”
  • 안윤영은 아들의 출생의 비밀을 숨긴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지우민의 사진을 보여줬었다.
  • 하지만 아들은 믿지 않고 매번 반박했다.
  • “우리 아빠는 이렇게 못생기지 않았어요! 내가 잘생겼으니까 아빠도 무조건 잘생겼을 거예요!”
  • 안윤영은 어이가 없었다.
  • 지우민은 바람둥이긴 했지만 절대 못생겼다는 단어와 접점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 안현승은 고개를 쳐들고 고집을 부렸다.
  • “그럴 리 없어요. 엄마는 아까 그 아저씨가 제 아빠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 똑같이 생겼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