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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이상한 남자가 GK 그룹 대표였다!

  • 다음날 아침, 안윤영은 헤어와 메이크업을 정리하고 블랙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 몸매가 아주 좋은 그녀는 각선미가 두드러졌다. 살짝 끼는 정장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감싸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세련되고 성숙한 커리어 우먼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 안윤영은 현승이가 일어나자 같이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급히 집을 나섰다.
  • 그런데 그녀가 나가자마자 안현승이 핸드폰을 꺼내 고승원의 번호를 눌렀다…
  • 높이 솟은 빌딩의 꼭대기 층. 탁 트인 사무실에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앉아있다.
  • 남자는 온몸으로 냉기를 뿜고 있었는데 좁고 긴 눈에 약간의 짜증이 어려있었다.
  • 하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한겨울 바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게 너희들이 처리한 일이야?”
  • 부하직원들은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시간이 흐를수록 공기는 더 싸늘해졌다.
  • 드디어 누군가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 “고 대표님, 이 일은 안윤정 씨가 지시한 겁니다. 저희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 그는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재료를 구매하기로 한 업체가 따로 정해져있었는데 안윤정은 다른 업체를 고집했다. 고 대표님과 그녀의 관계를 아는 직원들은 감히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 안윤정…
  • 고승원은 얇은 입술을 오므린 채 손을 내저었다.
  • “앞으로 그 사람이 내리는 결정은 신경 쓰지 마. 이번에 받은 불량품은 그대로 버리고 다시 구입해.”
  • 모두들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 그들을 탓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 가보라는 고승원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가 혹시라도 번복할까 봐 다들 즉시 밖으로 나갔다.
  •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자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 그의 피부는 하얬고 손가락 마디는 길었다. 그는 두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천천히 문질렀다.
  • 오 년 전, 그는 비즈니스 상의 강적에 의해 약을 먹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안윤정이 그를 구했다…
  • 그것이 그녀의 첫 경험이었다.
  • 그는 그 은혜를 오 년 동안 갚았다.
  • 오 년 동안 그는 그녀의 모든 허영심을 만족시켰다. 원하는 건 뭐든지 주었으니까.
  • 하지만 놀랍게도 그 여자는 만족을 모르고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앉으려 들었다. 제멋대로 주문을 받는 거래처를 바꾸려 들다니!
  • 그럼 이제…
  • 바로 그때, 갑자기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 낯선 번호였다.
  • 고승원은 눈을 내리깔고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고승원 씨인가요? 낭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랑말랑했지만 제법 어른스러웠다.
  • “응.”
  • 고승원이 대꾸했다.
  • 이 목소리는 아마 공항의 그 아이일 터였다.
  • 그는 이 아이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 궁금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아이의 엄마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 기대됐다.
  •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우리 엄마가 곧 아저씨 회사에 도착할 거예요. 아저씨한테 서류를 드릴 건데 그 서류의 마지막 세 번째 페이지에 제 머리카락이 있어요.”
  • 안현승이 서둘러 말했다. 아이는 엄마 몰래 그것을 넣은 것이다.
  • “저는 아저씨 친아들이에요. 믿기 어려우면 그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보세요.”
  • 고승원은 이 상황이 웃겼다. 막 입을 떼려는데 안현승이 제멋대로 말을 끊었다.
  •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제 말대로 하면 돼요. 전 지금 네 살이에요. 오 년 전, 특히 12월에서 2월 사이의 시간대를 떠올려보세요. 접촉한 여자가 있다면 유전자 검사를 하세요.”
  • 안현승은 손에 들고 있는 자료를 뒤적이며 말했다. 종이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빼곡했다.
  • “아저씨는 GK 그룹의 오너이고 수중에 51%의 지분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GK 그룹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계시는 거죠. 저희가 만났을 때 아저씨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어요. 게다가 우리가 혈연관계가 있으니까 제 아빠가 될 자격이 있어요.”
  • 말을 마친 아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한마디 덧붙였다.
  • “유전자 검사는 아저씨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잖아요. 진짜든 가짜든 의심을 지우면 좋은 거잖아요.”
  • 안현승은 그 말을 끝으로 깔끔하게 전화를 끊었다. 고승원이 반격할 틈을 주지 않은 것이다.
  • 고승원은 끊긴 전화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도 어린이한테.
  • 그 아이 엄마의 이름이 안윤영이라고 했었나?
  • 같은 시각, GK 그룹에 도착한 안윤영은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있는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 국내 1위 기업답게 L 시 시 중심의 알짜배기 땅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렇게 큰 빌딩을 매입해 오피스 빌딩을 세운 걸 보면 GK 그룹의 탄탄한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 그녀는 계약서를 들고 프런트로 향했다. 프런트 직원은 바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누구를 찾으시나요?”
  • 안윤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했다.
  • “저는 FM 그룹의 리사라고 해요. 오늘 고 대표님과 약속을 잡았는데 연락해 주세요.”
  • 안윤영이 자신의 신분을 말하자 프런트 직원은 깜짝 놀라는 듯했다.
  • 그녀는 예지후가 퍼뜨린 헛소문을 생각하며 가방에 있던 사원증을 내밀었다.
  • 그녀는 사원증을 갖고 다니는 습관이 없었지만 지난번 일들을 떠올리며 특별히 GK 그룹으로 갖고 왔다.
  • 프런트 직원은 FM 그룹의 로고가 박혀있는 사원증을 확인하고는 그제서야 다시 공손하게 말했다.
  • “리사님 안녕하세요. 고 대표님께서 미리 언질을 주셨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28층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올라가서 왼쪽 방이 바로 대표님 사무실이고요.”
  •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 안윤영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는 사원증을 받아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근무 시간이라 다른 엘리베이터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표님 사무실로 가는 직통 엘리베이터를 탄 그녀는 넓은 엘리베이터에 혼자였다.
  • 대표님 사무실에 도착한 안윤영은 자본주의 미소를 짓고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 “들어오세요.”
  • 낮고 허스키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윤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별생각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 넓고 밝은 사무실에 들어서니 갈색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 테이블 뒤에 앉아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에게서 엘리트의 분위기가 풍겼다.
  • 그는 머리를 숙이고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왁스로 모양을 잡은 흑발과 각진 턱 선이 언뜻 보였다.
  • “안녕하세요. 저는 FM 그룹의 리사예요. 이번에 FM 그룹을 대표해서 GK 그룹과 하게 될 내년 여름의 콜라보에 대해 상의하려고요.”
  • 안윤영은 자신의 신분을 소개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 꼬리가 올라간 눈썹, 검은 눈동자, 오뚝한 코, 얇은 입술…
  •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 고승원이었다!
  • 그녀가 공항에서 만났던 이상한 남자였다! 그가 GK 그룹의 대표이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