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거리 두기에 바빴던 시크하고도 멋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곁에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묵헌은 무심코 눈길을 돌렸는데 마침 눈물이 글썽글썽한 심기의 눈과 마주쳤다. 마치 잠잠한 호수에 돌덩이를 던진 듯 묵헌의 마음에서 미묘하고도 잔잔한 파동이 일어났다.
심기는 예쁜편이다. 오히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한 올 한 올 깔끔하고 길게 올라간 속눈썹, 똘망똘망한 두 눈은 마치 맑은 호수처럼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눈에 담겨있는 듯했다. 눈초리에는 눈물이 맺혀져 눈시울이 붉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꾹 참고 있는 모습에 묵헌은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굴색도 하얗게 질려 몸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묵헌의 마음은 아팠다.
그래서인지 뒷담화를 하고 있던 도우미들을 보는 묵헌의 눈빛이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도… 도련님…”
도우미들은 머리를 푹 숙이고 겁에 질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누가 내 아내를 험담했어?”
심기는 놀란 듯 토끼눈을 떴다. 묵헌이 사람들 앞에서 아내라고 인정해준 것에 의아했다.
심기를 비웃던 도우미들은 묵헌의 날카로운 기에 두려워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묵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우미를 천천히 살펴보더니 말을 꺼냈다.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 자를 수 밖에. 잘리면 어디가서도 안 써줄 거야.”
“저 사람들이에요. 저 사람들이 사모님을 비웃었어요.”
유일하게 심기의 험담을 하지 않은 도우미가 옆에 있던 4명을 지목했다. 험담을 한 4명은 “탁”하고 나란히 무릎을 꿇으면서 잘못을 빌었다.
“도련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작은 사모님,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작은 사모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소숙.”
묵헌은 코웃음을 치면서 불렀다.
“네, 도련님!”
소숙은 경비를 불러 험담을 한 도우미들을 쫓아내려 했다.
심기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용서를 빌고 있는 도우미들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도우미들한테 얕보이고도 용서를 해주는 호구가 아니었다. 용서해주면 도리어 기어 오르려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도우미들이 끌려나가자 로비는 순간 조용해졌다.
묵헌은 겁에 질려 큰 숨도 못 쉬고 있던 도우미들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다음에도 내 아내한테 무례하게 대하면 조용히 안 끝날줄 알아!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묵헌은 가정부에게 자리를 뜨라고 손짓한 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심기에게 다시 눈을 돌렸다. 마음이 복잡했다.
잠시 멈칫한 뒤 말했다.
“그 여자를 찾을 때까지는 네가 이 집안의 작은 사모님이야.”
심기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누구를 찾는데요?”
순간 묵헌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물어서는 안될 것을 묻지 마. 네 주제를 알라고!”
말을 끝낸 묵헌은 소숙에게 위층으로 데려달라고 말했고, 뒤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작은 여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릴 뿐이었다.
심기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심기는 입술을 앙다물며 생각했다.
그래, 누구를 찾든 무슨 상관이야? 그가 나서서 나를 감싸준 것은 가정부들이 그의 체면을 구겼기 때문이야. 나는 어디까지나 서류상의 아내일 뿐이야.
그녀를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심기에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음 날.
잠에서 깬 심기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쓴 뒤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어제 나온 임테기 결과로 밤새 잠을 설쳤고, 결과가 잘못된 것이기를 빌었다.
병원에 들어선 심기는 가방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꺼내 썼고, 혹여나 여씨 집안의 사람을 마주칠까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데 시선을 끄는 변장 때문에 심기는 이목을 끌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지만, 역효과만 낳았다.
마침내 심기의 차례가 되었을 때 의사는 눈만 드러난 그녀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물어보려던 찰나 ‘쿵’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옷을 입은 크고 건장한 사내들이 갑자기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당, 당신들 누구야! 경비원!! 여기 난동부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심기 역시 맹렬한 기세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내들을 보고 놀라서 몸을 일으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일어서자마자 검은 옷의 사내들이 그녀를 붙잡아 어깨에 들쳐메고는 밖으로 데려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놔 줘!”
찢어진 마대자루처럼 매달려 있던 심기는 머리에 피가 쏠려 견디기 힘들어졌고, 자신을 어깨에 메고 가는 사내를 마구 때리며 외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
서롱 지역의 별장.
“사람은?”
텅 빈 별장을 본 묵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병원 산부인과 쪽에서 행적이 수상한 여자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묵헌은 하던 일도 제쳐두고 곧바로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