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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네가 가질래?

  • 회의실.
  • 심기는 묵헌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등장에 회의실의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 묵헌의 곁은 항상 소숙 뿐이었는데 갑자기 웬 여자가 나타났으니 누구나 할 것 없이 둘사이를 궁금해했다.
  • 심기는 비서직을 맡은 적 있었지만 이렇게 웅장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여씨그룹의 회의실은 북성의 재벌그룹답게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 회의실로 들어가자 심기는 왠지 모르는 기에 꺾여 어깨가 축 처지게 됐다. 하지만 온갖 시선을 견디며 묵헌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 모든 시선은 심기에 주목됐다.
  • “대표님, 이분은?”
  • 누군가 말을 꺼냈다.
  • 여병헌은 여씨그룹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어 회의실에 있었다. 병헌도 역시 회의실로 들어오는 심기를 보고 의아해했다.
  • 심기는 옷자락을 꽉 움켜쥐면서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마주쳤다. 이때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는데 바로 병헌이였다.
  •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마주치면서 병헌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었고 심기는 고개를 끄떡였다.
  • 이때문인지 긴장했던 심기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녀도 병헌에게 미소를 보내며 병헌이 정말로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이때 심기와 병헌의 행동을 묵헌이 지켜보고 있었다.
  • 묵헌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하면서 날카로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말했다.
  • “간병인입니다.”
  • “네?”
  • 간병인이라는 말에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어리둥절했다.
  • 심기도 묵헌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 “대표님, 방금 간병인이라고 했습니까?”
  • 묵헌의 눈망울은 알수없는 밤처럼 어두웠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뜨더니 대답했다.
  • “회장님께서 붙여주신 간병인입니다. 앞으로 저의 일상생활을 보살필 사람입니다.”
  • 모욕스러운 말에 심기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채 묵헌을 바라봤다. 자신은 비서로 온 건데 왜 간병인이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커피 타와.”
  • 생각에 잠겨있던 심기에게 묵헌이 갑자기 지시를 내렸다.
  • 심기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소숙이 눈치를 주자 그제야 커피를 타러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 다시 돌아왔을 때 회의는 이미 시작되어 심기는 커피를 묵헌의 앞에 두었다. 하지만 묵헌은 한 모금만 마시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 “다시타와! 너무 달아.”
  • 그 뒤로 회의실에는 묵헌의 까탈스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싱거워.”
  • “뜨겁잖아.”
  • “너무 미지근해.”
  • 커피 한잔 때문에 심기는 회의실을 여러 번 왕복했다. 회의실은 묵헌이 사람들 앞에서 심기에게 수치를주는 구경거리가 되었고 주변의 시선 때문에 심기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 더는 참을 수가 없어 화를 내려다가 가족 사정을 생각해 꾹 참고 다시 커피를 타러 나갔다.
  • 심기는 다시 돌아와“탁!”하고 잔으로 강하게 책상을 내리쳤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놀랬다.
  • “고작 이런 일도 못하면서 간병인 하겠다고?”
  • 묵헌의 말에 심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 가까이에 앉아있던 병헌이 지켜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 “묵헌아, 그만해.”
  • 형이 심기 편을 들다니. 묵헌은 심기가 보통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그리고는 냉소를 지었다.
  • “형님, 이 간병인이 안쓰럽나요? 그럼 형님이 가져갈래요?”
  • 심기는 입술을 꽉 깨물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곁에 남게 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수모를 주려고 곁에 둔 것이였다. 그저 돈과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재벌가에 시집오려는 여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토록 자신을 싫어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헌아, 너 왜 그래? 아무리 그래도…. 심기는 너의..”
  • 아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묵헌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 “커피 한잔 타오라는데 뭔 대수라고. 본부장님 오지랖이 심하시네요?”
  • 병헌이 더 말하려고 했지만 심기가 그의 말을 끊었다.
  • “대표님, 커피 다시 타오겠습니다.”
  • 심기는 곧바로 잔을 들고 나갔다.
  • 한잔, 두잔, 세잔…
  • 회의가 이어지는 동안 심기는 쉴 틈 없이 왔다 갔다 하면 커피를 새로 가져왔다. 묵헌은 계속 트집을 잡았지만 심기는 아무런 불만도 내색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났으나 심기는 계속해서 커피를 타야만 했었다.
  • 회의실의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소숙이 보다못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도련님, 그만해도 되지 않을가요? 이만하면 혼을 내준 것 같은데요.”
  • “이런 여자는 혼을 내주지 않으면 우리 집안이 만만한 줄 알고 옆에서 계속 알짱거릴 거야.”
  • 묵헌은 냉소를 지었다. 그는 심기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인지 알고 싶었다.
  • 심기는 커피를 얼마나 탔는지 셀 수 없을 만큼 탔다. 어지럽고 힘들어 도저히 못 하겠다는 생각에 회의실로 들어갔는데 묵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 테스트에 합격했는지 말해주지도 않고 사라진 묵헌을 찾으러 심기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회의실에서 나갔다.
  • 심기가 회사 건물 밖에 나왔을 때 묵헌은 전용차를 타고 여씨그룹을 떠나고 있었다.
  • 또 다시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