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8화 임신

  • 이후 며칠이 지나도 묵헌은 심기를 내쫓지도 않았고 회사로 출근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 다만 심기가 옆에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려먹으면서 괴롭혔다.
  • 1주일 동안의 높은 업무 강도에 심기는 지칠 대로 지쳤다.
  • 이날 아침, 평소처럼 회사로 출근하려던 참에 심기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몸도 무겁게 느껴졌다. 심지어 양치할 때 매스꺼움이 올라와 헛구역질하면서 겨우 양치를 마쳤다.
  • 최근 들어 헛구역질을 자주 하게 되어 음식을 잘못 먹은 것이 아닌가 의심을 했었다. 목도 간지럽고 감기에 걸린 것 같아 오늘은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 한편, 이미 회사에 도착해 업무를 보고 있던 묵헌은 시간을 봤다.
  • 출근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났지만 심기가 보이지 않자 그녀의 끈기가 고작 이 정도뿐이라고 생각했다.
  • “똑똑.”
  • 노크 소리가 들렸다.
  • “들어와.”
  • 심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묵헌은 왠지 모르게 실망했다.
  • “도련님, 오늘 검토해야 할 서류와 미팅 일정입니다.”
  • 소숙은 공손하게 서류를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 “산부인과에 사람을 보냈는데 아직 수상한 여인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 “알았어.”
  • 묵헌은 손짓으로 나가라고 했다. 소숙이 나가려던 참에 대수롭지 않은 척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그 여자는 아직도 출근 안 했어?”
  • 소숙은 묵헌이 왜 물어보는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바로 눈치를 채면서 대답했다.
  • “네, 대표님. 사모님은 아직 출근전입니다. 아마도 포기한 듯싶습니다.”
  • “알았어.”
  • 묵헌은 짧게 대답하고 계속해서 서류를 검토했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 한편 병원.
  • 심기는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갔다. 진료를 보더니 의사 선생님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다.
  • “환자분 최근 들어 잠이 많아지고 속이 매스껍고 화장실도 자주 가지 않아요?”
  • 심기는 머리를 끄덕였다.
  • “네, 선생님. 제가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건가요? 감기 증상은 아닌 것 같아서요…”
  • 의사는 한심한 듯 심기를 힐끗 보더니 계속해서 물었다.
  • “마지막 생리는 언제 끝났어요?”
  • “아마도 한 달은 지났어요.”
  • 심기는 날짜를 세면서 대답했다.
  • 문뜩 뭔가 생각이 났는지 심기의 표정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
  • “최근에 부부생활을 한 적이 있죠? 자기의 몸을 스스로 챙겨야 해요. 우선 처방은 해드리지 않을게요.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한번 보세요.”
  • 심기는 혼이 나간 듯 병원에서 나왔다.
  • 산부인과에 가기에 두려워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초조하게 테스트 결과를 기다렸다. 임테기에 한 줄이 뜨자 낯빛이 안 좋던 심기의 얼굴은 말할수 없이 창백해졌다.
  • 평평한 아랫배를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 그날 밤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고, 처음이라 당황스러워 급히 집으로 도망갔었다. 이후 집안 사정으로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되어 상심이 커 사후피임약을 챙겨먹었어야 했는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 뱃속에 그 남자의 아이가 있다니 심기는 믿기지 않는 듯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 혼란스럽지만 임테기 결과가 틀릴 수도 있으니 산부인과에 가서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다.
  • 결심을 하고 나서 심기는 임테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로 나왔다.
  • 제 발 저려서인지 묵헌이 갑자기 나타날까 봐 주변을 살펴보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
  • 감기에 아이를 가지게 되어 몸이 무겁고 머리도 어지러워 침대에 누웠다. 해가 질 때까지 자고나서야 깨어났다. 심기는 배가 고파 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으려 했다.
  •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도우미들은 심기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고 심지어 한 명과 크게 부딪쳐 심기는 계단에 주저앉았다.
  • “어머, 죄송해요. 작은 사모님이셨네요. 저는 도우미인 줄 알았어요. 일으켜 드릴까요?”
  • 도우미는 말만 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 심기는 도우미를 쳐다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려는 심기의 마음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 “흥! 여가에 시집오면 사모님이라도 된 줄 알아? 작은 도련님이 쳐다보지도 않으면 도우미만도 못한 주제에.”
  • “그러게 말이야. 촌스러운 꼴을 봐. 어디 봐서 사모님 같아? 소문으로는 작은 도련님이 간병인으로 부려 먹는다던데.”
  • “내가 쟤라면 짐을 싸고 나갔을 거야. 쪽팔리게 이게 뭐야.”
  • “그런 여자는 뻔뻔하니까! 돈이라면 뭐든 못하겠어?!”
  • 멈추지 않는 모욕적인 말에 창백한 심기의 얼굴을 더욱 창백해졌고 여리여리한 몸도 떨려오기 시작했다.
  • 심기가 올라가서 말을 하려던 참에 차갑고도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언제부터 도우미 주제에 주인도 못 알아보고 예의 없이 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