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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도련님 결벽증 있으시잖아요

  • 다음 날 아침.
  • 하민정은 식탁에 앉아 도우미가 끓인 대추차를 마시고 있었고 옆에 계시던 우 할머니는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 “민정아, 난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무척 들었단다. 앞으로 아진이 괴롭히면 나한테 얘기해. 할머니가 대신 혼내줄게… 마셔. 대추차도 많이 마시고 빨리 내 품에 증손주를 안겨다오… ”
  • 우 할머니는 머리가 파 뿌리처럼 하얘졌지만 정신 연령 젊은이였고 하민정은 인자하고 유머가 넘치는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 이때 도우미들의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 “도련님, 좋은 아침입니다. ”
  • 우아진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 하민정은 얼굴을 들어 보았다. 우아진은 흰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었고 전형적인 훈남 차림새였다. 다림질이 잘된 셔츠는 주름 하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레드카펫에서 걸어 내려오며 우아한 귀티를 뿜었다.
  • 뒤이어 연로하신 시 할머니도 따라서 내려왔고 손에는 매화가 그려진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 시 할머니는 웃으며 우 할머니를 보고 인사를 했다.
  • “축하드립니다. 빨리 증손자를 안아보시기를 바랍니다. ”
  • “고마워요. 집사, 돈 봉투 좀 가져와 봐! ”
  • 우 할머니는 통 크게 돈 봉투를 나눠줬다.
  • 하민정은 그 손수건을 보는 순간 알았다. 옛날 어르신들은 자식이 첫날밤을 치른 후 피가 묻은 천으로 손수건을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저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핏자국의 매화꽃은 어디서 온 것일까?
  • 이때 우아진이 그녀의 옆에 다가와 섰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그녀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
  • “내가 한 거야. 잘한 거 맞지? 너 아직… 처녀 맞는 거지? ”
  • 훅 들어온 그의 질문에 모태 솔로인 하민정은 귓불까지 빨개졌다.
  • 이때 두 사람은 우연히 친밀한 자세를 하게 되었고고 우진은 몸을 낮춰 하민정의 귀에 대고 말하는 모습은 정말로 사랑이 넘치는 신혼부부 같았다.
  • 우 할머니는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말했다.
  •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안 볼게, 안 볼게. 계속해. ”
  • 그러면서 우 할머니는 손 사이로 몰래 봤다.
  • 우아진은 하민정의 빨개진 귓불을 보고 잘생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너 아직 스무 살 아닌 거 아니야, 열아홉 살이니까, 아직… 잔 적 없겠지? ”
  • 하민정은 아직 어렸고 고작 열아홉 살이었다.
  • 우아진은 스물일곱 살, 지나가기만 해도 남자의 향기를 풍기는 나이었다.
  • 그가 이렇게 몰아붙이듯 가까이 다가오자 하민정은 그의 숨소리가 간지러워 뒤로 피했다.
  • “먹을래? ”
  • 하민정은 몸을 돌려 숟가락에 있던 수프를 먹여주며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 옆에 있던 집사가 급히 소리쳤다.
  • “사모님, 사모님 숟가락입니다! ”
  • 도련님은 심각한 결벽증이 있었다. 사모님의 숟가락을 썼으니, 집사는 한달음에 입가심액을 가지러 갔다.
  • 하민정의 긴 속눈썹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저 그의 입을 닫으려 했는데 자기 숟가락으로 먹이다니, 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 우아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입 안에 있던 음식을 넘겼다.
  • 집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련님이…어찌한 일로?
  • ‘도련님 결벽증 있으시잖아요. 잊으신 겁니까? ’
  • 우 할머니는 만족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일흔 살이 넘으니 사람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었는지 첫눈에 자기 손주와 하민정이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좋아, 둘이 같이 대추 수프를 마셨으니, 민정의 배가 곧 불러오겠구나. ”
  • 우 할머니는 어린이처럼 좋아했다.
  • 하민정은 우아진이 썼던 그 숟가락을 들고 고민했다. 그 숟가락을 계속 쓸까, 말까?
  • 이때 우진이 자리에 앉으며 관심을 보이는 듯 물었다.
  • “왜 안 먹어, 얼른 식기 전에 먹어야지. ”
  • “…”
  • 하민정은 우아진이 고의적인 것 같았다. 숟가락 하나를 같이 쓰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았다.
  • 그러면 두 사람은 간접…키스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 “맞아. 민정아, 얼른 먹어. 한 그릇 더 떠줄게. ”
  • 우 할머니가 말했다.
  • 하민정은 숟가락을 들고 와서 후다닥 먹어 치웠다.
  • “할머니, 저 배불러서 그만 먹을게요. ”
  • 그녀의 행동이 귀여웠는지 우아진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 ……
  • 아침을 먹은 뒤, 우 할머니가 하민정을 보고 물었다.
  • “민정아, 조금 이따 스케줄 있니? ”
  • 하민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 “할머니, 저 본가에 다녀오려고요. ”
  • “본가에 다녀오는 것은 당연한데. 아진아, 준비하고 민정이랑 같이 다녀와. 선물도 들고 가고. ”
  • 우 할머니는 우아진을 불렀다.
  • 하민정은 막아 나서고 싶었다. 이때, 우아진이 걸어왔다.
  • “그래, 같이 가자. ”
  • 두 사람은 YL 별장을 나섰다. 우아진은 신사답게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 “타. ”
  • 하민정은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 “이제 안 보이니까, 볼일 보러 가. 난 택시 불러서 가면 되니까. ”
  • 우아진이 말했다.
  • “할머니 앞에서 연기하기로 했잖아. 타, 같은 말 세 번 하게 하지 말고. ”
  • 정말 독불장군이 따로 없었다.
  • 한편 하민정은 기뻤다. 그가 어제의 타협을 받아들인 것이니까!
  • 하민정은 거절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 두 사람은 아무 대화도 없었고 차는 달리고 있었고 민망함을 피하려고 하민정은 얼굴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 창문에는 우아진의 그림자가 비쳤다. 열심히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 두 손은 핸들을 잡고 부드럽게 돌리는 모습.
  • 하민정은 그의 손에 걸린 명품 시계를 보자 몇십억은 나가는 시계였다.
  • 그가 어떤 신분인지는 몰랐지만 두 사람 사이의 협의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하씨 가문에서 자유를 얻기엔 충분했다.
  • 하민정은 다시 눈길을 돌려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
  • ……
  • 반 시간 지나, 하씨 가문의 문 앞에 도착하고 하민정은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다.
  • 하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 “내가 해줄게. ”
  • 우아진은 몸을 돌려 그녀를 향해 긴 팔을 뻗어왔다.
  • 하민정이 손을 떼자, 우아진이 풀어줬다.
  • 사실 우아진은 어제부터 하민정의 몸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다. 지금, 이 순간도 가깝게 있으니, 다시 한번 맡을 수 있었다. 그녀의 향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