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정은 마음이 졸였다. 이 혼사는 전 세대가 정해준 것이었다. 오션 시티에서 사대 명문가는 우 씨, 가 씨, 곽 씨, 소씨 가문이었다.
우씨가문의 도련님은 이 시대의 제일 젊고 멋진 사업가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은 없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YL 별장은 외진 곳에 있어 한눈에 보아도 재벌가는 아닌 것 같았다. 하씨 가문에서도 사람을 시켜 YL 별장을 조사했었는데 조사 결과 YL 별장에는 그저 할머니와 손주 두 사람이 지내고 있고 그 손주가 바로 병에 시달린 유령 같은 남자라는 것이었다.
이천효의 제일 튼 소원이 바로 두 딸을 오션 시티의 사대 명문가에 시집보내는 것이었다. YL 별장에 대한 이 조사 결과를 보고 이천효는 조상들의 무덤이라도 파헤쳐 왜 이런 혼사를 약속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이천효는 딸을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하준상은 유교적인 마인드라 조상들이 정해놓은 혼사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딸은 시집보낼 수 없으니, 이천효는 하민정을 떠올렸고고 그녀를 데려와 액막이 신부 노릇을 시키기로 했다.
하민정의 인지에서는 눈앞의 이 남자는 분명 직위가 높고 명성과 위세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를 마주한 그녀는 너무 의아했다.
눈앞의 이 남자는 모든 거동에서 우아하고 냉철한 분위기를 풍겼고 마치 왕이 명령을 내리는듯했다.
뒤뜰에 늑대를 키우다니, 늑대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하민정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두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눈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집사는 안색이 변하더니 신속하게 말했다.
“도련님, 지금 당장 주치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
하민정은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두 손은 핏줄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고 병이 도진 것 같았다.
이 사람, 진짜 아픈 걸까? 아주 심각한 질병 같았다.
이때 하민정은 그 남자의 빨개진 두 눈을 마주 보았다. 우아진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보고 집사를 향해 소리쳤다.
“이 여자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게 해! ”
집사는 신속하게 대답했다.
“사모님, 빨리 가시죠. ”
하민정은 가면 안 됐다. 이번에 하씨 가문에 돌아온 목적은 YL 별장의 신부라는 신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민정은 맑은 두 눈으로 우진을 쳐다보며 거침없이 물었다.
“어디가 아픈 거지, 어떤 병이야? 한의학전공이라 침이라도 놔줄게, 치료를 돕고 싶어. ”
우진은 온 힘을 다해 입을 오므리고 입에서 두 글자를 뱉었다.
“꺼져! ”
하민정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까부터 네 몸에서 백합, 복령, 천마 등 진귀한 약재의 냄새를 맡았어. 이것들은 불면증을 치료하는 데 쓰이지… 내 생각이 맞았다면 넌 불면증이 있을 거야, 밤에 깊이 자지 못하는. ”
집사는 놀란 표정을 하고 하민정을 쳐다봤다.
“사모님… ”
하민정의 맑은 두 눈으로 우아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마나 심각한 거야? 불면증도 일정한 정도를 지나치면 사람의 정신상태를 위협하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괴팍해질 수도 있고.”
우아진의 두 눈은 점점 더 붉어지더니 그는 손을 내밀어 하민정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았다.
소녀의 가녀린 목은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
“사모님, 그만 자극하세요! 도련님, 사모님 놓아주세요! ”
집사가 급해서 달려갔다.
호흡이 어려워진 하민정은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그녀는 손을 돌려 있는 힘껏 우진의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
우아진은 손을 놓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하민정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것 같았다. 공포를 느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너무 위험했다. 신비로운 정체에다 수면장애를 앓고 있어 악마로 돌변하기까지 하니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는 물러날 데가 없었다. 그저 도박을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하민정은 호흡을 가다듬고 그의 뒤로 다가와 소매를 걷고 그의 태양혈을 누르기 시작했고 천천히 강약조절해가면서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우아진의 잘생긴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네가 말한 치료가 바로 마사지해주는 거였어? ”
“영광인 줄 알아, 내가 처음으로 마사지해주는 남자니까. ”
“너도 처음 나를 마사지해주는 여자니까 영광인 줄 알아야지.”
“… ”
대화할 수 없었다.
“나를 옆에 두고 사이좋게 지내자. 서로 사적인 부분은 관여 안 하는 거로 해. 난 할머니 앞에서 연기해줄게. 그리고 네 옆에서 불면증도 치료해줄 수 있어. 어때? ”
우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민정은 길고 가는 침을 꺼내고 우아진의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 우아진은 눈을 감고 소파에 스르륵 미끄러져 누웠다.
하민정은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받들었다.
그는 잠이 들었다.
옆에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집사는 너무 놀라 식은땀을 흘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우아진의 신분을 알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도련님은 우가네의 주인이고 타고난 금수저에 똑똑한 머리까지 타고나 십 대 시절에 이미 상계를 뒤집어 놓으신 신화에 나올법한 존재였다.
‘지금껏 아무도 먼저 도련님과… 협상을 한 적이 없는데, 이 여자아이가.’
지금까지 도련님을 본 여자애들은 모두 두 눈이 하트가 되어 도련님의 품에 안기려 들었지, 사모님처럼 특별한 분은 처음이었다. 병이 도진 도련님을 보고도 침착하고 솔직하고 지혜로운 모습까지 보이다니.
더구나 기적처럼 도련님을 재우다니! 도련님은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고 계셔서 이미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는데!
도련님의 불면증 치료를 책임지는 의료진들도 모두 세계적으로 최상급의 의사들이건만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는데, 지금 도련님이 사모님의 손을 받히고 잠들다니!
“사모님… ”
집사가 소리를 냈다.
하민정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소리를 내지 말라는 사인을 줬다.
“여긴 내가 있을게요, 나가보세요. ”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사는 사모님의 말에 안심하고는 그녀의 분부대로 물러갔다.
……
방안은 조용했다.
하민정은 그가 깊이 잠이 들자 그의 머리를 소파에 내려놓고 이불까지 잘 덮어줬다.
모든 일을 끝나고 하민정은 잠옷을 바꿔입고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이때, 소파에서 우아진이 눈을 떴고고 잠에서 깨어났다.
우아진은 침대 머리로 다가가 긴 손가락으로 하민정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걷으려 했다.
그러다가 멈췄다.
그는 곤히 잠든 그녀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만약에 눈을 뜨면 예쁜 두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겠지?
순수와 매혹스러움 결정체였다.
우아진은 그녀의 목에 난 빨간 자국을 보게 됐다. 조금 전 목을 졸랐던 탓에 그녀의 여린 피부가 자극을 받았다.
우아진은 다시 소파로 돌아와 누웠다.
그의 불면증은 점점 더 악화하여가는 중이었다. 절대로 그녀의 침을 맞는다고 해서 치료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의술은 정말로 놀라웠다. 잠시나마 그녀의 손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약 십분 뒤.
그는 오랫동안 십분 이상의 숙면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우아진은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려 그녀 뒷모습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손은 어쩜 그렇게 작고 부드러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