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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손

신이 내린 손

다크비숑

Last update: 2024-04-20

제1화 오빠한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 “임찬, 데릴사위로 들어왔으면 넌 이제 우리 집에 시집 온 ‘년’이니까 삼종사덕을 지키는 건 물론 네 ‘처갓집’과도 모든 연락을 끊어야 돼, 알았어?”
  • “그건 네 여동생이야, 왜 우리가 돈을 팔아 그런 사람을 구해야 되는데?”
  • “허,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네 여동생 목숨도 목숨이라고 누가 쳐주던? 너네 임씨 가문은 그냥 미천한 종자일 뿐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데릴사위로 여기 들어올 생각이나 했겠어?”
  • 병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임찬의 귓가에서 그의 아내인 허윤하의 가족들이 그에 대한 비아냥소리가 계속하여 울려 퍼졌다. 원래 비할 바 없이 휘황찬란했던 대가족에서 태어났던 임찬은 그가 12살이 되던 해에 집안에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치면서 하룻밤 만에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때 당시 아버지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고 크게 다치셨던 어머니가 그와 그의 여동생인 임희를 겨우 끌고 집에서 도망을 나왔었다. 하지만 그렇게 5년을 견디신 어머니도 결국에는 병환이 재발하여 돌아가시게 되었고 여동생 임희와 임찬만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 그때 그의 가문에 왜 그런 재난이 닥치게 된 건지 임찬은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그에게 꼭꼭 감춰두었던 옥패를 소중하게 건네주었었는데, 비록 자세한 얘기는 안 하셨지만 가문의 몰락이 이 대대로 전해 온 옥패 때문에 시작된 건 아닐까라고 임찬은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가 그 옥패에는 임씨 가문이 흥성할 수 있었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말했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17살이었던 임찬에게는 여동생을 책임져야 된다는 임무가 떨어지게 되었다. 비록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3년 전 임희가 백혈병에 걸리면서부터 동생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임찬은 할 수없이 예물로 2천만 원을 받고 허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었었다. 지난 3년간 임찬은 허씨 가문에서 갖은 압박과 착취를 당하고 또 치욕스러웠던 상황도 셀 수 없이 처했었지만 그래도 그는 참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병세가 나날이 악화되었던 동생에게도 드디어 그녀와 알맞은 골수를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수술하기 위해서는 5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했는데 출장을 나간 아내 허윤하의 전화가 통하지 않자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었던 임찬은 허씨 가문에 찾아가 돈을 빌리려 했었지만 잔인하게도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 다시 병원으로 달려온 임찬은 이를 꽉 깨물더니 눈 앞의 문을 밀고 과장 사무실로 발을 들였다. 사무실 책상 앞에는 안경을 낀, 태도가 거만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 병원의 과장 조가범이었다. 이 조가범이라는 자는 허윤하의 학교 선배로서 예전에 허윤하를 따라다녔었던 구애자 중의 한 명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3년 전 허윤하가 임찬과 결혼을 했을 때에도 저 조기범이라는 사람은 임찬의 뒷담화를 제일 많이 깠던 사람이기도 했다.
  • 허윤하의 가문이 의료 비즈니스에 몸을 담고 있었던 지라 임찬은 허윤하에 의해 병원에 안배되어 진료를 봐주고 했으나, 낙하산이라는 이유때문에 과장이 된 조가범에 의해 곳곳에서 트집을 잡히면서 결국에는 바닥청소나 하게 되는 위치까지 떨어지게 됐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던 사람으로부터 일개 청소원으로 전락하게 됐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임찬의 동생이 조가범이 있는 과에 내원해 있었던 터라 임찬은 울분을 참으며 화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의 목숨만 살릴 수 있다면야 그는 뭐라도 할 수 있었다.
  • “조 과장님.”
  • 임찬이 그에게 애원했다.
  • “윤하가 출장을 갔는데 많이 바쁜지 전화를 안 받아서요… … 혹시 임희 수술을 먼저 안배해주시면 수술비는 제가 어떡해서든 꼭 마련하겠습니다!”
  • “허허허.”
  • 조가범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 “임찬 씨, 그쪽도 병원에서 짧은 시간을 다닌 건 아닐 텐데, 병원 규정을 모르진 않겠죠. 5천만 원이 적은 금액도 아니고 나중에 임찬 씨가 나 몰라라 하면 저는 어떡하라고요?”
  • 임찬은 화가 나는 것을 느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조 과장님, 제가 병원을 3년이나 다녔는데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던가요?”
  • “그거야 모르죠!”
  • 조가범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데릴사위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공짜 밥이나 얻어 먹는 것에 습관된 사람이라면 나중에 빚을 떼먹는다 해도 놀라울 일은 아니죠.”
  • 임찬은 얼굴색이 급변하며 이를 악물었다.
  • “조 과장님, 전 병원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월급을 1원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그 돈을 다 더해도 5천만 원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제 윤하가 돌아오면 제가 나중에 다시 돈을 빌려… …”
  • “나중에 말고 지금 빌려요!”
  • 조가범이 웃으며 말했다.
  • “아, 맞다. 듣기로는 윤하가 그쪽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서요? 아니면 이렇게 합시다. 제가 윤하에게 전화를 걸어보죠.”
  • 말을 마친 조가범은 핸드폰을 들어 허윤하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자 연결음이 울린지 3번 만에 전화가 통하더니 서늘한 허윤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조 과장님, 무슨 일이세요?”
  • 임찬은 문득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지난 며칠간 그가 걸었던 몇 백 통의 전화를 하나도 받지 않던 그녀가 조가범의 전화는 한 번에 받았다? 그 사실이 설명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3년 동안 부부로 살면서 비록 부부로서의 결실은 맺진 않았지만 임찬 또한 그녀에게 못해준 것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받아들이고 간이고 쓸개를 빼주며 그녀에게 잘해줬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이라곤 이것 뿐이었는가?
  • “아냐, 별 건 아니고 그냥 안부 인사하려고 전화한 거지, 뭐.”
  • 조가범이 으쓱거리며 임찬을 향해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가슴이 답답해진 임찬이 입을 떼려던 찰나 조가범이 먼저 선수를 쳤다.
  • “윤하야, 미안한데 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전화 먼저 끊을게.”
  • 조가범은 전화를 다급히 끊으며 임찬에게 말을 꺼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 “임찬 씨, 보셨죠? 윤하는 바쁜 게 아니라 그쪽 전화를 받기 싫은 것뿐이에요.”
  • 조가범이 임찬을 흘겨보며 말했다.
  • “최근 몇 년 동안 공짜 밥을 먹다 보니 습관 되었나 보죠? 허씨 가문이 그쪽에게 베푸는 걸 당연시하게 받아들일 만큼?”
  • 임찬이 주먹을 꼭 쥐었다. 동생의 위기, 아내의 냉담함 및 장모님 일가의 조롱까지, 이 모든 건 임찬을 거의 멘붕 상태로 몰고 갔다. 그때 조가범이 갑자기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 “아니면 제게 방법이 있긴 한데 알려드릴까요?”
  • 임찬은 조가범을 바라보며 이를 꽉 문 채 낮은 소리로 물었다.
  • “그게 뭔데요?”
  • “임찬 씨한테는 2개의 콩팥이 있잖아요. 그거 하나 팔면 수술비는 될 지도 모르겠네요.”
  • 조가범이 계속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어차피 전 세계 사람들이 윤하가 그쪽과 합방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 텐데. 콩팥을 2개나 남겨서 뭐 한대요? 하하하!”
  • 얼굴이 창백해진 임찬이 조가범의 사무실을 나서며 넋이 나간 모습으로 동생의 병실을 찾았다. 하지만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임찬은 병실의 주인이 바뀐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낯빛이 확 바뀐 그는 다급히 물었다.
  • “당신, 당신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제 동생은요?”
  • 병실에 있던 환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임찬을 힐끔 바라보며 대답했다.
  • “아까 그 여자 아이 말하는 거죠? 진료비를 납부하지 않아서 밖에 버려진 것 같던데요?”
  • “뭐라고요?”
  • 임찬은 크게 소리 지르며 재빨리 밖으로 내달렸다. 그가 계단 쪽 가까이에 도착할 때쯤, 밖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사람이 위에서 떨어졌어요!”
  • 급급히 뛰어간 임찬은 병원 밖 마당 피바다 속에 누워 있는 연약한 체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그의 여동생 임희였다.
  • “임희야!”
  • 임찬은 처량하고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헐레벌떡 달려가 피바다에 쓰러진 임희를 품에 끌어안았다.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던 임희는 임찬을 발견하자 가냘픈 얼굴에 겨우 웃음을 머금었다.
  • “오빠,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가 오빠 짐이래. 나 더 이상 오빠한테 폐를 끼치기 싫으니까 먼저, 윽! 먼저 가 있을게… … 그러니까 오빠는 꼭… … 잘 있어야 돼… …”
  • “임희야, 누가! 누가 그런 쓸데 없는 소리를 해!”
  • 임찬이 고개를 홱 돌려 부르짖었다.
  • “살려주세요! 사람 좀 살려달라고요!”
  • 멀리서 의사와 간호사 몇 명이 달려 나왔지만 곧 조가범에게 제지 당했다.
  • “저 사람들 병원에 5백만 원을 빚졌거든요? 사람을 살려내면 그 비용은 당신들이 낼 거예요?”
  • 조가범의 말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겁을 먹었는지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 “오빠, 돈 낭비하지 말고… …”
  • 임찬의 팔을 꼭 잡은 임희의 입가에서 연신 피가 울컥하고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 “나, 오빠가 내 오빠여서… … 너무 행복했다? 근데, 근데 삶이 너무… … 너무 짧은 게 아쉬워… …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나… … 나 다음에도 오빠 동생 할래… …”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희의 손이 힘을 잃고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임찬은 가슴이 칼로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을 느끼며 임희를 품에 꼭 안은 채 처절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 “임희야! 떠나지 마! 안 돼… …”
  • 두 사람의 주위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중의 누군가가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 “저, 저 사람 눈물이… … 빨간색이야!”
  • “피 눈물이야, 피 눈물!”
  • 임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빨간색을 띠며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려 임희의 피와 한데 섞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까 섞였던 피가 임찬의 가슴에 달고 있던 옥패에 서서히 스며드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그 순간 임찬의 머리가 웅- 울리더니 오랜 세월을 겪은 듯한 황량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전해졌다.
  • “나는 임씨 가문을 설립한 신의성수 임숭헌이라 한다. 내 일평생 배운 모든 것들을 이 옥패에 숨겨놓았으니 훗날 나의 자손들은 임 씨 혈맥으로 옥패의 봉인을 풀어 나의 전승을 받아 의술로 세인을 구제하고 천하의 백성에게 이로이 할 수 있을 것이니라!”
  • 들려오던 소리가 멈추고 뒤이어 방대한 양의 정보들이 순식간에 임찬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임찬은 그만 자신의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통증이 일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주입되던 정보들이 멈췄고 임찬이 다시 눈을 뜨게 됐을 땐 그의 두 눈동자에서 무려 빛 줄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품에 안긴 동생을 내려다본 임찬은 그녀의 생기가 아직 완전히 끊기지 않았음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임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혈자리 몇 곳을 눌러 아직 남은 생기를 잡아두고 그녀를 안은 채 병원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