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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경멸

  • 룸에는 두 사람만 있었다.
  • 이유진은 안쪽을 훑어보다 시선을 자신의 딸에게 고정했다.
  • 아이는 방금 강서윤과 떨어져 시무룩해 있던 찰나 자신의 아빠를 보고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짐짓 화가 난 척 고개를 홱 돌렸다.
  • 이유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 “작은 아가씨, 괜찮아요?”
  • 부녀 모두 무뚝뚝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비서인 나선우가 나서서 물었다.
  • 아이는 그를 힐끔 보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상대를 하지 않았다.
  • 나선우는 아이를 찬찬히 살피고 나서 무사한 것을 보고는 시름을 놓고 이유진에게 보고했다.
  • 이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딸의 곁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 둘의 눈이 마주치자 서희주는 움찔하며 주먹을 꽉 쥐며 침착하려 애썼다.
  • “강서윤은?”
  • 이유진은 서희주의 얼굴을 훑어보며 흐려진 안색으로 물었다.
  • ‘서윤이를 알아본 거야?’
  • 서희주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강서윤이 먼저 자리를 뜨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남자의 기세에 눌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 만약 서윤이가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누구세요? 왜 노크를 하지 않는 거죠?”
  • 서희주는 연기력을 최대치로 올려 아이를 품에 안으며 경계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 이유진은 미간을 구기며 답했다.
  • “당신 품에 있는 아이는 제 딸이에요. 방금은 그쪽이 제게 전화한 건가요?”
  • 서희주가 멈칫하더니 답했다.
  • “네. 저예요.”
  • 이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룸을 샅샅이 훑었다.
  • 여자의 목소리는 확실히 통화를 했던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했지만 그를 속일 수는 없었다.
  • 또한 일부러 강서윤의 흔적을 숨긴 것이 너무 티가 났다.
  • 테이블에는 확실히 2쌍이 수저만 있었지만 곁에 있는 의자가 비뚤어져 있었는데 주선각의 종업원이이런 실수를 범할 리 없었기에 분명 누군가 있었을 것이다.
  •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음식들도 여자 한 명이 아이를 데리고 먹을 만한 양은 아니었다.
  • 방안을 훑던 이유진의 시선이 다시 서희주에게 향했다.
  • 그의 눈빛을 마주한 서희주는 다시금 가슴이 철렁했다.
  • 이어 남자는 비서에게서 폰을 받더니 뼈마디가 선명한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며 서희주를 보았다.
  • 테이블에 있던 강서윤이 떠나기 전 남긴 그녀의 폰이 울렸다.
  • 무방비 상태였던 서희주는 벨 소리에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번호를 확인하고는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답했다.
  • “당신의 아이라면 데려가세요.”
  • 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유진에게 넘겨주었다.
  • 이유진은 눈썹을 씰룩이더니 테이블을 향해 다가갔다.
  • 서희주는 그가 아이를 데려가는 줄로 알고 안도했지만 이내 남자의 의심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 “식탐이 많은가 보군요. 둘이서 테이블 가득 음식을 주문한 걸 보면.”
  •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 서희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했다.
  • “제 식탐을 그쪽이 상관할 바는 아니죠. 친구를 불렀는데 아직 오지 않았거든요.”
  • 이유진이 눈썹을 튕기더니 다시 물었다.
  • “친구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식사를 시작한 건가요?”
  • 말을 마친 남자는 다시 음식들을 훑어보았다.
  • 서희주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한참을 침묵하다 표정관리를 하며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주 친한 친구라 이런 걸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 거예요.”
  • 말을 마친 그녀는 이유진이 더 묻기 전에 말을 이었다.
  • “저기요. 제가 그쪽 딸을 찾고 전화까지 해주고 밥까지 먹였으면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지금 저를 추궁하시는 거예요? 제가 당신한테 뭘 잘못했다고 지금 이러시는 거예요?”
  •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속으로는 사실 빌고 있는 서희주였다.
  • ‘제발 그만 좀 물어봐. 더 했다가는 실토할 것 같단 말이야...’
  • 주차장.
  • 강서윤은 아이들을 데리고 줄곧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 이유진의 성격에 조금의 단서라도 있으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
  • 희주가 얼마나 버텨줄지 몰랐다.
  • ‘만약 들키면 어떡하지?’
  • 강서윤은 한참이나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그저 자조적인 웃음만 터뜨렸다.
  • 6년 전 그런 짓을 당했으니 이유진은 어쩌면 평생 그녀를 마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 만약 만난다고 해도 경멸하며 아는 척도 하지 않을게 뻔했다.
  • 하지만 아직 마주하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긴장하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