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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벙어리 아이

  • 공항에서 나오는 동안 강서윤은 조급한 마음으로 때때로 고개를 돌려 남자가 따라오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 다행인 건 공항을 나설 때까지 더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 강서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그녀의 손을 잡은 아이들은 계속하여 뒤를 돌아보는 강서윤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긴장한 그녀의 모습에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그저 얌전히 그녀를 따라갔다.
  • “서윤아! 지민아! 우리야!”
  • 멀리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세 사람은 고개를 들어 길 건너편에서 단정한 옷차림의 여자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로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 그녀의 등장에 강서윤은 긴장을 풀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 “희주야, 오랜만이야.”
  • 서희주는 대학 시절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지금은 의사로서 본인 가문 소속의 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 서희주는 이내 세 모자의 앞에 다가가 강서윤을 힘껏 안으며 말했다.
  • “드디어 왔구나. 너무 보고 싶었어!”
  • 강서윤 역시 웃는 얼굴로 답했다.
  • “나도 보고 싶었어.”
  • 그들은 줄곧 연락을 끊지 않았지만 온라인으로만 소식을 전했을 뿐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 서희주는 몸을 숙여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 “우리 아가들. 이모 보고 싶었어?”
  • 지민과 우리는 사랑스럽게 활짝 웃으며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 “당연하죠! 꿈에서도 보고 싶었어요! 이모는 역시 예쁘네요.”
  • “말은 잘 하지!”
  • 서희주는 아이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 강서윤은 아직도 공항 입구를 힐끔거리며 서희주를 재촉했다.
  •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가자.”
  • 서희주는 아이들의 볼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하고는 강서윤을 도와 짐을 들어주며 자리를 떠났다.
  • 바로 그때, 이유진이 공항 입구에 나타났다.
  • “외국 업무들은 모두 취소해.”
  • 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곁에 있는 비서 나선우에게 말했다.
  • 나선우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 “사장님, 사람들을 시켜 작은 아가씨를 찾게 했습니다.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사장의 아킬레스건인 작은 아가씨가 사라졌으니 외국의 업무들은 그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었다.
  • 깊고 검은 눈동자의 이유진은 아무런 말도 없이 큰 걸음으로 마이바흐를 향해 걸어갔다.
  • 이내 차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
  • ...
  • 한 시간 뒤, 서희주의 차가 시내의 ‘엠파이어빌’ 이라는 이름의 별장에 도착했다.
  • 이곳은 강서윤이 그녀에게 부탁하여 찾은 곳이었다.
  • 네 사람은 서희주의 안내하에 짐을 들고 새집에 들어섰다.
  • “환경이 괜찮네. 마음에 들어.”
  • 강서윤은 흡족한 얼굴로 친구에게 말했다.
  • “너의 일 처리가 이렇게 좋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 서희주가 눈썹을 씰룩이더니 말했다.
  • “나는 바로 옆에 살아. 집주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교토로 가면서 집을 내놓았거든. 앞으로 종종 얼굴 보자.”
  • 강서윤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간단한 짐 정리를 마치자 식사 시간이 되었고 서희주는 세 사람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 레스토랑의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세우려고 할 때 갑자기 어두운 곳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 거의 부딪칠 뻔한 순간 서희주는 얼른 브레이크를 힘껏 밟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넘어진 아이를 바라보았다.
  • 강서윤 역시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차에서 내렸다.
  • 차와 한 뼘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멍하니 바닥에 앉아있었다. 아마 너무 놀랐던 모양이다.
  • 순간 가슴이 철렁한 강서윤이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 “얘야, 다쳤니?”
  • 흰 피부에 초롱초롱한 눈동자, 오똑한 코를 하고 있는 아이는 무척이나 예쁜 얼굴이었다. 핑크색의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아이는 품에 값비싼 인형을 들고 있었다.
  • 강서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아이는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 아이의 모습에 강서윤은 아이를 찬찬히 살폈고 다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손을 내밀어 아이를 부축했다.
  • 그녀가 손을 내밀자 아이는 깜짝 놀라며 두려움이 담긴 커다란 눈망울을 하고는 몸을 움찔했다.
  • 강서윤은 멈칫하더니 아이를 위로하듯 웃으며 말했다.
  • “두려워하지 마. 일으켜주려고 그랬어.”
  • 말을 마친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왜 혼자야?”
  • 아이는 인형을 힘껏 안으며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 강서윤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순간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 서희주와 아이들도 차에서 내려 말이 없는 아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지민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 ‘귀엽긴 한데 말이 없는걸 보니 혹시 벙어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