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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길바닥에서 죽었으면 좋겠어

  • 강서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혹시 아이가 벙어린가?’
  • 그렇게 생각되자 강서윤은 아이가 가여운 마음에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이모 손잡을래?”
  • 말을 하며 손을 내밀자 겁에 질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아이는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에 표정이 조금 풀렸다.
  • 강서윤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아이가 자신을 받아주길 기다렸다.
  •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는 그제야 강서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강서윤은 얼른 아이의 손을 잡고 웃는 얼굴로 아이를 부축하고는 다시 다친 데는 없는지 살폈다.
  • 두 사람의 거리는 순간 많이 좁혀졌다.
  • 부드러운 아이의 몸에는 우유 향이 났다.
  • 마음이 사르르 녹은 강서윤은 이내 요절한 자신의 아이를 떠올렸다. 만약 그 아이가 살아있다면 아마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만큼 자랐을 것이다.
  • 강서윤의 눈에는 슬픔과 아쉬움이 가득 찼다.
  • 아이는 마치 그녀의 기분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듯 그녀에게 얌전히 몸을 맡긴 채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비록 낯선 사람에게 접근하는 게 위험한 건 알지만 아이는 눈앞의 이모가 참 예쁘다는 생각과 함께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 서희주가 그들의 모습을 보다가 감탄했다.
  • “정말 예쁘게 생긴 아이야. 우리 아가들 외모에 뒤지지 않는다고!”
  • 강서윤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아마 부모를 잃어버렸나 봐. 경찰서에 데려다주자.”
  • 그녀의 말에 아이는 그녀를 휙 잡았고 강서윤은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아이를 보았다.
  • 힘껏 고개를 저으며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아이의 모습이 아주 조급해 보였다.
  • 그녀의 제안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 아이의 가여운 모습에 강서윤은 마음이 아팠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만약 아이를 제때에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유괴라는 누명을 쓸 수도 있지 않은가.
  • 강서윤은 순간 심장이 바늘에 콕콕 찔리는 느낌에 입을 열었다.
  • “경찰서 안 가도 돼.”
  • 그녀는 몸을 숙여 아이에게 말했다.
  • “부모님 연락처 있어? 내가 연락해 볼게.”
  • 그녀의 말에 아이는 더 이상 고개를 젓지 않았지만 예쁜 눈동자가 조금 어두워진 것 같았다.
  • 한참을 말이 없는 아이를 보던 강서윤은 아이가 연락처를 모른다고 생각하여 경찰서로 데려가려고 마음을 먹은 찰나 아이가 다시 움직였다.
  • 아이는 주머니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숫자를 적고 뒤쪽에 Daddy 라고 쓰고는 강서윤에게 건넸다.
  • 메모지를 건네받은 강서윤은 아이가 적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정말 벙어리네.”
  • 지민과 우리가 작게 중얼거렸고 강서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아이들을 향해 경고했다.
  • “그런 말 하면 못 써.”
  • 두 아이는 얼른 얌전히 서서 여자아이를 향해 멋쩍은 듯 히죽 웃었다.
  • 여자아이는 그들을 힐끔 보더니 강서윤의 곁에 바짝 다가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살짝 잡았다.
  • 하지만 강서윤은 아이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고 번호를 확인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이씨 저택.
  • 이유진은 어두운 얼굴로 저택에 들어서며 물었다.
  • “주비는 돌아왔어요?”
  • 집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 “아니요. 아직이에요.”
  • 말을 마친 그는 이유진이 내뿜는 위압감 넘치는 아우라를 감지했다.
  • 이유진은 얇은 입술을 꽉 다물며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 아이가 갈만한 곳은 이미 모두 뒤졌다.
  • ‘대체 어딜 간 거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 그런 생각에 이유진은 살기를 내뿜으며 당장이라도 모든 걸 파괴할 것만 같았다.
  • 이때, 농염한 화장을 한 여자가 밖에서 급하게 들어오며 조급한 어투로 말했다.
  • “유진아. 우리 주비 잃어버렸다면서? 정말이야? 아이는 찾았어?”
  • 그녀는 이유진이 그렇게도 결혼하고 싶어 했던 상대인 박시아였다.
  • 하지만 그녀를 마주한 이유진은 얼굴을 확 구기며 말했다.
  • “아직 못 찾았어. 너 마침 잘 왔어. 대체 오후에 주비한테 뭐라고 했기에 멀쩡하던 애가 집을 나가?”
  • 그의 질문에 박시아가 멈칫하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유진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주비한테 뭐라고 했다고 의심하는 거야?”
  • 그녀는 순간 상처받은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 “난 아니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어떻게 이래? 내가 주비한테 어떻게 했는데? 주비가 아무리 날 싫어해도 나는 아이한테 정말 잘했다고!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내쫓을 수가 있겠어?”
  • 그녀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 하지만 속으로는 벙어리 아이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 오늘 오후, 그녀는 확실히 벙어리 아이한테 심한 말을 했었다. 자신이 이유진과 결혼하면 더욱 귀여운 동생들을 낳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유진은 더 이상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 아이가 벙어리인 탓에 박시아는 아이가 이유진에게 일러바칠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집을 나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잘 됐어! 길바닥에서 죽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