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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 여인은 자신의 병이 치료될 수 있는지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 “다들 들으셨지요? 저는 다른 사내와 놀아난 적이 없습니다!”
  • 그러자 옆에 있던 누군가가 ‘풉’하고 비웃었다.
  • “저 여인의 말 한마디에 뭐가 달라진다고? 보아하니 의원도 아닌 것 같은데.”
  • “그러게, 그렇다고 해도 결백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한대? 웬 사내가 오밤중에 저 여편네의 옷을 벗기는 걸 버젓이 본 사람도 있다지 않았나?”
  •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진실로 들리는 법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여인을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 여인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눈빛이 흐려졌다. 그녀는 옆에서 고기 파는 장수의 칼을 보더니 달려들어 칼을 빼앗았다.
  • 그녀의 돌발행동에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한청연은 그녀가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는 것을 보았다.
  • 깜짝 놀란 한청연은 부상도 잊은 채,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극심한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러나 곧 다시 이를 악물고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 아까의 여인은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 “모두 보았지요? 제 배 속의 것은 물이란 말입니다. 이제 제가 결백하다는 게 밝혀졌지요? 이제는 다들 믿겠죠?”
  • 한청연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였다.
  • ‘이게 무슨 세상이란 말인가? 여인의 절개와 결백, 명예 따위가 그렇게 중요해?’
  • “절대 자네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네. 자네는 분명 살 수 있을 테니 나를 믿어 보게. 지금 바로 수술을 시작하지. 여봐라, 얼른…’
  • 그러나 한청연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 ‘뭘 준비해야 하지? 무균 수술실? 링거? 매스? 이곳은 고대이니 의료 시설도 없을 건데 어떻게 살리지? 살린다고 해도 간병 말기인 것 같은데 치료는 어떻게 하지?’
  • 여인은 참담하게 웃으며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마님, 제 결백을 입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때, 그녀의 시어머니가 뛰어오더니 통곡하기 시작했다.
  • “네가 죽으면 이 늙은이 혼자서 어떻게 살라고 그러는 것이냐? 아이고…”
  • 옆에 있던 이웃이 혀를 찼다.
  • “이제야 며느리 소중한 것을 알겠소? 아까는 욕하고 때리면서 난리도 아니더니. 서방이 죽고 난 뒤에 재가도 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며느리가 어디 있다고.”
  • 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시어머니를 질책했다.
  • 한청연은 무기력하게 여인이 눈을 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도순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숨을 크게 들이쉰 그녀는 결국 버럭 화를 냈다.
  • “그만들 하시오! 언제까지 이리 떠들 것이오?”
  • 그러자 사람들은 바로 조용해졌다. 한청연은 빨개진 눈시울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스쳐보았다. 그리고 마차 위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내려보고 있는 모영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 “자고로 세 치 혀가 사람을 죽이는 법이오. 자네들은 이미 죄 없는 이 여인을 말로 죽였는데 불쌍한 노인까지도 죽일 셈이오? 그런 비극이 일어나야 기쁘겠소? 구경거리가 재미있소? 재미있냐는 말이오?”
  • 곧이어 쥐 죽은 듯한 정적이 뒤따랐다.
  • 사람들은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도 없었다.
  • 한청연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천천히 마차로 돌아와 무기력하게 얼굴을 팔 사이에 묻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모영기는 말고삐를 잡은 손에 힘을 가한 채, 어두운 눈빛으로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청연이 마지막으로 한 말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 ‘그녀의 일을 대비마마께 아뢴다면 어떤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청연을 위로했다. 한청연은 한참 뒤에야 코맹맹이 소리로 입을 열었다.
  • “나는 참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노 반지만 있었다면 시도해 보았을 텐데.”
  • 도순은 의아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 “반지요? 이 가락지 말씀인가요?”
  • 한청연은 고개를 들고 도순의 손을 바라보았다. 보잘것없는 회색의 반지를 본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 ‘이럴 수가? 나노 반지잖아! 반지도 같이 고대로 온 거라고?’
  • “이거 맞아. 어디서 난 거야?”
  • “쇤네가 아씨 상처를 싸매다가 본 거예요. 쇠로 된 거라 비싼 것 같지 않아 그냥 제가 간직하고 있었어요.”
  • ‘비싼 것 같지 않다고? 이건 가치가 엄청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