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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 “내가 이 모든 걸 저하께 말씀드릴까 두렵지도 않아?”
  • 한청낭은 깔깔 웃더니 경멸스러운 얼굴로 한청연과 도순을 힐끗 바라보았다.
  • “들은 사람이 언니와 하녀밖에 없는데 누가 믿는다고 그래? 한청연, 자신의 신분 파악이 안되는 거야? 너는 가문의 수치이자 저하의 미움을 받는 천덕꾸러기라고.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그녀는 봉선화 물을 들인 손톱을 천천히 펼쳐서 한청연의 창백한 얼굴에 가져다 댔다.
  • “내가 돌아가서 아버님께 이 얘기를 한다면 아버님은 언니를 죽이라고 할 거야. 죽는 게 소박맞았다는 것보다 덜 창피할 거 아니야? 죽으면 좌의정 댁의 명예에 누가 되지도 않고 말이야.”
  • 도순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청낭에게 덮쳤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씨에게서 손 떼세요!”
  • 그러나 도순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 “저리 비켜. 어디서 감히 말대답질이야!”
  • 한청연은 눈으로 한기를 내뿜더니 한청낭의 손목을 잡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한청낭이 비명을 질렀다.
  • “으악!”
  • 한청연은 이를 악문 채, 또박또박 말했다.
  • “도순이를 건드리기만 해봐!”
  • 죽어가던 한청연이 이렇게 큰 힘을 쓸 줄 몰랐던 한청낭은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거만하던 방금 전과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사정했다.
  • “언니, 잘못했어. 이거 놔. 제발…”
  • 이때, 누군가 방문을 걷어차더니 바람과 함께 모영기가 들어왔다. 그는 무쇠처럼 단단한 손으로 한청연의 팔목을 잡고 말했다.
  • “한청연, 죽고 싶은 거요!”
  • 극심한 통증에 한청연은 신음을 흘리며 한청낭의 손목을 잡은 손을 풀어주었다. 팔목이 부러질 것 같은 느낌에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 한청낭은 가녀린 신음과 함께 모영기의 품으로 뛰어들며 어깨를 들썩였다.
  • “저하, 살려주세요!”
  • 모영기는 한청연의 손을 뿌리치고는 안타까운 얼굴로 품에 안긴 한청낭을 내려다보았다.
  • “저 미친 여인과 거리를 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마음이 여려서 보러 왔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 저 여인에게 널 해칠 기회만 주지 않았느냐?”
  • 한청낭은 입술을 잘근 깨물고 불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 “소첩은 언니의 상처가 걱정되어 보러 온 것입니다. 언니도 보고 저하께 사죄하라 설득하려고요… 소첩은 저하가 화내시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그런 건데 언니가 이럴 줄은…”
  •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한청연의 베개 아래를 슬쩍 훑어보았다.
  • 그제야 한청연은 자신의 베개 아래에 부채와 옥추가 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 이건 사내의 소지품이었다.
  • 모영기는 표정이 굳더니 부채를 들어 펼쳐 보았다. 부채를 힐끗 본 그는 얼굴을 굳히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절절한 애모의 뜻을 담은 시구군. 한청연, 어제 그대를 살려주는 게 아니었소!”
  • 도순은 다급히 앞으로 나서며 한청낭을 손가락질했다.
  • “이건 우리 아씨의 물건이 아닙니다. 저것이 아씨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우자고 벌인 짓입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아씨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 “언니가 이렇게 무서운데 손에 아무것도 든 게 없는 제가 혼자서 언니를 뭐 어떻게 한다고요…”
  • 한청연은 부채를 주워 들더니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젖힌 채, 냉소를 하였다.
  • “저하, 제가 얼마나 멍청해야 이런 시가 적힌 부채를 몸에 지니고 다니겠습니까? 혼인을 취소하고 싶으시다 했지요? 그 요구를 들어드리지요.”
  • 모영기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 “그래, 좋다. 나랑 당장 입궐하여 기별(和离)을 신청하자꾸나.”
  • 한청연은 미소를 지었다.
  • “못할 건 없지요.”
  •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도순은 초조한 얼굴로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절대 안 됩니다요!”
  • 한청연은 왕실의 명에 거역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모영기와 함께 궁에 들어가 기별하겠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었다. 한청낭은 절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언제 소문을 퍼뜨릴까 전전긍긍하면서 기다릴 바에는, 엄벌이 떨어질까 두려움에 떠는 것보다는 자발적으로 궁에 들어가는 게 훨씬 승산이 있어 보였다. 어쩌면 대비마마를 만나 사정한다면 살 수도 있지 않겠는가?
  • 이때, 한청낭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 “언니는 지금 몸이 다친 상태지 않나요? 저하, 언니가 며칠간 몸을 추스르고 화도 풀렸을 때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요? 언니가 지금 화가 나서 대비마마께 무례라도 범한다면 저하의 앞날에 누가 되지 않겠습니까?”
  • ‘며칠간 몸을 추슬라고? 지금 상황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 한청낭이 가만있을 리가 없어. 내가 살 기회를 모조리 없애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