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9화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 임 씨 일가

  • 한편, 문아영을 쫓아내고 주태석은 본격적으로 콩이와 함께 앵무새 회유하기에 돌입했다.
  • 무턱대로 잡으면 안 되고 달래야 하는데 사람도 아닌 앵무새를 달래려니 주태석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 “앵무새야, 얼른 내려와. 내려오면 고기 줄게.”
  • 주태석이 서투른 연기력으로 앵무새를 구슬렸다.
  • 앵무새는 주태석을 응시하며 시정잡배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 “고기 안 먹어. 고기 안 먹어. 고기 먹으면 살쪄!”
  • 앵무새는 도무지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깊이 숨을 들이켜던 주태석은 승부수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 “콩아, 무시하고 가자!”
  • 그러자 콩이 초조한 얼굴로 주태석의 옷자락을 잡고 애원했다.
  • “안 돼요, 외삼촌, 연두를 두고 가지 마세요…”
  • 불안한 마음에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 그 모습에 주태석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밀물처럼 밀려오는 회한에 주태석은 황급히 사과했다.
  • “미안해, 외삼촌이 잘못했어.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 어린아이의 세계에서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주태석은 자신의 뺨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 갑작스러운 사과에 콩이는 일순 멈칫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 콩이가 돌연 활짝 웃더니 주태석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말했다.
  • “괜찮아요, 막내 외삼촌!”
  •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괜찮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 그래서 단번에 주태석을 용서할 수 있었다. ‘괜찮아’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외숙질은 계속해서 앵무새를 달랬다.
  • “연두야, 착한 연두야, 막내 외삼촌이 방금 농담한 거야. 막내 외삼촌은 나쁜 사람 아니야.”
  • “연두야 미안해, 얼른 내려와! 우리 다 같이 서울 가자. 서울 저택이 얼마나 큰 줄 알아? 거기 가면 암컷… 쿨럭”
  • 주영준, 주현빈, 주나헌은 한참을 기다려도 콩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콩이를 찾아 뒷마당으로 향했다.
  • 그러던 중 어른과 아이가 앵무새를 달래는 진기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 그제야 주 씨 형제들은 콩이 임가 저택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한 이유가 이 앵무새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선명한 에메랄드빛을 띠는 예쁜 털을 가진 사랑앵무새는 작은 눈동자를 굴리며 주 씨 형제들을 훑어보았다.
  • 성질 급한 ‘청부업자’ 주영준이 제일 먼저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
  • “태석아, 앵무새 한 마리도 달래지 못하고 너 정말 어쩌려고 그래? 이 쓸모없는 자식아!”
  • 주현빈과 주나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태석이 꼬박 반나절을 달랬지만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는 앵무새라는 뜻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앵무새가 나무에 앉아 날개를 허우적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태석아, 태석아, 이 멍청아! 태석아, 태석아, 똥이나 먹어!”
  • x 발. 주태석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 “그렇게 자신 있으면 형이 해보든가!”
  • 주태석이 잔뜩 골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 그 모습에 주영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팔을 들어 올렸다.
  • “이 형이 하는 걸 잘 봐!”
  • “오~ 오꼬꼬! 오꼬꼬꼬!”
  • 주영준은 자신의 팔 위로 날아오라는 듯 팔을 두드리며 앵무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 고릴라 같은 다섯째 외삼촌의 모습에 콩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 주현빈은 입꼬리를 씰룩거렸고 주나헌은 팔짱을 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쯧… 고작 앵무새 하나 달래겠다고 원시 상태도 돌아가는구나.”
  • 나무 위에 매달린 앵무새도 꽥꽥거리며 소리쳤다.
  • “멍청이! 멍청이!”
  • 성미가 불같은 주영준은 바로 앵무새를 삿대질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 “너 이 새끼 당장 내려와!”
  • 앵무새는 약을 올리듯 나뭇가지 위에 서서 날개를 퍼덕거렸다.
  • “싫어. 싫어. 할아버지는 안 속아!”
  • 앵무새 주제에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주영준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 콩이는 입을 가린 채 웃음을 삼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섯째 외삼촌 주영준을 훑어보았다.
  • 험상궂은 인상과 달리 그렇게 사나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 콩이의 시선이 이내 다른 외삼촌들을 향했다.
  • 막내 외삼촌과 셋째 외삼촌은 모두 온화하고 점잖은 편이었는데 한 명은 귀족처럼 우아했고 다른 한 명은 태양처럼 따뜻했다.
  • 넷째 외삼촌은 점잖아 보였지만 어딘가 악당 같았고… 다섯째 외삼촌은 불을 뿜는 용처럼 찌르면 바로 폭발할 것 같았다.
  • 이 사람들이 엄마의 오빠들이구나.
  • 콩이도 어느새 외삼촌들이 좋아진 것 같았다.
  • 아빠나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 콩이가 몰래 외삼촌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는 사이, 돌연 주나헌과 눈이 마주쳤다.
  • 곧바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돌리는 콩이의 모습에 주나헌은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꼬맹이가 배짱은 좋네.
  • 주나헌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영준아, 힘 그만 빼고 넌 빠져. 그 앵무새는 콩이 말만 들을 거야.”
  • 그 말에 주영준은 한쪽 눈썹을 비딱하게 세우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 “그걸 형이 어떻게 아는데?”
  • 주나헌이 코웃음을 치며 이죽거렸다.
  • “네 머리는 장식이니?”
  • 주영준이 화를 내려던 찰나, 주현빈이 얼른 중재에 나섰다.
  • “나헌이 말이 맞아. 우린 모두 뒤로 빠져 있자.”
  • 주태석이 콩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다른 사람들도 얼른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 콩이는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앵무새를 바라보았다.
  • “연두야, 얼른 내려와. 안 내려오면 우리 먼저 간다? 외삼촌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 주 씨 일가의 시선은 오롯이 콩이를 향했다.
  •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앵무새를 달래는 모습은 난생처음 보는 사랑스러움이었다.
  • 역시 애들은 친구 앞에서 다르구나…
  • 여동생의 어릴 적 모습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콩이의 모습에 거친 사나이 주영준은 마음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 앵무새는 콩이에게 설득을 당한 듯 콩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날개를 퍼덕이며 콩이를 향해 날아왔다.
  • 앵무새가 콩이의 어깨 위에 앉으려던 찰나, 불현듯 유진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머, 여기 계셨군요!”
  • 화들짝 놀란 앵무새는 곧장 방향을 바꾸어 다시 나무 꼭대기로 날아올랐다.
  • “…”
  • 주 씨 일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 콩이는 입술을 오므린 채 본능적으로 주태석의 등 뒤에 몸을 숨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편안하게 풀어졌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유진숙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 “어? 저 앵무새 잡으시게요? 저한테 맡기세요. 지금 당장 사람을 불러서 잡겠습니다.”
  • 쌀쌀맞은 주 씨 일가의 태도에 유진숙은 열심히 아부를 하며 비위를 맞췄다.
  •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사랑앵무새 같은데. 품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급스럽지도 못한데 왜 그렇게 이 앵무새를 잡고 싶어 안달이지…
  • 유진숙은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겉으로는 아무 내색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앵무새를 정말 잡고 싶은 눈치였다.
  • 결국 참다못한 주영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썩 꺼져!”
  • 화들짝 놀란 유진숙은 그만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 아이고, 이런 천하의 몹쓸 놈을 보았나. 어른 공경할 줄도 몰라? 예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네…
  • 떠들썩한 소란에 주종섭과 주일훈도 곧장 뒷마당으로 걸어왔다.
  • 그들 뒤로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뒤따라온 임성철과 임빈은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 “정말 교활한 앵무새입니다. 잡죠!”
  • 임빈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 “영악하기 짝이 없는 앵무새라 절대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동물 보호 단체에 앵무새를 잡을 수 있는 새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 안 되면 마취총을 쏴서 떨어뜨리죠.”
  • 두 사람의 말을 곧장 알아들은 것인지 앵무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더 멀리 날아갔다.
  • 콩이는 초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연두 해치지 마요. 연두는 착한 아이란 말이에요…”
  • 그러자 주태석이 서슬 퍼런 눈으로 임 씨 일가를 노려보며 말했다.
  • “들었지? 당신들 도움 필요 없으니까 얼른 꺼져.”
  • 그 말에 어딘가에 전화를 걸던 임빈이 싱긋 미소 지으며 반박했다.
  • “어린애가 뭘 압니까? 콩이가 오해한 겁니다. 우린 앵무새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마취하려는 것뿐인데…”
  •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채 떨어뜨릴래도 안 떨어지는 성가신 고약 같은 임 씨 일가는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는 데다 자기 주제도 모르는 눈치 없고 멍청한 작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