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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콩이 엄마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 콩이는 숲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 “연두야!”
  • 숲속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알록달록한 앵무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올랐다.
  • 허공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던 앵무새는 가까이 다가오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리 날아갔다.
  • 콩이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며 주태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 “연두가 외삼촌을 무서워해요.”
  • 고사리보다 작은 손을 나팔처럼 모은 채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는 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 숲을 힐끗 바라보던 주태석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었다.
  • “콩아, 외삼촌이 사람을 불러와서 잡는 게 어때? 그럼 바로 연두를 데리고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 그 말에 콩이는 바로 작은 이마를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싫어요.”
  • 그러고는 연두가 듣기라도 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연두를 잡지 마요. 연두는 나쁜 새가 아니에요. 연두를 잡으려 하면 무서워할 거예요.”
  • 콩이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에 주태석은 애써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알겠어.”
  • 콩이는 주태석의 어깨를 꽉 누르며 신신당부했다.
  • “외삼촌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 안쪽으로 조금 걸어들어가던 콩이는 다시 크게 연두를 불렀다.
  • 그러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연두가 쉴 새 없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 “멍청이가 있어! 멍청이가 있어!”
  • 콩이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반박했다.
  • “연두야, 외삼촌은 멍청이가 아니야.”
  • “미친개가 있어! 미친개가 있어!”
  • 콩이는 또다시 진지한 얼굴로 연두의 말을 정정했다.
  • “외삼촌은 미친개도 아니야.”
  • 숲 밖에서 아이와 앵무새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주태석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 하지만 연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저도 모르게 더욱 안쪽으로 걸어가던 콩이는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러자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한 쌍의 익숙한 시선을 발견했다.
  • 콩이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몸을 떨며 도망치려 했지만 문아영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
  • “콩이 안녕… 드디어 돌아왔네.”
  •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문아영이 입까지 막아버렸다.
  • 문아영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콩아 왜 그래? 아줌마가 조금도 반갑지 않아?”
  • 주태석이 숲 밖에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콩이의 얼굴을 잡고 억지로 자신이 있는 쪽으로 돌린 문아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아줌마는 콩이가 이렇게 서먹하게 굴면 마음이 아파. 아무리 그래도 난 콩이 엄마잖아!”
  • 본능적으로 문아영의 손을 뿌리친 콩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 문아영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서렸다. 망할 계집애, 힘은 또 언제 이렇게 세진 거야?!
  • 재빨리 콩이의 팔을 붙잡은 문아영은 다시 콩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 “콩이가 아줌마 뱃속의 아기를 죽였잖아. 아줌마는 콩이를 원망하지도 않고 이렇게 만나러 와줬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줌마를 대할 수 있어?”
  • 문아영이 싸늘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콩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그 모습에 문아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싱긋 미소 지었다. 평소 콩이를 때릴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 “콩이는 아줌마를 밀지 않았다고 했지? 하지만 그날 콩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겁을 주지 않았다면 아줌마가 넘어졌을까? 그러니까 콩이가 책임져야 돼. 아줌마는 콩이 때문에 아이도 잃었잖아. 아줌마 불쌍한 사람이야… 외삼촌들이 물어보면 네가 밀었다고 말해야 해. 알겠지?”
  • 이제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어른이 하는 말은 곧 법일진대, 어린아이 하나 속이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닌가. 문아영은 교묘한 말로 콩이를 회유했다.
  • 하지만 콩이는 반항기로 가득 찬 눈으로 고집스럽게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 그녀는 아줌마를 밀지 않았다. 한 적도 없는 일을 절대 시인하지 않을 것이다.
  • 문아영은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 문아영은 아무리 때려도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눈앞의 더러운 아이가 너무 싫었다.
  • 문아영이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며 싸늘하게 말했다.
  • “너 정말 말을 안 듣구나. 아줌마한테 또 한 번 혼나볼래?!”
  • 그날 계단에는 감시 카메라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기에 콩이가 정말 문아영을 밀든 밀지 않든 주 씨 일가는 콩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을 것임이 분명했다.
  •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선하고 완벽한 이미지로 남신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 언젠가 뉴스에서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구타하고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전부 볼 수 있는 긴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고 협박하자 그 아이는 정말로 구타를 당한 일을 부모님에게 얘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 문아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협박했다.
  • “외삼촌들이 널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아줌마는 마법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널 찾을 수 있어!”
  • 하지만 바로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릴 거라는 예상과 달리 콩이가 돌연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문아영의 손바닥을 힘껏 깨물었다.
  • 문아영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콩이의 얼굴을 때리려 했다.
  • 하지만 손바닥이 콩이의 얼굴에 닿으려던 찰나, 콩이의 손목에 묶여 있는 붉은 줄에서 갑자기 희미한 빛을 뿜어지더니 손목에 강력한 힘이 실렸다.
  • 콩이는 그 붉은 줄이 이끄는 대로 문아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 그 모습에 문아영은 조소를 흘렸다. 비쩍 마른 팔다리로 감히 누구를 때리려고.
  • 하지만 다음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아영은 수풀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 그와 동시에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난 주태석이 콩이를 품에 안았다.
  • 콩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의 손바닥과 주태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커다란 눈망울에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 그녀가 아줌마를 밀어낸 것인지 아니면 막내 외삼촌이 아줌마를 걷어찬 것인지 의아했다.
  • 주태석도 같은 의심을 품고 있었다. 방금 그 정도로 힘을 쓰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다… 착각인가?
  • 주태석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문아영을 노려보며 버럭 호통을 쳤다.
  • “감히 콩이를 때려?!”
  • 문아영을 향한 눈동자에 적개심이 가득 찼다. 주태석은 콩이를 안은 채 성큼성큼 문아영에게 다가갔다.
  • 문아영은 당황했다. 젠장,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 문아영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 “그런 거 아니에요, 주태석 씨, 오해세요. 나도 콩이의 엄마인데 어떻게 콩이를 때리겠어요…”
  • 그 말에 주태석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지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문아영의 얼굴을 걷어찼다.
  • “콩이 엄마? 네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 주태석은 안 좋은 모습을 콩이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손바닥으로 콩이의 두 귀를 막고 콩이의 작은 머리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 주태석의 눈가에 맺힌 음산한 기운을 발견한 문아영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 “주, 주태석 씨…”
  • 문아영이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주태석이 다시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바닥에 찧고 힘껏 짓밟았다.
  • “꺄아—”
  • 문아영의 새된 비명이 숲에 울려 퍼졌다.
  • 바닥에 얼굴을 찧으며 튀어나온 돌에 얼굴을 긁힌 거로도 모자라 심지어 작은 돌멩이가 살 속에 박혀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 그때까지만 해도 나무 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앵무새가 돌연 푸드득 날아오르더니 그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나무 꼭대기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또다시 쉴 새 없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 “미친개를 때린다! 미친개를 때린다!”
  • “멍청이! 멍청이!”
  •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문아영의 모습에도 주태석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문아영은 이대로 머리가 밟혀 터지는 건 아닌가 불안했다.
  • “주태석 씨,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 문아영은 울며 고함을 쳤다.
  • 주태석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문아영을 놓아주었다.
  • 아이 앞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좋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참아야 했다.
  • 주태석은 문아영의 얼굴에서 발을 떼고서 콧등을 힘껏 걷어차 부러뜨렸다.
  • “꺼져!”
  • 주태석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문아영은 피투성이가 된 한쪽 얼굴을 감싼 채 헐레벌떡 줄행랑을 놓았다.
  • 방으로 돌아온 문아영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작은 돌멩이가 여전히 얼굴에 박혀있었다.
  • 아픔을 꾹 참으며 돌멩이를 집어 낸 문아영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 주태석 그 자식, 남자 맞아? 사내자식이 여자에게 폭행을 가하다니!
  • “쓰읍…”
  • 조금만 스쳐도 얼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거울 속으로 콧대가 비뚤어지고 엉망진창인 자신의 몰골을 발견한 문아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음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 콩이는 아직 어리니 협박하고 한바탕 두들겨패면 언제나 그랬듯 순순히 그녀의 말에 따라줄 것이라 생각했다.
  • 하지만 오늘 그 전략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태석에게 심하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 조심스럽게 코를 건드린 문아영은 엄청난 고통에 혼절할 뻔했다. 문아영은 실의에 빠졌다.
  • “내 얼굴… 내 얼굴!”
  • 자신의 예쁜 얼굴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던 문아영이었다.
  • 임빈을 떠난다고 해도 타고난 외모로 얼마든지 더욱 돈 많은 남자를 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돌에 박힌 상처가 너무 깊어 치유되더라도 흉터가 남을 것이다.
  • 얼굴이 망가졌다!
  • “아—!”
  • 문아영은 울부짖으며 거울을 부숴버렸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