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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앞으로 콩이의 성씨는 ‘주’야

  • 그 시각, 주종섭과 주 씨 형제들은 콩이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 앳된 아이가 잠결에 엄마를 부르는 모습에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다.
  • 그러나 그들은 콩이의 옆에 다른 ‘사람’, 기태웅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 기태웅은 콩이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더니 또 콩이의 손목에 낀 빨간 끈을 터치했다.
  • 잠시 후, 콩이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 “이젠 사부도 네 엄마한테 빚진 거 없는 거다…”
  • **
  • 비행기가 서울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 아직 잠에 빠져있는 콩이를 본 주종섭이 눈빛을 보내자 주태석은 콩이를 안은 채 까치발을 들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 행여라도 콩이를 깨울까 봐 주태석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방금 전의 자세를 유지했다.
  • 바로 그때, 발찌를 찬 앵무새가 몸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 “아이를 훔친다! 아이를 훔친다!”
  • 그 소리에 콩이는 눈을 번쩍 떴다.
  • “…”
  • 주 씨 일가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초록색의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앵무새를 쳐다봤다.
  • 콩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머리카락도 약간 헝클어져 있는 데다가 품에 토끼를 안은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
  • 주태석과 주단옥은 형제들 사이에서 사이가 제일 좋았고, 콩이의 이런 모습을 보니 주태석은 자기도 모르게 주단옥의 어렸을 때가 생각이 났다.
  • 마음이 여린 그는 콩이를 안은 채 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우리 서울에 도착했어, 이제 집에 가자.”
  • 아직 비몽사몽 상태인 콩이는 막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주 가의 차는 이미 공항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롤스로이스 4대가 길가에 가지런히 서 있는 광경은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세상에, 빨리, 빨리 사진 찍어!”
  • “누구를 마중 나온 차일까,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네!”
  •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을 때, 여덟 명의 훤칠한 기럭지의 남자들이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그들의 맨 앞에는 연장자 한 분이 있었다.
  • 그중 남자 한 명은 품에 여자아이를 안고 있었고, 하얀 공주 드레스를 입은 그 여자아이는 품에 토끼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 아이 옆에 있는 또 다른 남자의 어깨에는 초록색 앵무새가 서 있었다.
  • 앵무새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밟았네 똥!”
  • “…”
  • 그들이 풍기는 포스와는 사뭇 거리가 먼 노래였다.
  • 여덟 명의 남자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귀여운 아이를 데리고 급급히 차에 올랐고, 호화로운 차량은 서서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 “와, 저건 어느 부잣집 공주님일까!”
  • “부럽다 부러워, 똑같은 사람인데 왜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다를까?”
  • 인플루언서로 보이는 한 여자는 핸드폰을 들고 촬영을 하며 흥분 상태로 말했다.
  • “여러분! 오늘 또 이렇게 눈을 뜨네요! 익스텐디드 버전의 롤스로이스가 무려 4대!! 여러분, 저 차 한 대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고 계시나요? 최소 16억입니다! 대체 어떤 집안이길래…”
  • 차 안.
  • 콩이는 창문에 엎드려 밖에 보이는 고층 빌딩을 신기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 N 시에서 임빈은 콩이를 데리고 밖에 나간 적이 한 번 밖에 없었다.
  • 그때도 콩이는 높은 빌딩을 많이 보았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것처럼 우뚝 솟지는 않았다.
  • 콩이는 고개를 돌려 주태석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 “작은 삼촌, 여기가 엄마의 프린세스 캐슬이에요?”
  • 주태석은 코끝이 찡해졌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 “그래, 여기가 콩이 엄마의 프린세스 캐슬이야.”
  • 한때 그들은 섬을 사서 그들의 소중한 여동생을 위해 성을 지어주고 싶었다.
  • 하지만 이젠 기회가 없어졌다.
  • 다만…
  • 콩이를 보고 있으니 주태석은 마음속의 아픔이 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 차량은 곧 주 씨 가문 정원에 도착했다.
  • 그곳은 도심 속 호수 뷰가 보이는 넓은 저택으로 주변은 산수가 아름답고 조용했다.
  • 아무리 철이 들었다 한들 아직 세 살 반짜리 아이에 불과한 콩이는 눈앞에 펼쳐진 저택에 눈이 휘둥그레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이곳이 엄마가 어렸을 때 자란 곳이란 말인가?
  • 넓은 잔디밭에는 많은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콩이는 만약 잔디밭에서 빨리 달리면 엄마를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 저택 양옆에 두 줄로 줄지어 선 하인들은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작은 아가씨,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주종섭과 주일훈은 앞에서 걸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 “콩이는 앞으로 우리 주 씨 가문의 작은 아가씨이고, 성씨는 주 씨야.”
  • 주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 “이름을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 주종섭은 고민에 빠졌다.
  • 얼른 콩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 **
  • 콩이가 받은 대접과는 달리 임 씨 가족은 너무 비참했다!
  • 임 씨 가문은 파산을 당했다. 다른 상장사는 파산을 했다 하더라도 사장은 작은 집을 마련하거나 할 최소한의 돈은 손에 조금 갖고 있다.
  • 그러나 임 씨 가족은 모든 재산이 동결되고 육교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하는 처지에 처했다.
  • 육교에서 자는 건 둘째치고 어찌 된 일인지 계속 누군가가 나타나 그들을 쫓아내거나 한바탕 때렸다.
  • 결국 거지처럼 꼬박 사흘 밤낮을 걸어서야 시골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중상을 입고 이런 고생을 하니 임빈은 반쯤 폐인이 되었고,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 시골의 집은 너덜너덜했고, 예전에 시골을 업신여기고 보수를 게을리했던 게 지금 모두 업보로 그에게 돌아왔다.
  • 임빈은 비참하게 누워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스럽고 후회할수록 점점 더 억울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 지난날 촉망받던 임 대표는 불구가 되어버렸고, 그때와 지금의 너무 큰 격차가 그는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 “빈이 오빠, 일어나서 수프 좀 먹어…”
  • 계란 수프 한 그릇을 들고 온 문아영의 눈동자에 사악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 이 수프에 그녀는 쥐약 한 스푼을 넣었다…
  • 임빈은 맑은 국물 위에 떠 있는 불쌍할 정도로 적은 계란을 보고는 버럭 화를 내며 그릇을 엎었다.
  • “이게 뭐야…! 고작 이따위 음식을 나한테…”
  • 화를 내니 상처가 땅겼고 통증을 느낀 임빈은 이를 악문 채 말을 끝내지도 못했다.
  • 문아영은 고개를 숙인 채 불쌍하게 눈물을 훔쳤다.
  • 이때, 유진숙이 거실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 “문아영, 빨리 가서 밥해! 우릴 굶겨 죽일 작정이야?”
  • 문아영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녀가 임 씨 집안의 하녀도 아닌데 그들은 늘 그녀를 무료 도우미로 삼았다!
  • 하지만 문아영도 어쩔 수 없었다!
  • 전에 육교 아래서 떠돌 때, 그녀는 몇 번이고 부자를 꼬시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매번 상대방의 아내에게 붙잡혀 머리채를 잡히고 호되게 얻어맞았다.
  • 몸을 내어주고 온갖 아양을 떨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이 ‘기술’밖에 없는 문아영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면 그녀가 왜 임 씨 집안사람들을 따라 이 허름한 곳에 왔겠는가…
  • 바로 이때, 유튜브를 보고 있던 유진숙은 인기 영상을 발견했다.
  • “여러분! 오늘 또 이렇게 눈을 뜨네요! 익스텐디드 버전의 롤스로이스가 무려 4대!! 여러분, 저 차 한 대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고 계시나요? 최소 16억입니다…”
  • “어느 집 공주님을 데리러 왔길래 이 정도 스케일인 건지, 부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네요.”
  • 영상은 바로 주태석이 콩이를 품에 안고 차에 타는 장면이었다!
  • 유진숙은 갑자기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숨이 턱 막혔다.
  • “말도 안 돼! 계집애가 혼자 호강하느라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예 잊어버렸어! 은혜도 모르는 계집애, 불효야…”
  • 유진숙은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
  • 문아영은 부엌에 숨어 몰래 핸드폰을 확인했다.
  • 여덟 명의 위풍당당하고 품위 있는 남자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주위에는 경호원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품에 안겨 있는 콩이였고 떠받든다는 단어가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 문아영은 네 대의 롤스로이스를 보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질투와 열등감을 느꼈다.
  • 2년 동안 온갖 방법과 수단으로 임 씨 사모님의 자리에 앉았는데 이런 꼬락서니가 될 줄이야.
  • 오히려 그녀가 거지인 줄 알았던 여자가 뜻밖에도 주 씨 가문의 딸이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주단옥의 절친인 척했을 텐데…
  • 문아영은 생각할수록 후회되고 내키지 않았다. 콩이가 잘 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 그녀는 핸드폰 액정이 깨질 정도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 ‘질투로 계모를 계단에서 밀어 유산시킨 악랄한 심성의 주 씨 가문 작은 아가씨!’
  • ‘계모는 두 번의 대출혈로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장본인은 네 대의 고급차를 타고 서울 복귀.’
  • 문아영은 감히 큰 언론사에는 폭로하지 못하고, 그저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단체방에 보내 일파만파 퍼뜨릴 생각이었다.
  • 폭로를 하자마자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 경찰이 찾아왔다고 했고, 그 말에 놀란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핸드폰을 바닥에 떨구었다.
  • “빨리, 경찰이 찾아왔어, 빨리 빈이를 데리고 가!”
  • 유진숙이 부엌으로 뛰어들어와 다급하게 말했다.
  • 문아영은 임빈의 방으로 등 떠밀려 들어갔고, 마음이 불안한 임빈은 문아영의 동작이 느리자 그녀의 뺨을 내리치며 소리 질렀다.
  • “빨리 부축하지 않고 뭐 해!”
  • 문아영은 아픔을 참고 임빈을 부축해 부엌 뒤로 도망쳤고, 발밑에 진흙이나 똥을 밟아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며 그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 밭에 숨은 두 사람은 집이 봉쇄당했다는 소식에 또 산속으로 몸을 피했으며 날이 어두워져도 돌아갈 엄두를 못 냈다.
  • 산속은 몹시 추웠고, 두 사람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 임빈은 옆에 있는 문아영을 보며 감동한 듯 말했다.
  • “그래도 당신이 최고야, 떠나지도 않고 내 옆에 있어주잖아…”
  • 문아영은 부드럽게 웃었다.
  • 사실 그녀는 의리를 지킨 것이 아니라 단지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 한 번 결혼을 한 그녀가 나중에 다시 재벌가에 시집을 가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과 비길 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 예를 들면 ‘정과 의리를 중요시하고 전 남편이 파산을 했다 하더라도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는’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 이것이야말로 문아영이 임빈을 떠나지 않은 진정한 이유이다!
  • 여자가 의리를 지켰음에도 남편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스토리가 있어야 다른 남자의 연민과 동정을 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