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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여덟 명의 외삼촌들이 콩이를 데리러 오다!

  •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임 씨 일가는 미처 대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 서둘러 계단을 내려온 임빈은 주태석이 콩이를 안고 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차에 올라타려는 주일훈의 모습을 발견한 임빈은 황급히 주일훈의 차량으로 뛰어갔다.
  • “아이고, 주 대표님!”
  • 임빈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친한 체를 했다.
  •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대표님께서 친히 왕림해 주시다니, 저희 임 씨 가문의 영광입니다!”
  • 임빈이 열심히 아부하는 동안 소식을 전해 들은 임성철과 유진숙도 별장 안의 모든 고용인을 대동하고서 나오더니 반색을 하며 주일훈을 맞이했다.
  • 차갑고 사나워 보이는 사내를 보며 그들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90도로 굽힐 뻔했다.
  • 주일훈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입으로 결코 두말하지 않는 JS 그룹의 최고경영자인 주일훈은 현재 주 씨 가문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다.
  • 서울 4대 명문가 중 하나인 주 씨 가문에게 누군들 잘 보이고 싶지 않겠냐마는 주 씨 가문처럼 뿌리가 깊고 역사가 유구한 진정한 명문가는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그중에서 주 씨 가문은 특히 조용하고 신비주의였기에 세간에서는 주 씨 가문에 아들이 여덟 있다는 사실만 알음알음으로 전해지기만 할 뿐 실제로 그들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 그나마 주일훈은 경제 뉴스 헤드라인에 가끔 등장을 했기에 임 씨 일가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 “주 대표님, 얼른 안으로 들어오세요! 밖이 얼마나 추운데. 누추하지만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 임성철이 열성적으로 초대했다.
  • “네, 네, 들여오셔서 따듯한 차 한 잔이라도 드시지요!”
  • 임빈도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 소문으로만 듣던 거물을 실제로 만나자 발바닥이라도 핥고 싶은 심정이었다.
  • 이번에 임 씨 가문에 닥친 위기는 그야말로 멸문의 재앙이었지만 주일훈의 말 한마디로 임 씨 가문은 바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 어쩌면 서울 톱 10 위 안에 드는 가문으로 탈바꿈하게 될지도 몰랐다…
  • 주일훈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날카로운 눈으로 임빈을 훑어보았다.
  • 이 사람이 콩이의 아버지란 말이지.
  • 주일훈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은 채 서슬 퍼런 목소리로 읊조렸다.
  • “임 씨 가문이라, 아주 좋아.”
  • 그러고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차에 올라탔다.
  • 임 씨 일가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당황하고 황송한 마음이었다.
  • 유진숙이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 “주 대표님께서 방금 우리한테 좋다고 한 거 맞아? 우리를 칭찬한 거 맞지? 그럼 우리 가문도 도와주겠다는 말이야?”
  • 그 말에 임성철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 “방금 전 그 표정은 우리를 칭찬하는 표정 같지 않았어.”
  • 임빈은 경비원을 불러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 주 씨 일가가 총출동해 콩이를 데려갔고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내는 심지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콩이에게 덮여주고 소중하게 품에 안으며 자신을 콩이의 막내 외삼촌이라고 칭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 임빈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렸다.
  • 소문에 의하면 주 씨 가문에는 아들 여덟 외에도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한 번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 설마 4년 전 주워온 그 여자가 주 씨 가문의 금지옥엽이었다는 말인가?!
  •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임 씨 일가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 유진숙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말을 더듬거렸다.
  • “주 씨 가문 아이였다니… 어서, 어서, 콩이를 데려오자…”
  • 그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조상님처럼 떠받들지는 못할망정 어찌 감히 콩이를 눈밭으로 내몰 수 있겠는가.
  • 임빈도 깊은 회한에 사로잡혔다. 콩이를 때렸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 임빈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 “이제 와서 어떻게 데려와요! 우리가 데려오고 싶으면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임성철은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임성철은 이내 입을 열었다.
  • “누가 뭐래도 우리는 콩이의 할아버지이고 할머니이고 가족이야! 주 씨 가문에서 아무리 화를 내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 게다가 그 아이 때문에 아영이 유산한 것도 사실이잖아…”
  • 그들은 단지 콩이 거만하고 건방진 아이로 변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임빈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정도를 조금 지나쳤지만…
  • 임 씨 일가는 충분히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명만 잘하면 어마어마한 부귀영화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
  • 주 씨 일가는 콩이를 데리고 바로 서울로 돌아가는 대신 곧바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 남성 최고의 병원에서 언제나 한산했던 최상층은 비상에 걸렸다.
  • 아무도 감히 큰소리를 내지 못했고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소리만이 분위기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 지팡이를 짚은 채 복도를 서성거리던 주종섭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
  • “왜 아직도 안 나와!”
  • 주일훈은 시간을 들여다보고서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아버지, 일단 앉으세요.”
  • 콩이는 병원으로 이송되자마자 곧바로 응급실로 보내졌고 따라 들어간 주태석도 여태 나오지 않았다.
  • 같은 시각, 응급실.
  • 주태석은 온몸에 푸르스름하게 멍이 든 콩이를 보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 추위에 심하게 시달린 사람에게 골절상만큼 무서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콩이는 폭행으로 인해 팔과 다리, 심지어 갈비뼈까지 골절된 것으로 밝혀졌다…
  • 온몸에 동상을 입은 부위도 많았고 심한 곳은 절제해야 할 정도였다.
  • 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한다니…
  • 주태석은 눈시울을 붉히며 콩이의 앞으로 몸을 숙이고서 작게 속삭였다.
  • “콩아, 막내 외삼촌이야. 외삼촌 목소리 들려? 외삼촌 목소리가 들리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이겨내…”
  • 콩이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의식은 흐릿했지만 의외로 몸이 가볍고 따듯한 기운이 돌았다. 난생처음 느껴본 편안함이었다.
  • 주변은 온통 정적이었지만 누군가 계속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콩아… 콩아, 콩알아…”
  • “내가 보여? 내 목소리 들려?”
  • 누구세요?
  • 콩이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눈꺼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린다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 **
  • 꼬박 3 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콩이는 마침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의사들도 기적이라고 한입으로 말했다.
  • 콩이는 온몸에 튜브를 꽂은 채 VIP 병실로 옮겨졌다.
  • 주태석은 서슬 퍼런 표정으로 콩이의 진단서를 주일훈에게 건넸다. 진단서를 확인한 주 씨 일가는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애써 눌렀다.
  • 주종섭은 이를 갈며 노발대발했다.
  • “감히! 세 살짜리 아이를 이렇게 만들어!”
  • 임 씨 가문에 대한 조사를 진작 마친 주일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임 씨 가문 제품이 밀수 혐의로 적발되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저희 가문에 줄을 대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었고요.”
  • 그 말에 주종섭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 “그 자식들을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히 여겨야 하는 판국에 우리 도움을 원해?”
  • 주종섭은 당장이라도 임 씨 일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 주일훈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 “곧 끝장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침묵하던 주종섭은 입술을 달싹였다.
  • “그럼 우리 단옥이는… 단옥이는 어떻게…”
  • 주일훈은 입을 꾹 다물었다.
  • 4년 전, 병으로 기억을 잃은 주단옥은 어떻게 서울에서 2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N 시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임빈의 손에 이끌려 그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 그러다 출산을 할 때에는 중태에 빠져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었다고 들었다.
  • 아이 덕분인지 주단옥은 기적적으로 2년을 더 버티다가 콩이만 남겨두고 사망했다.
  •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웠던 소중한 여동생은 아무도 모르게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 주일훈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화가 날수록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 주종섭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그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주태석이 물었다.
  • “콩이는 왜 때린 거야?”
  • 주일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임빈의 아내 문아영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유산했는데 임빈은 콩이가 문아영을 밀었다고 생각한 거지.”
  • 그 말에 주 씨 일가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임 씨 일가가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 주일훈의 비서가 황급히 들어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 “대표님, 임 씨 일가가 찾아와서 손녀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 싸늘하게 냉소를 터뜨린 주일훈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
  • “기다리라고 해. 그리고 이 층의 외부 난방을 전부 끄고 창문을 열어둬.”
  • **
  • 임빈, 임성철, 유진숙은 병원 맨 위층 바깥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 VIP 병실로 향하는 길목에 게이트가 있어 허락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 주일훈의 비서는 기다리라는 말만 전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 유진숙은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 “왜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 손녀인데 자기 할아버지랑 할머니, 아버지를 전부 문밖으로 내쫓는 법이 어디 있어…”
  • 임빈이 성가시다는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툭 쏘아붙였다.
  • “잠자코 기다리세요!”
  • 실수라지만 콩이를 그렇게 때렸으니 주 씨 일가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 하지만 곧 점점 추워지는 주변 온도에 임 씨 일가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창문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터라 거세게 부는 바람에 임 씨 일가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 “무슨 날씨가 이래?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날씨 맞아?”
  • 평생을 고귀하게만 살아온 유진숙이 제일 먼저 참지 못했다.
  • “빈아, 얼른 아무 사람이나 잡고 무슨 일인지 물어봐!”
  • 임성철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주 씨 일가가 홧김에 기다리게 하는 건 이해되지만 벌써 30분이나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 골병이라도 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