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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오늘밤 파트너가 있으니 너를 데리고 가지 않을 거야

  • “내 말 못 알아 들어?”
  • 고개를 든 부시양의 살짝 가늘어진 눈에 위험한 빛이 스쳤다.
  • “네, 부 회장님.”
  • 심열은 더이상 물을 수 없었다.
  • 부시양의 시선은 계속 창 밖을 향하고 있었고 눈동자의 깊이는 기분을 보아낼 수 없게 했다.
  • 어쩌면 응시하던 그의 시선이 너무 뜨거웠는지 창밖에 있던 고아연이 형체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을 때 그레이색 팬텀은 이미 그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 시선이 엇갈리는 그 순간 고아연은 어쩐지 번호판이 유난히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지끈거릴 정도로 익숙했다.
  • 그럴 리 없어.
  • 8년 전, 그 사람이 그녀를 버린 이후로 국내에서는 더이상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 8년이나 지났으니 그는 어쩌면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을지도 모른다.
  • 고아연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생각 할수록 마음이 더 아플까 봐 재빨리 차에 올랐다.
  • 다음날 오후.
  • 고아연은 슬림한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얹은 뒤 옅은 화장을 하고 수납함에서 쇄골 목걸이를 골라 착용하려 손을 드는 순간 옆에 있던 작은 상자를 건드렸다.
  • 오래된 남자 시계가 떨어졌고 연 그레이 시계줄 뒷 면에는 “양” 이라는 글씨까지 새겨져 있었다.
  • 약간 멈칫하던 고아연이 몸을 숙여 주우려던 그 순간 박스 안에 있는 오래된 시계 외에 넥타이, 커프스 버튼과 해질 정도로 넘겨진 노트북을 발견했다.
  • 기억이 마치 밀물처럼 밀려왔다.
  • 8년 전 그 남자의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또 한번 그녀의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다.
  • 6년 전, 고아연은 유수영에게 시집가던 날 이 상자를 잃어버렸었다.
  • 6년 내내 여러 번이나 찾다가 이미 반포기를 한 상태였는데 도우미가 제일 안쪽 수납장에 정리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 문 밖에서 들려오는 평온한 발걸음소리에 고아연은 유수영이 돌아왔다는 걸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황급히 바닥의 물건을 줍고 다시 조심스레 상자를 원래 위치에 돌려놓았다.
  • 옷장 문을 닫을 때 유수영은 이미 방문을 들어서고 있다.
  • “당… 당신 돌아왔어요.”
  • 고아연은 가슴이 두근거렸고 손도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유수영은 담담하게 콧방귀를 뀌고 그녀를 아래위로 훑더니 밤색 눈동자에 의혹을 드러내며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 “이렇게 입고 뭐해? 내가 오늘 밤 파트너가 있으니 너를 데리고 가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 고아연은 기분을 추스리고 그를 향해 씩 웃었다.
  • “유 회장님도 참 자화자찬이 심하네요, 나도 당신이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과 함께 자선 파티에 참석할 생각 없다고요.”
  • 유수영은 그녀와 논쟁을 벌이지 않고 어두워진 눈빛으로 말했다.
  • “혼자 밖에 나가서 술 마시지 마.”
  • “그게 유 회장님과 무슨 상관이에요?”
  • 고아연이 냉소를 지었다.
  • “유 회장님도 애인과 놀러가서 술 마시잖아요? 당신이 하지 못하는 그런 기준을 나에게 요구하지 말아요!”
  • 유수영은 담담하게 힐끗 쳐다보더니 마치 말문이라도 막힌 듯 입만 뻥긋거리다 말을 하지 않았다.
  • 그는 고아연 앞에서 손에 들었던 파일을 내려놓은 뒤 넥타이를 잡아당겨 술담배 냄새로 가득한 자켓과 셔츠를 벗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이내 옷장에서 똑같은 새 셔츠를 꺼내 입었다.
  • 곁에 서서 보고 있던 고아연은 미간을 굳게 찌푸렸다.
  • 유수영이 우월한 옷빨을 타고 났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 평범한 양복이라도 그의 몸에 걸쳐지면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 “안목이 좋으니 날 도와 넥타이 하나 골라줘.”